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이 아니다 ‘페미사이드’다
  •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 호수 635
  • 승인 2019.11.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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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어나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가 ‘페미사이드’다. 한국은 강력흉악 범죄에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 페미사이드는 공중보건에서도 중요 이슈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5월19일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벌어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한 추모객.

“유엔에 있는 누군가가, 아마도 당신은 믿기 어렵겠지만, ‘페미사이드(femicide)’에 관한 협약을 제안했어. 마치 탈취제 스프레이 이름처럼 들리지?” 미국 작가 앨리스 셀던(필명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이 1977년 발표한 단편소설 <체체파리의 비법> (아작, 2016)의 한 구절이다. 해충 박멸 연구 때문에 콜롬비아 오지에 체류 중인 과학자 남편에게, 미국에 있는 (역시 과학자인) 아내가 다급하게 편지를 보낸다. 현재 남성들에 의한 조직적 페미사이드가 유행병처럼 퍼져나가는 중이라고. 걷잡을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두렵다고.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지구촌 곳곳에 만연한 현상이다. 이를 페미사이드라고 명명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76년 여성주의 작가 다이애나 러셀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어나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를 ‘페미사이드’로 호명했다. 라틴아메리카 같은 지역에서는 문자 그대로 여성 살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지만, 이 개념은 여성 살해 그 자체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사실에 초점을 둔다. 러셀은 1992년 출판한 책 <페미사이드>(책세상, 2018)에서 “페미사이드는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성에 대한 증오, 경멸, 쾌락 혹은 소유 감각이 동기가 되어 남성이 자행한 여성에 대한 여성혐오적 살해”라고 정의했다.

<체체파리의 비법> 속 남성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성적 욕구가 절제되지 않는 비정상적 살해 욕구로 폭발하면서 여자들을 무차별 살육하기 시작한다. 페미사이드 유행 초기에는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종교까지 만들어낸다. 이브가 나타나기 전까지 평화로웠던 에덴동산을 찬미하는 교리를 만들면서 말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류의 절멸이다.

소설 제목인 ‘체체파리의 비법’은 수컷 불임 파리를 야생에 풀어놓아 정상 수컷 파리와 짝짓기 경쟁을 하게 만들고, 집단의 번식 성공률이 낮아지면서 세대를 거칠수록 후손의 개체 수가 감소하여 결국 박멸에 이르도록 만드는 해충구제 전략을 일컫는다. 소설 속에서 페미사이드는 바로 이런 구실을 한다.

작가의 빼어난 글 솜씨 덕에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은 자신이 마치 거대한 살육의 현장에 있는 듯 ‘리얼 공포’를 체감할 수 있다. 오래전 읽었던 이 소설을 다시 떠올린 것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 탓이다. 나는 이 비극적 사건을 뉴스보다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인적 드문 어두운 밤길,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초조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여성의 그 긴장감 말이다. 풍경이 조금씩 달라질 뿐 한국 여성들 다수가 현실에서 경험해본 감각이다. 이 사건은 페미사이드였다.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피해자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체체파리의 비법>에 그려진 허구 세계 남성들이 자행했던 페미사이드와 다를 바 없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7월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3차 시위. 이날 시위에는 6만여 명이 모였다.

강력흉악 범죄에서 드러나는 ‘성별 불평등’

페미사이드는 젠더를 기반으로 일어나는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젠더 폭력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일부’ 남성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성별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적 결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무작위 사건, 일부의 일탈이라고 보기에는 문제의 규모가 크고 또 사회적 패턴이 뚜렷하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평생 한 번 이상 파트너에 의한 물리적 혹은 성적 폭력, 타인에 의한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

최근 발행된 유엔 보고서는 2017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여성 8만7000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그중 5만여 명이 친밀한 배우자나 가족에 의해서, 특히 3만명 이상은 현재 혹은 이전 배우자에게 살해당했다고 추정했다. 여성 살해 문제는 결혼지참금 제도나 명예살인 등으로 악명이 높은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유엔총회는 모든 국가의 대응을 촉구하면서 ‘성별 관련한 여성과 소녀들의 살해에 대한 조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살인으로 인한 사망률은 남성이 훨씬 높다. 테러리스트에 의한 무차별 가해가 아닌 이상, 살인은 폭력 범죄나 물리적 상호 충돌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는 대개 여성보다 남성이 많이 연루된다. 심지어 한국은 총기가 엄격하게 규제되고 사회 안전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의 살인 사망률은 10만명당 1명 미만으로 국제적으로도 낮은 그룹에 속한다.

남성과 여성의 사정이 조금 다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는 남성의 살인 사망률이 크게 앞섰지만 이후 감소하면서 남녀 간 격차가 줄어들어 최근 5년 동안에는 사망률의 성별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20대만을 살펴보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2000년대 이후 거의 차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여성의 살인 사망률이 높았던 해도 적지 않다. 최소한 살인 사망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진 셈이다.

전반적 살인율이 낮아지면 남녀 간 격차도 줄어드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제 비교를 해보면 미묘한 성별 차이가 눈에 띈다. 한국 남성의 살인 사망률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한국 여성보다 살인 사망률이 높은 곳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발전 수준이 낮고 치안이 불안하다고 알려진 국가이거나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밖에 없다. 한국 여성들이 다른 OECD 국가의 여성들에 비해 유난히 폭력 범죄나 물리적 상호 충돌 상황에 자주 연루된다고 보아야 할까? 그보다는 전반적인 사회적 폭력의 감소 추세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이 젠더 폭력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강력흉악 범죄 피해자의 성별 통계를 살펴보면 ‘성별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범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2.6%로 남성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강력흉악 범죄에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비중은 거의 90%에 달했다.

한국의 페미사이드 현상은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1990년대 후반까지 왜 한국의 살인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는지, 2000년대 이후에는 왜 급속히 줄어들었는지, 그리고 남녀 격차의 급격한 감소는 무엇 때문인지, 높은 치안 수준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살인 사망률이 왜 상대적으로 높은지, 모두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페미사이드의 토양이 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법 집행과 사법절차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남성 배우자의 집요한 스토킹이나 폭력 때문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다가 결국 살해당한 여성의 사연은 비슷한 사례가 많아 기사 제목만으로는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남성 가해자의 처벌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술 때문에’ 혹은 ‘욱 하는 심정’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해명과 함께 ‘깊은 뉘우침’을 이유로 낮은 형량이 선고된다. 휴대전화 속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한 사진 수백 장이 확인되어도 여전히 ‘초범’이고 ‘우발적’ 범죄라며 집행유예가 선고된다.

ⓒYouTube 갈무리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범 영상’ 속 남성이 여성이 사는 집 현관문 도어록을 만지고 있다.

페미사이드와 관련한 기본 통계조차 없어

또한 한국 여성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은 안전을 위협한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원룸 침입 사건이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여성에게 충분한 사회경제적 자원이 있다면 좀 더 안전한 동네와 집에서 살 수 있고, 그 밖에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역량과 자원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 여성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저임금은 안전이라는 자원을 ‘구매’하기 어렵게 만든다. 위험한 ‘사회생활’로부터 벗어나 가족 혹은 여성을 지켜줄 남성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낯선 괴한에 의한 선정적 폭력과 살인 사건이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젠더 폭력이나 살해의 가장 큰 위협은 친밀한 배우자나 가족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통계가 보여준다.

현실은 이렇지만 일부 ‘알파걸’들의 성공, 대입 진학률의 성별 역전은 한국 사회에서 마치 젠더 평등이 이루어진 것 같은 착시 효과를 가져왔다. 이는 성평등에 대한 강력한 반동 기류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겨우 억압적인 가부장제 규범을 벗어나는가 했더니 이제는 디지털 성폭력과 함께 여성을 극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가 급성장하고 있다.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에게 인격과 존중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여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여자가 나를 만나주지 않아서’ ‘여자가 나를 화나게 만들어서’ 같은 남성 가해자의 발언에는 여성이 남성을 응당 존중해야 하고, 남성에게는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규범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만큼 궁극적인 건강 문제는 없다. 더구나 그것이 불필요하고 부당한 죽음이면서, 충분히 예방도 할 수 있는 죽음이라면 사회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당장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제적으로 젠더 폭력, 페미사이드는 여성 인권 담론뿐 아니라 공중보건 분야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페미사이드의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빅데이터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젠더 폭력이나 페미사이드와 관련된 기본 통계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유엔은 회원국들이 페미사이드 혹은 젠더 관련 여성 살해에 대한 감시체계를 만들고 가해자·피해자 성별에 관한 분리 통계를 제시하라고 권고해왔다. 국가 통계가 불충분하니까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가 발행한 젠더 폭력, 페미사이드 관련 보고서에도 한국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못하고 국제 비교도 하기 어렵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권력이 가진 진정한 힘이다. 구체적인 법과 제도 개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러한 개선 노력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살해를 페미사이드라는 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연쇄살인사건이 아니라, 묻지 마 살인이 아니라, 가정폭력이 아니라 페미사이드라고 말이다.

그들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죽었다. 가해자들은 ‘묻지 마’ ‘무차별’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 페미사이드는 무작위로 발생하는 일탈행위가 아니다. 젠더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빙산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일부분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젠더 정치와 건강 정치가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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