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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찍은 어떤 사진 이야기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 관장) webmaster@sisain.co.kr 2019년 02월 28일 목요일 제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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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즉물주의라는 말이 있다. 예술의 여러 분야에 쓰이지만 조금씩 그 의미가 다르다. 회화나 조각의 경우에는 사물의 물질성보다 세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론으로 사용된다. 사진에서는 중성적인 사진 매체의 특성을 강조한다.

먼저 사진부터 보자. 랭거 파취라는 독일 사람이 찍은 사진이다. 내용은 별것 없다. 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건조하게 찍은 사진이다. 구성도 특별하지 않고 대상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단지 흑백으로 함석의 질감·표면·생김새 등을 정밀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사진 자체는 충격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영역을 확장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혁신적인 작품은 대체로 자신이 다루는 매체를 다시 정의한다. 예를 들면 인상주의자들은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반사하는 빛을 그릴 뿐이라는 주장을 작품에 담았다. 예를 들면 모네 같은 화가는 변하는 빛을 포착하기 위해 시시한 낟가리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점 그렸다. 개인적으로 모네 그림의 절정기는 만년의 <수련>이 아니라 그 실험적인 시기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찍은 랭거 파취의 사진(아래)은 그 자체가 사진에 대한 정의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즉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 물음에 새로운 답을 내놓았을 때 일종의 혁신이 일어났다. 회화주의 사진은 사진을 그림과 비슷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고, 모던 사진은 사진 고유의 특성이 기계적 중립성·정확성·사진적 시선 등에 있다고 했다. 뉴 컬러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란 흑백이 아니라 색채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냐민, 무차별적 심미성의 위험 지적하기도


신즉물주의라 불리는 독일 사진의 한 흐름도 그러했다. 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찍은 랭거 파취의 사진은 그 자체가 사진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피사체는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며 어떠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그 물건을 바라보는 방식은 심미적이지도 않다. 단지 카메라를 통해 최대한 그 대상이 가진 특질을 무표정하고 건조하게 드러내려 했을 뿐이다.

그는 이 건조함·거리감·냉정함 등을 사진만이 가지는 매체 특유의 성질로 보았던 것이다. 그 성질을 극단화하기 위해 대상을 골랐다. 대량생산된 기능적인 사물과 복잡한 식물, 사람이 없는 건물의 모습 등이 촬영 대상이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는 심미적 대상이 아닌 물건이 하나의 작품 대상이 된다. 그래서 베냐민 같은 이는 무차별적 심미성의 위험을 지적하기도 했다.

랭거 파취는 자신의 사진이 예술을 위한 예술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에 대한 발언이라기보다 디자인적·추상적 성격이 강화되어 나타난다. 1928년에 출간된 <세계는 아름답다>는 이러한 종류의 사진들로 채워진 사진집이었다. 신즉물주의는 사진의 한 획을 그은 태도였고, 이른바 모던 사진의 중요한 갈래였다. 그 흐름은 나중에 유형학 사진이라는 독일 특유의 사진적 대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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