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지옥〉, ‘권선징악’이 끝이 아니야 권구현 (영화 칼럼니스트)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으로 ‘연니버스’를 확장한다. 새로운 연상호 월드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공포심. 어느 날 ‘천사’라는 존재가 나타나 인간에게 죽음의 날짜를 고지한다. 그날이 오면 무서운 검은 괴물 ‘사자’가 나타나 ‘시연’을 행하는데, 피고지인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고열을 가해 숯덩이로 만든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던 사람들은 실제 시연 장면이 생중계되자 공포에 휩싸인다. ‘나 역시 어떠한 죄를 짓진 않았을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옥에 가는 것이 무서운 [책 읽는 독앤독]그 남자는 왜 책을 훔쳤을까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어느 해 가을, 낌새가 수상한 한 남성 손님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다른 일을 하는 척 몸을 돌리고 곁눈질로 그 손님을 주의 깊게 살폈다.잠시 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는 소설 책장 앞에 잠시 멈춰 있는가 싶더니 책 한 권을 뽑아 들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그대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가 문을 완전히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불러세웠다. 책 훔치는 걸 봤다고 다그치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운이 없군요.”그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어니스 ‘주어진 행복’을 깨면 ‘존재의 이유’가 보인다 김문영 (이숲 편집장)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나 상상하기조차 힘든 인간의 흉악한 범죄 소식을 접했을 때, 가끔은 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어 인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시련의 문을 열게 했나?’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다면, 뱀의 유혹도 없었을 테고 선악과를 먹지도 않았을 것이며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럼 인간은 죄 없는 세상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덕분에, 때로 후회할지라도 인간은 위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이 책은 너무도 유명한 로이스 로리의 연쇄살인이 아니다 ‘페미사이드’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유엔에 있는 누군가가, 아마도 당신은 믿기 어렵겠지만, ‘페미사이드(femicide)’에 관한 협약을 제안했어. 마치 탈취제 스프레이 이름처럼 들리지?” 미국 작가 앨리스 셀던(필명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이 1977년 발표한 단편소설 〈체체파리의 비법〉 (아작, 2016)의 한 구절이다. 해충 박멸 연구 때문에 콜롬비아 오지에 체류 중인 과학자 남편에게, 미국에 있는 (역시 과학자인) 아내가 다급하게 편지를 보낸다. 현재 남성들에 의한 조직적 페미사이드가 유행병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라고. 걷잡을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두렵다고. 발자국이 크면 무조건 남자라고?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한 쌍의 여자와 남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왼쪽 어깨 뒤를 돌아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합니다. 남자는 오른쪽 어깨 뒤쪽에 있는 화산을 봅니다. 화산이 폭발한 다음인가 봅니다. 화산재가 소복하게 쌓인 곳을 두 발로 걸어갑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모습입니다. 둘 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걷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은 20세기 고인류학에서 이룬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다윈이 진화론을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리한 이후부터 인류의 기원은 고인류학자뿐 아니 동물을 관찰하던 조선의 선비들 시사IN 편집국 유학자의 동물원최지원 지음, 알렙 펴냄학을 춤추게 하는 방법이 있다. 학을 방에 가두고 나무토막을 하나 넣어둔다. 그리고 군불을 지피면 바닥이 뜨거워져 학이 나무토막을 딛고 올라서는데, 나무토막이 구르는 대로 학이 발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여기에 음악을 더하면 ‘가짜 춤’이 완성된다. 실학자 이덕무는 이렇게 학이 춤추는 것 왜 권력자는 재난 현장에 가나 장정일 (소설가) 1911년에 제정된 클라이스트 상과 1923년에 생긴 뷔히너 상은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두 상은 각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1777~ 1811)와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두 사람의 이름 뒤에 붙은 괄호 속 숫자를 세어보면 그들은 고작 34년과 24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독일문학사를 장식하는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작가의 미덕은 고령이 되도록 마냥 펜을 쥐고 버티는 데 있지 않다. 인생은 마라톤일 수 있을지언정 문학은 결코 완주에 박수가 쏟아지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