고려장에서 간병살인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김형민(SBS Biz PD) 몇 주 전 한국 영화사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하녀〉(1960)를 잠깐 얘기한 적이 있지. 〈하녀〉를 만든 김기영 감독의 초기 걸작 가운데 영화 〈고려장〉도 있다. 당시 이화여대 교수로 와 있던 캐서린 크레인은 “한국 고래(古來)의 풍습을 그린 고려장도 좋지만 국민들의 일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해달라(〈조선일보〉 1963년 3월29일)”는 기고를 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고려장’은 한국의 옛 풍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한국인들 역시 그러려니 했다는 걸 의미할 거야.그런데 우리나라 사서에는 어느 시대든 고려장이 널리 행해졌 [기자의 추천 책] 실학자 정약전? 저널리스트 정약전! 변진경 기자 사실에 갈증이 날 때가 있다. 의견들에 지겨워졌을 때다.내 생각은 이렇소, 네 생각은 틀렸소 싸우는 글들을 보다가 사실로만 꽉 들어찬 글을 만나면 뻣뻣하던 뒷목에 긴장이 풀린다. 사실이 주는 안식을 얻고 싶을 때 집어 드는 책이 있다. 〈자산어보〉이다.해양생물 226종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모양과 성질을 설명한 책 〈자산어보〉는 소설과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그만큼 실학자 정약전과 그의 아우 정약용, 그들을 둘러싼 조선 후기 정치와 시대상을 여러 버전으로 읽어내기 좋은 재료이다.하지만 나는 〈자산어보〉를 텍스트 그 자체로 더 좋아 동물의 고통 위에서 호사 누리는 인간들 허진 (문학평론가) 김훈의 소설 〈흑산〉에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말 ‘천주교’라는 ‘다른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에는 정약전·정약현·황사영·정명련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은 명련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정명련은 조선 후기의 천주교 지도자인 황사영과 결혼했다. 황사영은 1801년 일어난 신유박해의 실상과 대응책을 비단에 적어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처형당한 인물이다. 이 사건을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 한다. 〈흑산〉에서 김훈이 정명련의 성 박정희를 ‘신라 왕의 후예’라고 섬긴 최장수 국회의장님 김형민(SBS Biz PD) 누구에게나 아픈 고리는 있지만 그 고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에서도 그렇다. 이를테면 아빠는 그리 신앙이 투철하지 않은 개신교인이지만 본연의 자세에서 어긋나는 망발에 대해서는 극히 민감하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주문이라든가 ‘교회 일은 목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같은 말이 나오면 아빠는 상당히 평정을 잃는다. 그 자체로 부당하지만 아빠의 개인적 트라우마와 연결되는 발언이기 때문이야.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아빠를 격동시키는 게 있다면 그건 지역감정 선동이야. 이건 대한민국의 사회적 트라우마와 관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라이프 트렌드 2020김용섭 지음, 부키 펴냄“느슨한 연대라고 해서 관계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다만 관계를 대하는 관점이 변한 것이다.”거의 사회학 보고서다. 저자의 말마따나 결혼하는 사람보다 결혼 안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혼하는 것이 비주류가 된다. 나이 든 기성세대마저 졸혼 등에 이끌리는 중이다. 결혼제도에 부과되던 강제성과 끈끈함 대신 자율성과 느슨함을 원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직장에서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라는 넷플릭스의 조직 문화가 상징적이다.‘느슨한 연대’를 키워드 삼아 역사와 풍광이 어우러져 노닐다 홍경찬 (여행작가) 보길도에서 악연을 이어간 윤선도와 송시열. 두 정치인은 글로써 영원히 보길도에 남아 있다. 윤선도는 명작 〈어부사시사〉를, 송시열은 바위에 새긴 글이라지만 선명하게 흔적을 남겼다. 섬은 스승이다. 이들은 글을 남기고 정자를 짓고 풍월을 읊었고 후대들은 이를 활용할 줄 안다. 윤선도·송시열이 꿈꾸던 삶이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죽어서 관 속에 묻히기보다, 머리를 진흙에 묻고 꼬리를 흔들고 살더라도 대단히 낙천적인 삶을 보길도에서 실현한 셈이다. 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한양에서 해왔던 삶이었음에도 불구... 역사를 품은 ‘검은 산’의 기억 고재열 기자 흑산도 동백나무 숲길을 걷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어디서 많이 본 동백나무 숲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강진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에 본 숲과 많이 닮았다. 그랬다. 손암 정약전과 다산 정약용 형제는 같은 이유로 유배당했고 비슷한 풍경의 동백나무 숲길을 걸었을 것이다. 동백나무 숲길이 시작된 마을의 이름은 소사리였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는 설명이 달린 마을이다. 섬에서는 드문 풍경이다. 예전에 소사리마을 사람들은 항구 마을에 땔감을 가져가서 팔고 쌀과 생필품을 구입해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소사리마을을 가... 컴퓨터가 ‘이순신이 영웅인 이유’를 답할 수 있을까? 그르노블·이종태 기자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 처음으로 읽은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실락원〉이었다. 괴물은 베르테르로부터 ‘다른 대상을 향한 고결한 감정’을, 플루타르코스에게서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 ‘지배와 법’ 등의 개념을 배웠다. 〈실락원〉에선 ‘하느님’과 ‘세계의 질서’를 학습했다. 글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행위를 이해하게 되면서 괴물은 점점 인간적 존재가 되어갔다. 절망과 고독에 빠져 창조자(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지인들을 하나씩 살해한 괴물의 복수야말로 인간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애독했다고?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2003년 여행작가로 첫 명함을 내밀었다. 14개월 취재하고 12개월 집필한 끝에 인도 여행 가이드북을 펴냈다. 오랜 노동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곳은 베트남이었다. 분명히 쉬러 갔는데 나는 어느새 하노이 공항 곳곳을 취재하고 시내로 나가는 교통편을 체크하고 있었다. 쉬기는 글렀고, 오랜 궁금증이나 풀어보기로 했다. 나는 베트남과 관련해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베트남 건국 영웅 호찌민 주석이 정말로 〈목민심서〉를 애독했는지 궁금했다. 1988년 고은 시인이 한 신문에 실은 ‘손...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행진하라 존 루이스·앤드류 아이딘· 네이트 포웰 지음, 최명찬 옮김, 프린웍스 펴냄 “당신은 내 자유를 빼앗을 수 있지, 그러나 내 존엄성을 빼앗지는 못하지.”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인 존 루이스의 일대기를 다룬 그래픽노블이다. 1960년대 시민권 평등운동의 전면에 나선 존 루이스가 1965년 3월 앨라배마 주 셀마-몽고메리 행진에 성공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내적 갈등이 담겨 있다. 그는 40여 차례 투옥과 수십 차례에 걸친 백인의 구타를 겪으면서도 비폭력주의를 지켜왔다. 이 책의 묘미는 1인칭에 있다. 당시 흑인 인권운동은 갖가... 엄마 돼지 한 마리가 논 3000평 만큼 번다 이오성 기자 남편은 돼지를 키운다. 아내는 그 돼지고기로 스페인의 하몽 같은 발효 생햄을 만든다. 조카는 농장에서 나오는 분뇨를 거둬들여 액체 비료로 탈바꿈시킨다. 디자인을 공부하던 첫째는 전공을 축산학으로 바꿨고, 둘째 역시 양돈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이쯤 되면 돼지로 먹고사는, 아니 돼지가 먹여 살리는 가족이다.박화춘씨(다산육종 대표)는 축산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박 사장, 박 대표보다는 ‘박 박사’로 불린다. 가축육종학으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농촌진흥청 연구원, 축협중앙회 유전자원실장으로 근무하다 마흔 무렵 돌연 고향인 조선을 깨운 홍어장수 이야기 김형민(SBS Biz PD) 새해다. 새해마다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내걸지만 대개 작심삼일에 그치는 게 보통 사람들이지. 하지만 기억하렴. 작심삼일이라 하더라도 결심을 포기하지 않고 작심삼일 백 번을 하면 1년이 가는 거란다. 하다가 중단하는 건 자랑할 일이 못 되지만 아예 마음을 먹지 않는 것,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게 훨씬 더 부끄러운 일이다. 강철 같은 의지를 애초부터 가진 사람은 드물어. 때로는 낙담하고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결심하고 발버둥을 치면서 의지는 점점 굳어지는 거야. 새해를 맞아 아빠는 불굴의 한국인(조선인이거나 고려인, 혹은... 수능 목적으로 가르쳐야 신뢰받는 현실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시험문제 오류가 아닌, 시험의 의도 자체에 대해 학생들이 교무실로 찾아가 불만을 터뜨리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뒷담화가 가능하다. 학교의 평가가 끝날 때마다 이런 일을 거듭 경험한다. 학생들은 학원에 와서 학교 시험문제에 대해 온갖 하소연을 한다. 최근에는 한 학교의 수행평가 채점 결과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생들의 수행평가를 위해 교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시 두 편에 대해 창의적으로 해석을 해오라’는 과제를 냈다. 인터넷 검색 금지, 다른 서적 참조도 금지였다. 오로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세상 김형민(SBS Biz PD) 국사 시험문제 하나. “고려 광종 때 도입되었으며 후주의 귀화인 쌍기의 권유로 채택했던 관리 선발제도의 이름은?” 0.1초 만에 대답할 수 있을 거다. “과거제도!” 맞아. 과거제도의 시작은 중국 수나라 문제 때야. 그는 400여 년 동안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라는 극심한 혼란에 시달려온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한 황제지. 사면팔방으로 찢어진 천하를 하나로 묶어놓으려면 강력한 중앙권력이 필요했지. 각지에서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세력들도 견제해야 했던 수나라 문제는 583년 각 주에 명령하여 매년 3명을 천거하게 하고 시...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거대한 단절피터 왓슨 지음, 조재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흔히 서유럽 중심의 구대륙과 남북아메리카 등 신대륙을 구분할 때 문명과 미개로 나눈다. 그런데 저자는 단절된 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구대륙과 신대륙을 우열이 아닌 차이의 관점에서 비교한다. 인류가 시베리아 ‘베링 육교’로 신대륙에 넘어가던 기원전 1만5000년 전부터 구대륙에 정복된 16세기까지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 송지혜 기자 커버스토리박근혜 대통령, 국정화 강행 이유는?‘자유의 적’이 된 자유주의자들최인훈의 〈광장〉이 공산주의 미화?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국정화 전선,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국정화가 몰고 온 역사 열풍 해외에서 한국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와 강사 204명(10월30일 현재)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의견을 밝혔다. 10월24일 15 언어생활의 감시자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어느 시대에나 ‘바른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을 ‘언어생활의 감시자’라고 불러도 되겠지. 물론 바른말을 쓰는 건 중요해. 말이 혼탁하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 ‘언어생활의 감시자’는 바른말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을 뜻해. 가령 국립국어원에 그런 사람들이 있지. 최근에 ‘짜장면’이라는 말이 ‘자장면’과 함께 표준어로 인정됐지만, 오래도록 ‘짜장면’은 표준어 대접을 못 받았어. 그런데 실제 언어생활에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써왔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박또박 ‘자장면’이라고 말했던 사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한국 철학사전호근 지음, 메멘토 펴냄철학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서양철학사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한국 철학사는? 드물다. 우리 철학이 어디서 기원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흘러왔는지 잘 모른다. 저자는 한국 철학사의 기원을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를 남긴 원효로 잡았다. 그리고 의천·지눌·이황·정약용·이규보·박지원 등 역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지음, 알마 펴냄지친 30대 초반 청춘에게 70대 노교수가 위로한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까칠한 칼럼니스트의 모난 마음을 사포처럼 닦아내는 노교수의 부드러운 충고가 매력적이다.남들 보기에 멀쩡한 남자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오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 당신이 꼭 읽어야 할 교양 장정일 (소설가) 공자·플라톤·셰익스피어·카프카·보부아르…. 이들을 가리켜 고전 내지 인문학이라고 하고 교양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들을 읽는 것이 진정 한국인의 교양이자, 오늘의 교양일까? 저 명단 대신 일연·정약용·김수영을 넣어봐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내 생각에, 한국인 누구나가 알아야 할 교양이라고는 대한민국 헌법이 유일하다. 이렇게 말하면 “헌법을 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