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주말에 왔다. 냉장고가 내내 앓는 소리를 내 AS를 요청했을 때였다. 필요한 부품의 재고가 없다며 다른 동료에게 연락해 구해오느라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떠나며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고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불친절했다거나 무례했다거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지나친 친절과 과하다 싶은 웃음과 깍듯함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고 착잡하고 슬프게 만든 것이다. 그도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해피콜과 대책서와 CS 롤플레이와 마이너스 성과급과…. 그러니까, 한 달 전 삼성서비스센터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무수한 모멸과 배제의 기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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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 않은 독서를 위하여
고독하지 않은 독서를 위하여
장정일 (소설가)
노동은 고역이지만 손발을 맞추는 동료가 있고, 노동요가 있다. 거기에 비해 독서는 홀로 하는 고독한 노동이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듯이 책을 읽으며 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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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 책
워싱턴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 책
남문희 기자
〈백년의 마라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15년 10월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 기사를 준비할 때였다. ‘허드슨 연구소’의 마이클 필스버리 중국전략센터 소장이 지은 책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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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원 때문에 그들은 눈을 잃었다
700원 때문에 그들은 눈을 잃었다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병원 창가에는 환자복을 입은 두 젊은 여성이 나란히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이 몇 시인 것 같아?” 현순씨는 창밖 풍경이 해가 땅에 닿아 있는 어스레한 오후 6시 같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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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추잡함에 대한 연설
세상의 추잡함에 대한 연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기존 세계와는 너무 달라 많은 한국인이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 미미하게 팔려나가다 결국 망각의 세계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책. 앙투안 볼로딘의 〈미미한 천사들〉에 대하여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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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은 왜 점점 늘어날까
인종차별은 왜 점점 늘어날까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최근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 이름 얘기가 나왔다. 친구는 자기가 지은 아이 이름을 말해주며 나중에 학교에 가서 놀림거리가 되지 않게 최대한 무난한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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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범죄소설의 멋진 성취
여성 범죄소설의 멋진 성취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
아름답고 가련한 ‘희생자’로만 주로 묘사되던 소녀들이 ‘살아 있는 존재’로서 전면에 부각되는 미스터리의 수가 크게 늘었다. 오래전 레이먼드 챈들러가 에세이 〈심플 아트 오브 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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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양반의 진면목
한양 양반의 진면목
김탁환 (소설가)
익숙한 대상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 법이다. 단어 몇 개만 적어두어도 나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세월과 함께 흘러간 뒤엔, 몇 개의 단어는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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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와 포퓰리스트 구분법
독재자와 포퓰리스트 구분법
박선민 (국회의원 보좌관)
처음 보좌관을 시작했을 때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을 역임한, 이른바 ‘공안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 같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었다. 나는 사회운동을 하다 진보 정당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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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백씨 이야기’가 나올 때
이제 ‘두 백씨 이야기’가 나올 때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네? 병사라고요? 병사요? 병사 말입니까?(178쪽)” 책을 받아들자마자 사망진단서 작성 일화가 실린 부분을 찾아 읽었다. 2016년 9월25일 14시 임종 직후 백남기 농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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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권 뒷면에는 망원경이 있다
1만원권 뒷면에는 망원경이 있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1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뒷면 바탕에는 별 지도가 엷게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잘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