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온 다종다양한 페미니즘 관련 서적 중에 각별히 중요하지만,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한 분야가 있다면 페미니즘 신학에 관한 것이다. 내 눈에 뜨인 책들을 출간일순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소영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뉴스앤조이), 조석민의 〈신약성서의 여성:배제와 혐오의 대상인가?〉(대장간), 한국여성신학회가 엮은 〈혐오와 여성신학〉(동연),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 빌라의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분도출판사), 강남순의 개정판 〈젠더와 종교〉(동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유독 페미니즘 신학에 손을 뻗지 않는 이유는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관계나 기독교 내부의 페미니즘 운동은 기독교 신자들이나 고민할 문제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누군지 몰라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규정력 있는 상식이 되었고, 불교도가 아니지만 자신의 불행을 업에 전가하기도 한다. 또 유교를 타도해야 할 구습으로 여기면서도 효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비기독교인에게마저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정당화해주는 보증인 구실을 해왔다.
성경과 교회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한다. 남성인 아담은 여성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며, 이브는 남성의 갈빗대로 지어졌다. 성경은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법규와 일화로 가득하다. ‘레위기’ 12장 2~5절은 출산한 아이의 성별에 따라 부정한 기간을 다르게 산정한다. 남자아이를 낳으면 산모는 7일 동안 부정하며 33일이 지나야 피가 깨끗하게 되는 반면, 여자아이를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고 66일이 지나야 비로소 피가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들을 낳으면 총 40일, 딸을 낳으면 총 80일이 지나야 산모는 종교적 의례에 참여할 수 있다. 남성 설교가들은 저 구절에 무슨 대단한 의학적 근거가 있는 듯이 말하지만, 저 규정은 ‘레위기’ 27장 2~7절에 여자의 몸값은 남자의 절반이라고 명시했던 당대의 남존여비 사상과 더 잘 조응한다.
이런 차별과 혐오는 유대 민족의 역사서이자 유대교 경전인 구약에만 두드러져 있지 않다. 예수 운동으로 시작된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의 몇 대목을 보자.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에베소서 5장 22~24절).” “여자는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디모데전서 2장 12~14절).”
성경은 중근동에서 살았던 많은 종족이 그랬던 것처럼 가부장 제도와 가치를 당연시했던 유대인의 의식을 반영한 텍스트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혐오와 여성신학〉에 글을 쓴 대부분의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성서를 읽을 때 그 역사와 문맥 그리고 의식적, 무의식적 의도와 목적(이은애)”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때 성경은 “남성에 비해 여성을 부정하고 열등하며 종속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여성혐오’의 근거(송진순)”로 남용될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국 사회와 교회의 긴밀한 상호 관계성을 고려하면, 여성혐오는 또한 한국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박진경)”라는 말을 더욱 귀담아들어야 한다.
각 분야의 페미니즘적 실천은 주류(남성)에 의해 억압되고 말살된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년에 나온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민음사)이 정전이 된 남성 텍스트에 상대적으로 지워진 여성 텍스트를 복원하려는 여성주의 한국 문학사를 위한 첫걸음이었듯이,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역시 주류 신학계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은 끝에 역사 너머로 사라진 선구적인 여성 신학자들을 부활시킨다.
예수가 남성으로 태어난 것은 ‘우연’
데카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이자 신학자 마리 드 구르네(1565~1645)는 모든 지적 영역과 공공행정의 영역은 물론이고 사제직을 포함한 교회 영역에서도 남녀평등을 옹호했다. 구르네는 1622년에 쓴 책에서 예수가 남성으로 태어난 것은 우연이지, 하느님의 독생자를 나타내는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예수가 여성이었다면, 낮과 밤 아무 때나 집을 나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고 군중과 섞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느님이 예수를 남성으로 지상에 내려보낸 것은 그 시대의 관습에 맞추기 위해서일 뿐, 신이 ‘남성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명민했던 여성 신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책을 검열받거나 불태워야 했다.
〈신약성서의 여성:배제와 혐오의 대상인가?〉와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은 교회와 페니미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신자에게, “가부장적임이 명백한 성경 본문과 기독교 전통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재구성하라(백소영)”고 말한다. 앞서 인용한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은 한국 교회가 여성 목사 안수 및 여성 사역자를 배제할 때 내세우는 구절로 악명 높지만, 실상 이 구절은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라는 33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바울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했으며, 서로가 존중하도록 교훈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개신교 안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성서의 구절들에 근거한 것이기보다 한국 사회의 제도와 전통문화 및 종교 속에서 길들여진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의 사상과 관습에 깊이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조석민).”
그러나 문제가 더는 해석이 아니고, ‘남근(男根) 목사’가 우글거리는 ‘교회’ 자체일 때, 방법은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기성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급본적(radical)’인 기독교 페미니즘이 개척하고 있는 이 길에는 아직 많은 동료가 없지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영(靈)’을 받아들인 두세 사람 이상의 공동체를 뜻하므로, 딱히 ‘세습 목사’가 재산을 불리는 제도 교회만 교회라고 간주할 이유가 없다. 양희송은 〈세속성자〉(북인더갭, 2018)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이 아니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는 질문에 귀결하는 새로운 교회론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억압받는 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교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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