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주말에 왔다. 냉장고가 내내 앓는 소리를 내 AS를 요청했을 때였다. 필요한 부품의 재고가 없다며 다른 동료에게 연락해 구해오느라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떠나며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고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불친절했다거나 무례했다거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지나친 친절과 과하다 싶은 웃음과 깍듯함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고 착잡하고 슬프게 만든 것이다. 그도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해피콜과 대책서와 CS 롤플레이와 마이너스 성과급과…. 그러니까, 한 달 전 삼성서비스센터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무수한 모멸과 배제의 기술들이.

#2. 그들은 밤에 왔다. 열대야를 참다못해 캔맥주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을 때였다. 건너편 옥상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심지어 로프 같은 것을 어깨에 멘 게 아닌가. 나는 몸을 숨기고 신고를 생각했다. 셀(cell)로 일하는 에어컨 설치 기사들이었다. 아홉 시가 넘은 시간, 베란다도 난간도 없는 건물에 매달려 그들은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추락해 생사의 경계마저 넘어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계란’이라고 부른다지.

그런 ‘말’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내가 지나쳐온 ‘그’들이 〈웅크린 말들〉에 있었다. 폐광 후 물탱크 청소와 도로공사 인부 등을 전전하다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사북으로 돌아와 강원랜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전직 광부 전이출씨가, 취업 알선 학원의 집단숙소 ‘벌집’에 사는 ‘벌’이었다가 구로공단 ‘여공’이었다가 ‘버스 안내양’ ‘식당 아줌마’ ‘공장 아줌마’를 거쳐 ‘청소 할머니’가 된 순덕이, 조선족 노동자와 콜센터 직원이, 넝마주이와 편의점 알바가,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가, 밀양의 덕촌 할매와 강정의 멧부리 박이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윤희의 아식스 운동화가 있었다. 권력에 의해 말해지지 않았기에 누군가 ‘애써 말해야 하는 삶’이.

〈웅크린 말들〉
이문영 지음
김흥구 사진
후마니타스 펴냄


저자는 이들을 ‘대한韓민국이 누락한 대한恨민국’의 ‘한恨국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표준에서 배제된 그들의 은어·속어·조어를 담은 ‘한恨국어사전’을 만든다. ‘그’들의 웅크린 등에 손을 얹고 이름을 부른다. 등을 감싸 그들을 돌려세워 말을 건다. 아니 그들 자신이 된다. 그들의 표정과 말투로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무엇보다 그들의 ‘언어’로 전하는 이야기들은 르포가 아니라 단편소설 같다.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하는 팩트의 참혹함!) 인칭(몸)을 바꿔가며 담담하지만 뜨겁게, 짧은 문장들로 가쁘게 밀어붙여 오는 글들은 때로 고통스러워서 나는 자주 책을 덮었다. 그리고 몹시, 부끄러웠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비트겐슈타인)라면, 나의 세계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내 시의 자리가 다시 깨우쳐졌다. 

기자명 허은실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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