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챕터를 읽는 순간 예감했다.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몇 권을 꼽아야 한다면 반드시 들어갈 책이라는 것을. 마크 릴라의 〈분별없는 열정〉은 20세기 유럽의 걸출한 철학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되돌아보고, 왜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짚어가는 책이다. 나치를 옹호한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마크르스주의자로 극적 선회한 베냐민,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푸코 등 철학자 총 여섯 명이 마크 릴라의 탐구 대상으로 점찍혔다.

원래 이 책은 〈뉴욕 서평〉과 〈타임스 문학 부록〉에 실은 글을 묶은 것이고,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번역된 바 있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 제목은 〈분별없는 열정: 20세기 지식인들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올해 16년 만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번역을 새로 손봤고, 마크 릴라가 2016년에 쓴 후기가 들어갔다. 번역자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실은 부록은 초판에 이어 다시 한번 수록되었다.

마크 릴라는 분별없는 철학적 충동이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에 이식될 때 그 열정은 전제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암시한다. 실제로 전제주의에 대한 욕구를 보이지 않은 철학자마저도, 심지어 우리 자신마저도 그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문제의 철학자들을 비난하기 위한 책이 아님을 밝히고, 에필로그에서 철학과 정치가 무조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도 아님을 이야기하지만, 마크 릴라가 시라쿠사의 에피소드를 빌려오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철인정치라는 환상을 가지지 않고 마음속의 전제성을 제거한 채 전제자 디오니시오스 2세를 물러나게 하고자 노력했던 플라톤과 디온을 보라는 것이다.

〈분별없는 열정〉
마크 릴라 지음
서유경 옮김
필로소픽 펴냄


물론 이 책에도 한계가 있다. 철학자의 생애를 검토하고 심리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철학과 정치적 선택을 비평하는 방식은 위험해 보이고, 플라톤의 에로스라는 개념을 끌어와 철학자의 충동을 정의 내리고자 하는 시도에는 실증성이 결여되어 보인다. 언뜻 드러나는 생애 묘사 중에는 과도한 비판과 공격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의 가치 역시 분명한데,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이 간과하곤 하는 행위자의 심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점,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철학과 정치의 관계와 자기 내부의 전제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자신의 열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지식인은 무엇이 되는가. 마크 릴라는 답한다. 그는 전제성을 애호함으로써 우리를 배신하는 지식인이 되거나, 우리 내부의 전제성을 호출하는 지식인이 된다. 

기자명 김겨울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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