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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에서나 엄지로 집필한다

누워서 쓰고 서서 쓴다. 집필 장소는 소파에서 지하철, 공원 벤치까지 다양하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엄지로 쓰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글쓰기 도구로 활용하는 ‘엄지 작가’ 3인의 이야기.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9년 07월 04일 목요일 제6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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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iPhone에서 보냄.’

배우 봉태규의 에세이집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의 머리말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서 책 한 권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메모하듯 써내려갔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짬을 냈다. 핸드폰으로 쓰니 분량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평소보다 길게 쓸 수 있었다. 최근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을 펴낸 김형민 PD도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쓴다. 매주 <시사IN>에 연재하는 200자 원고지 15장 분량의 원고 절반을 스마트폰으로 쓴다. 책상 없이도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가끔 일부러 버스를 타기도 한다.

누워서 쓰고 서서 쓴다. 집필 장소는 소파에서 지하철, 공원 벤치까지 다양하다. 누군가 이들을 ‘손가락 작가’로 명명했다. 좀 더 특정하자면 ‘엄지 작가’다. 스마트폰과 엄지손가락이면 충분하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0%에 이르고 데스크톱 보유율(현재 약 60%)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초등·중학생들은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친다. 노인들에게 핸드폰으로 자서전 쓰기를 독려하는 움직임도 있다. 소설가 김훈은 아직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쓴다. 황정은 작가는 데스크톱이 편하다. 스마트폰도 ‘왕년의 이들’처럼 유력한 글쓰기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소개할 ‘엄지 작가’ 세 명도 어느 날, 스마트폰에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긴 글도 결국은 한 단어에서 시작된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시사IN 윤무영
문화류씨(사진)는 스마트폰으로 쓴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린다. ‘오늘의 유머’에 연재한 귀신 이야기를 엮어 괴담집을 출판했다.
누워서 쓰는 문화류씨


야근이 잦았다. 각각 3년씩 일한 두 회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게임 회사에서는 게임 시나리오를 썼고, 문화 콘텐츠 회사에서는 지자체의 홍보 동영상을 찍고 편집했다. 온종일 컴퓨터를 만졌는데 집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켰다. 메모장에 글을 썼다. 불면증이 있던 시절엔 잠이 올 때까지 적었다. 문화류씨(필명·33)는 그렇게 쓴 글을 모아 얼마 전 <문화류씨 공포 괴담집> 두 권을 출간했다. 모두 아이폰에서 탄생한 글이었다.

처음 글을 쓴 건 스물다섯 살이었다. 사는 낙이 축구·야구·술이었다.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연이은 F 학점으로 학사경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간 뭐든 스스로 선택해 끝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뭐라도 해야 할 나이 같았다. 고민하던 중 NHN 게임문학상을 알게 되었다. A4 60장 분량의 글을 써서 공모했다. ‘제출만 하자. 이걸 못 끝내면 인생이 끝난다’는 각오로 임했다. 입상했다. ‘내게 이런 재능도 있구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었다.

전업 작가가 되기에는 일렀다. 우회해 게임 회사에 입사했다. 3년 만에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 진출을 결심했다. 서울에서도 글 쓰는 업무를 했지만 임원이나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었다. 작가의 생각이나 신념이 담긴 글은 아니었다. 회의가 들었다. 잦은 야근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이 나빠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며 생각했다. ‘도대체 나는 무얼 위해 살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허탈했다. 기왕 이렇게 살 거면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콘텐츠 회사를 차려서 독립했다. 그와 동시에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2017년 7월이었다.

20대 후반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짱공유’에 글을 올렸다. 잘못 클릭해 ‘무서운 글터’ 게시판에 들어갔던 게 시작이다. 재미 삼아 하나씩 괴담을 올렸다. 어린 시절 충남 청양 외가댁에 가면 외할머니가 물귀신, 도깨비, 저승사자, 연쇄살인 사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보고 지인들의 이야기도 귀담아두었다. 반응이 좋아서 다른 커뮤니티까지 글이 퍼졌다. 그중 하나가 ‘오늘의 유머’다. ‘짱공유’에서 20이던 ‘추천’ 수가 200~300명으로 늘었다. 문화류씨는 그의 아이디다. 성이 류씨다.

처음에는 스마트폰 메모장의 글을 그대로 복사해 올렸다. 독자들이 맞춤법을 고치라고 조언했다. 작가가 될 거라는 응원 댓글은 힘이 되었다. 한 편을 올렸는데 재미있다며 계속 올려달라고 하면 또 썼다. 일을 하면서도 쓰고 출장 가면서도 썼다. 하루에 세 편을 올린 적도 있다. 작정한 건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메모장에 적고, 흐름을 놓칠까 봐 보태고, 그러다 보니 글이 길어지고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주의가 산만해서 한군데 진득하게 머물기 어려운 그에게 스마트폰은 최적의 파트너였다.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 출신 김동식 작가가 막 알려질 때였다. 김 작가의 책을 읽고 팬이 되었다. 얼마 전 그는 사석에서 김동식 작가를 만나 식사를 하고 창작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동식 작가를 발굴한 김민섭 작가의 눈에 띈 덕분이었다. 어느 날 김민섭 작가한테 이메일을 받았다. 지난해 12월31일, 부산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김민섭 작가를 만나러 갔다. 한겨울에 카디건만 걸쳤는데 추운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긴장된 만남이었다. 김 작가도 그가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는 데 놀랐다. 김민섭 작가와 출판사는 문화류씨에게 ‘손가락 작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김 작가는 더 많은 ‘손가락 작가’의 탄생을 예감했다. ‘문화류씨의 세대는 어쩌면 핸드폰으로 글을 읽는 데서 나아가 글을 쓰는 세대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몇몇 플랫폼에서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쓰는 방식’에서도 왔다(<문화류씨 공포괴담집> 기획의 글).’

문화류씨의 괴담은 단순히 무서움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상을 반영했다. 특히 현대에 와선 청년 문제나 노인 문제, 양극화 등을 다루며 인간의 공포를 귀신에게 투영한다.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을 담았다. 그가 각별히 아끼는 <온천에서 만난 노인>은 자살을 생각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문화류씨는 바라던 대로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가장 감격스러운 것은 본인이었다. 기쁘지만 독자들의 기대가 무겁게 다가온다.

책이 출간된 뒤 가족들은 평소 그가 스마트폰을 꽉 쥐고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엔 백수 취급을 받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낯설게 여겨질 줄은 몰랐다. 버스를 기다릴 때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썼다. 화면이 작으니 문장이 짧아지고, 빨리빨리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장점은 있다. 재채기를 하다가 잘못 만져 순식간에 글이 날아간 적도 있다. 그가 스마트폰 메모장 목록을 보여주었다.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작성한 글부터 아이디어 수준의 메모까지 빼곡했다. 검지로 계속 끌어내려도 끝에 닿지 않았다. 그 끝없는 목록이 작가의 행보를 예고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번역도 하는 김시덕 문헌학자

ⓒ시사IN 신선영
김시덕 문헌학자(위)가 서울 중림동 일대 골목길의 옛 건물을 휴대전화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막 폰으로 글을 쓰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김시덕 문헌학자(44)가 첫 통화에서 말했다. 서울 영등포의 한 카페였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 사진 찍을 골목을 미리 봐두었다. 거기로 데려가자 그가 대뜸 옆 골목을 추천했다. 지나오다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걸 눈여겨본 덕분이었다. 그는 ‘찍히다’ 말고, 자주 찍었다. 습관이다. 2017년 7월부터 서울 곳곳을 걸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문서 편집 앱 ‘구글 독스’를 이용했다. ‘현장에서 실감을 얻고 그 실감을 가능한 한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이기도 한 그는 책 일곱 권을 내고, 다섯 권을 번역했다. 공동저작만 여섯 권이다. 지난해 출간된 <서울 선언>은 그에게 일종의 실험이었다.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대중교통으로는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탑에 접근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근처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그에 대해 써내려가는 식이었다. 글쓰기까지의 예비 절차도 생략했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시동을 거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문체도 달랐다. 이전까지의 학술서는 ‘하다’체였다. <서울 선언>을 쓰며 자연스럽게 누군가 대화를 주고받듯 경어체를 쓰게 되었다. 1994년 PC통신 하이텔을 처음 할 당시의 말투가 되살아났다.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인터넷과 함께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연장일 뿐이다. 삶의 일부이고 안경 같은 도구다. 그걸 활용한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다. 글 쓰는 과정은 이렇다. 평소 SNS에 각종 아이디어를 올린다. 바로 사람들의 피드백이 달린다. 스마트폰에서 글의 얼개를 잡고 페이스북에 썼던 글과 합친다. 전에 해둔 스크랩 기사를 끌어오기도 한다. 구글 포토나 카카오맵 등의 서비스도 적극 활용한다.

스마트폰을 택한 건 범용성 때문이다. 그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태블릿 PC는 키보드까지 따지면 노트북 무게와 비슷했다. 접이식 키보드나 블루투스 키보드도 써봤다. 어떤 건 화면이 키보드 속도를 못 따라갔다. 재개발 지역을 답사할 때도 스마트폰이 편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경계심도 많았다. 중년 남성이 카메라를 들면 둘 중 하나였다. 부동산 업자이거나 구청 직원이거나. 알고 지내는 황두진 건축가도 카약을 타다 말고 쓸 원고가 있어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더 극적인 경우다. 쓰려는 마음만 있으면 장소는 상관없었다.

김시덕 문헌학자에게 글쓰기는 직업적으로도 중요한 활동이다. 인문사회 연구자는 논문보다 책을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여든에도 책을 내는 선생들을 봐왔다. 한국은 각종 대학 평가에서도 저서보다 논문 수가 중요했다. 50대만 되어도 글을 쓰지 않으려는 기조가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그는 일본의 국립 문헌학연구소인 국문학 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의 전쟁을 다룬 당시 논문은 <일본의 대외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유학을 갈 때부터 책이나 강연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논문을 쓰면서 10년치 쓸거리를 준비하고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아이템을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공교롭게도 <서울 선언>은 그가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40여 년간 살았던 서울에 대한 기록을 남기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직장에서 갈등을 겪을 때였다. 출간 후 오히려 답사가로서 외연을 넓히게 되었다.

그간의 저서에서 그는 임진왜란, 동아시아의 역학관계 등을 다뤘다. 민족주의를 벗어나 코즈모폴리턴 시각에서 역사를 보려는 자세 때문에 외세의 처지를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서울 선언>은 그런 세계관의 연장이다. 사대문 중심의 서울을 벗어나 서민들의 공간에 관심을 가진다. 궁궐이나 왕릉, 랜드마크가 아니라 주택과 아파트, 골목과 식당 같은 평범한 공간에 집중한다. 중림동을 같이 걷던 그가 오래된 골목과 그 너머 아파트를 한 프레임에 넣고 사진을 찍었다. 그가 좋아하는 서울 풍경이었다. ‘낯설게 보기’의 감각이 드러났다.

그는 번역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일본 책은 문고본이라 작다. 지하철에서 한손으로 책을 들고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쥔 채 엄지손가락으로 적어 내려간다. 운전면허가 없어서 주로 걷는다. 이런 글쓰기 방식을 사람들에게 권할 마음은 없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도 호흡이 긴 책을 쓸 때는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올해 말 출간이 예정된 다섯 권짜리 책 <일본인 이야기>는 수록될 사진의 배치가 중요해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함께 쓰며 글쓰기를 한다. 역시 스마트폰으로 쓴 <서울 선언>의 두 번째 편은 올여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스트레스 풀려고 스마트폰 꺼낸 이하루 작가


ⓒ윤성희
이하루 작가(위)가 한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이하루씨(필명·35)는 직장 생활 10년 중 8년을 계약직으로 일했다. 모두 여덟 군데를 거쳤다. 공연기획사, 신문사, 잡지사, 통신사, 공공기관, 외국계 기업 등 다양했다. 가는 곳마다 직함과 역할도 달라졌다. 기자, 콘텐츠 기획자, 스크립터, 카피라이터 등등. 직장 생활을 하다 중간에 10개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다시 취직할 때는 파견직이었다. 지금은 외국계 중견기업에서 영상 콘텐츠 등을 기획하고 있다. 점심시간에 그를 만났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소속은 본사가 아닌데 아침이고 밤이고 수시로 직접 연락이 왔다. 직장은 분당인데 서울 본사도 오가야 했다. 따로 취미 생활이 없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수영, 드로잉을 시도해봤지만 출장이 잦아 번번이 어그러졌다. 많이 하는 건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SNS를 보니 자기 삶은 너무 팍팍한데 다들 잘살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요’를 누르는 데 왜 에너지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말했다. “글을 써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도 글을 썼지만 이씨는 싫었다. 밥벌이용이었다. 대학 때도 칭찬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래도 다양한 직장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해왔으니 해보면 어떠냐고 남편이 재차 권했다. 처음엔 드라마 대본을 생각했다. 우연히 한 포털사이트의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분량이 길지 않은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가 가장 ‘리얼’하게 쓸 수 있는 것은 계약직 이야기였다. 2016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

특히 반응 좋은 글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 8시32분부터 토요일 새벽 3시38분까지 1분의 휴식기도 없이 1330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직장 상사의 이야기를 올렸을 때다. 상사는 퇴근을 허락해놓고는 일이 꼬여 나머지 업무가 늦어지니까 잔소리를 시작했다. 한 팀이면 함께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단체 카톡방’에서 6시간 동안 중편소설 분량의 잔소리가 계속되었다. 헤아려보니 대략 200자 원고지로 266장이었다. 상사의 손가락 관절염이 염려될 정도였다. 풍경은 ‘디지털 노마드’인데 실상은 ‘디지털 메이드’였다.

격분해서 올린 이 에피소드를 이틀 만에 25만명이 읽었다. ‘직장인들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렸다. 글을 본 회사 동료가 ‘우리 같은 회사가 있다’며 그에게 공유하는 바람에 본인이 글쓴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검색해보니 비정규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은 있지만 경험자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는 없었다. 직접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2017년 4월 이씨의 생일날 남편이 새 핸드폰을 선물로 주었다. 계정을 다시 세팅하다 우연히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출판사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출간 제안이었다.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렸을 때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제안한 출판사와 계약했다. <나는 슈퍼 계약직입니다>가 나왔다.

초창기에는 글쓰기 플랫폼 앱이 익숙하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쓰더라도 한글 파일에 옮겨 수정을 거쳤다. 나중엔 반대였다. 대부분 모바일로 보기 때문에 ‘모바일 최적화’를 고심하다가 최종 퇴고를 스마트폰에서 했다. 기능이 강화돼 맞춤법도 자동으로 검사할 수 있다. 메모나 아이디어를 끼적일 때는 노트 필기 앱 에버노트를 이용한다. 날짜별로 자료 보관이 편리하다.

초안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작성한다. 잠들기 전, 산책, 여행, 화장실 가는 시간을 활용한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스마트폰을 더 하는 건 아니다.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손목이 아프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더라도 어깨는 아프니까 어차피 아플 바엔 간단한 걸 선택하기로 했다.

그의 글을 읽은 독자가 이따금 의견을 보내온다. 계약직이라는 한 독자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계약직이라는 말을 부끄러워 못한다고 했다. 늘 당당하지 못하고 작은 존재가 된 기분인데, 이씨의 글을 읽으며 어떤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도 일하며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회사는 필요할 땐 식구였다가 불리할 땐 선을 그었다. 쓰고 버리는 부품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회사는 아이 낳지 않은 기혼자를 선호하지 않는다. 결혼과 임신, 남편의 직장까지 캐묻는 한 면접에서 화가 나 “일 잘하는 사람은 비전 없는 회사를 선호하지 않는다”라며 업무 환경부터 개선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로 꽉 막힌 삶의 혈을 눌러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고 나면 기의 흐름이 활발해지는 느낌이었다. 글로 비로소 칭찬을 받았다. 일상적인 경험이 글의 소재가 되면서 사람과 주변을 유심히 관찰한다.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도 많아졌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된 건 가장 큰 소득이다. 타인에게 너그러워졌다. 지금은 소설, 웹툰,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과 스터디도 하고 있다. 앞으로 책 두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스마트폰에 써 내려간 짧은 시간이 쌓여서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이 작가가 말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삶이 풀리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더 좋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해요.”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시사IN 조남진
스마트폰은 지하철 등에서 글을 읽는 것(아래)을 넘어 글을 쓰는 도구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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