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게이트에 비관하지 않는 이유
  •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 호수 602
  • 승인 2019.03.2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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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중이다.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 베네치아, 빈, 프라하…. 도시를 들를 때마다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포식하듯 본다. 황금과 청금석으로 색을 입힌 엄격한 중세 제단화와 고통과 환희로 몸을 뒤트는 르네상스 천장화. 아름다웠다. 또 자주 질투했다. 미(美)의 시작과 표준이 자신의 나라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있던 조각상 ‘사비니 여인들 겁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플랑드르 출신의 조각가 잠볼로냐가 조각했는데, 한 남자가 여자를 공중으로 들어올리고 다른 남자는 그 아래에 쭈그리고 앉았다. 여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다.

작품의 모티브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인구가 부족하자 옆 도시국가 사람들을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연다. 잔치에서 모두 술에 취해 있을 때 로마인들은 사비니에서 온 여자들을 납치·강간한다. 이후에도 수백 년간 예술가들은 로마인들이 사비니 여자들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리고 조각했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성폭력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파워게임에서 여성은 싸움터 그 자체

ⓒ정켈

전쟁 중 이뤄지는 ‘전시 강간’은 생물학적 욕구이기도 하지만 약자를 향한 공격을 통해 연대 의식을 쌓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섹스는 권력을 확인하고 연대감을 고취하는 수단이다. 이 같은 파워게임에서 여성은 승자도 패자도 되지 못한다. 싸움의 주체가 아니라 싸움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적이어서가 아니라 적의 아내이거나 딸이어서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 이때 여성을 규정하는 건 남성이다. 권력투쟁은 여성의 몸을 짓밟고, 그 위에서 이뤄진다. 우리의 몸은 전쟁터다.

일부 남성 연예인이 뭐가 아쉬워 강간을 하겠냐는 질문은 섹스가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한다. 이들은 여성을 유혹하지 않고 약을 먹였다.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은 이 점에서 동일한 진실을 드러낸다. 권력을 동원해,  또 권력을 얻기 위해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고 숨겼다. 공권력은 이를 도왔다. 이들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았다. 여성의 몸을 고깃덩어리 취급했다.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문호 버닝썬 대표는 ‘승리 카카오톡 대화방의 대화 내용이 죄가 된다면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죄인’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사회가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상징과 가정 덕분이다. “너 이거 찍어서 유포한다”라는 말이 협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헤픈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 없이 불가능하다. 진정 근본적인 것은, 일상에서 정준영을, 승리를, 김학의를 만들어낸 뿌리 깊은 강간 문화다.

한국에서 연일 들려오는 뉴스를 접하며 자다가도 억울해 벌떡 일어날 만큼 분노했지만 비관하지는 않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버닝썬 게이트는 다르게 풀렸을 것 같다.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다”라는 문구를 띄우고 제2의 정준영이 되지 말자는 글을 SNS 곳곳에서 발견한다. 불법 촬영과 약물 강간이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이러한 변화에는 그동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문제로 만들기 위해 소라넷 폐지 운동과 혜화역 시위 등을 벌이며 싸워온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들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류의 절반이 이토록 변한다면, 세상도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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