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창가에는 환자복을 입은 두 젊은 여성이 나란히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이 몇 시인 것 같아?” 현순씨는 창밖 풍경이 해가 땅에 닿아 있는 어스레한 오후 6시 같다고 답한다. 그 말을 들은 진희씨는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은 해가 땅 밑으로 사라진 깜깜한 밤 9시라고 말한다. 지금은 해가 하늘 높이 떠 있는 토요일 오후 2시다.  
오래전 의학 교과서에서 ‘메탄올이 시신경을 망가뜨린다’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가르치며 교수님은 1960년대 노동자 중에서는 메탄올을 사용해 일하다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과서 구석에 화석처럼 남아 시험 때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 이야기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젊은 노동자의 몸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5년과 2016년에 노동자 6명이 메탄올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삼성과 엘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이었다.  
왜 노동자들은 위험한 메탄올을 사용했을까? 파견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파견업체를 통해 공장에 파견된 이들을 언제든 해고할 수 있지만, 고용주가 마땅히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는 면제받는다. 모든 법이 ‘파견 근로’라는 단어 앞에 멈추고, 그 노동자의 안전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스마트폰 부품을 절삭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을 사용했다. 보안경도 보호복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전교육, 건강진단도 없었다. 그들은 1㎏에 1200원인 에탄올이 아니라 500원인 메탄올을 사용해 일했다. 1㎏에 700원 차이다. 그 700원 때문에 여섯 노동자의 인생에서 오후 2시가 사라졌다.  
〈실명의 이유〉 선대식 지음 북콤마 펴냄
현실은 그 자체로 말하지 않는다. 현실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지려면 누군가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서 쓰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현실은 세련되고 우아한 언어로 금방 사실이 되며,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은 끝내 사실로 도약하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의 통계에 잡히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을 기록하는 일은 지난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몸 밖으로 새어나오는 작은 신음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은 오늘날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더 인간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더욱 절박한 것이다. 그 기술적 혁신이 꿈꾸는 장밋빛 청사진은 실은 누군가의 붉은 피가 흩뿌려진 세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대식 기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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