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 시사IN 편집국
  • 호수 593
  • 승인 2019.01.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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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게임
마이클 슈월비 지음, 노정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자본주의는 야바위 게임이며 자본가들 입맛에 맞게 조작할 수 있도록 움직인다.”


급진적인 사회운동가의 팸플릿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저자인 마이클 슈월비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이고, 이 책은 미국의 여러 대학 사회학과에서 불평등 수업의 교재로 쓰인다. 저자에게 불평등은 운이나 천재지변 같은 게 아니라 사회구조의 결과물이고,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란 자본주의의 일탈이나 오작동이 아니다. 차라리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내재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로, 불평등은 우리 시대 최대의 논쟁거리로 올라섰다. 슈월비는 “피케티는 사회학자들의 오래된 통찰을 재발견했다”라고 야심차게 선언한다.



카레라이스의 모험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 눌와 펴냄

“인도인이 일본 카레를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일본인은 한 달에 세 번 이상 카레를 먹는다. 일본인만큼 카레를 자주 먹지 않지만 한국인도 카레를 자주 먹는 편이다. 한국인은 향신료가 가미된 인도식 카레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먹는 일본식 카레를 먹는다.
일본의 대표적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일본인들의 솔 푸드가 된 카레의 전파 과정을 추적한다(그 덕분에 ‘카레 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인도의 향신료 요리가 영국 기업에 의해 판매하기 좋게 변형되어 일본에 전파된 뒤 일본의 군대와 학교에서 확산되었다. 이후 민간에서도 많이 먹으면서 카레를 자급하게 되었다. 인도는 향신료 요리를 ‘카레’나 ‘커리’라고 부르지 않고 영국식 카레도 자취를 감춰서 ‘가루 카레’는 일본인(그리고 한국인)의 전유물이 되었다.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김보영·김보화 지음, 서해문집 펴냄

“옆에 있는 여성의 삶이 내가 싸울 이유가 되고 내가 싸우는 이유가 옆에 있는 여성에게 싸움의 증거가 된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의 광장은 여성과 여성 정치인, 여성 대통령으로 환원된 혐오의 언어들이 뒤섞인 페미니스트 정치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탄핵이라는 ‘해일’이 밀려오는데 여성혐오라는 ‘조개’를 줍고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 덕분에 광장은 비로소 민주적일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촛불집회 기간에 집회 안의 집회로 ‘페미존’을 조성하고 집회 공간을 좀 더 평등하고 안전하게 만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촛불 관련 기록물에서 페미존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저자들은 “쓰고 쓰고 또 써서 기어코 남기는 일. 의미를 멋대로 축소시키거나 삭제할 수 없도록 증거를 남기는 일”을 하기로 한다. 강남역 사건 이후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 열 곳을 인터뷰했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임상철 지음, 생각의힘 펴냄

“안녕하세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빅이슈 판매원입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현금 5000원쯤 가지고 다니려 한다. 노숙인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을 언제 만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15년께부터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해졌지만, 카드리더기 소지 여부는 빅판마다 랜덤이다. 빅판을 만나는 족족 사다 보니 하루에 3~4권씩 살 때도 있었다. 그때 내게 빅판은 도움이 필요한 하나의 ‘집단’이었지 ‘개인’은 아니었다. 언젠가 <빅이슈> 안에 끼워진 수신인 없는 편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결코 안녕할 수 없었던 삶의 마디마디가 투박하게 적힌 A4 용지였다. 그 낱장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빅판인 저자가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는 그 자체로 자서전이다. 덕분에 우리는 노숙인이라는 명칭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임상철’이라는 개인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
김애순·이진송 지음, 알마 펴냄

“타인의 삶을 함부로 떠받들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


<계간 홀로>의 편집장 이진송은 ‘경로를 이탈한 여자’다. 학창 시절에 배운 ‘생애 주기별 과업’을 정상 경로로 설정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는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잡지를 통해 결혼 담론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비혼을 선언한 후, 타인의 참견이 늘어난 것은 물론 스스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애순. 78년간 비혼으로 살아온 그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김애순 선생은 독신여성단체를 조직하고 관련 책을 여러 권 저술했다. 두 사람은 닮았지만, 또 달랐다. 김 선생이 비혼을 위해 인정 투쟁을 벌인 ‘사회적 인간’이었다면 이진송은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우선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비혼의 삶, 정확히는 비혼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편견의 시선을 가늠할 수 있다.



어윤중과 그의 시대
김태웅 지음, 아카넷 펴냄

“부월을 지니고 호남으로 가고 경략사가 되어 백성들이 이에 살아났도다.”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 개혁 관료 어윤중에 대한 이야기다. 김옥균 같은 급진 개혁파에 비해 온건 개혁파인 어윤중은 잊힌 인물이나 다름없다. 학계가 사대와 독립, 보수와 개화라는 이항대립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 현실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국가와 민생의 이익을 도모한 인물로서 어윤중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임오군란을 수습하고 지방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다.
특히 갑오개혁 시기에 조세 체계를 혁신해 재정개혁을 이룸으로써 근대 개혁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동학도들을 인정한 최초의 조정 관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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