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대한민국 ‘고롱고사’는 어디인가
  •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 호수 629
  • 승인 2019.10.11 13: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밀렵으로 인해 아프리카 고롱고사에선 상아 없는 코끼리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인간 역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변화해왔다. 오늘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있는 인간은 누구일까.
ⓒEPA2007년 11월 생태계 보존 단체의 조사팀이 모잠비크에서 야생 코끼리의 크기를 측정하는 모습.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모잠비크에서 내전이 시작된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로 5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독립을 쟁취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간 싸움을 대신한 ‘냉전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모잠비크 내전은 이후 15년간 계속됩니다. 전쟁은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결된 1992년에야 끝났습니다. 병원과 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시설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100만명 넘는 사람들이 기근과 전쟁으로 사망한 뒤였습니다.

이 비극으로 인해 희생된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어떤 동물에게 이 내전은 가혹했습니다. 바로 모잠비크에 살던 코끼리였지요.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고기는 병사들을 위한 식량이 되고, 길게 삐져나온 상아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어 ‘무기’가 되었습니다. 코끼리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양측 군대 모두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학살이었지요. 전쟁을 치르기 전 코끼리 4000여 마리가 살았던 모잠비크 고롱고사 지역에는 이제 겨우 500여 마리만 남았습니다. 전쟁을 거치며 그 숫자가 8분의 1로 준 것이지요.

자연 상태에서 상아를 가진 코끼리는 생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상아는 물을 먹을 때 땅에 구멍을 파고 자기 영역을 지키는 싸움을 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니까요. 내전 기간에 대규모 밀렵이 진행되며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가장 먼저 죽어갔습니다. 결국 코끼리는 상아를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11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고롱고사 국립공원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코끼리 가운데 전쟁에서 살아남은 암컷 코끼리의 51%는 상아가 없었습니다. 전쟁 과정에서 상아를 가진 코끼리들이 학살당한 결과였지요.

피부색은 왜 다양해졌을까

전쟁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코끼리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5~24살 암컷 코끼리 중에서도 상아가 없는 경우가 32%에 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거대한 밀렵이 진행되었던 잠비아·탄자니아·우간다 같은 주변 국가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밀렵이라는 생존의 위협으로 인해 아프리카 코끼리는 상아가 없는 동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이러한 생명체의 형질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류는 ‘진화’라는 놀라운 개념을 찾아냈습니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출판한 <종의 기원>은 생명체가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형질을 바꾸고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을 제시했습니다. 다윈의 아이디어를 고롱고사 지역의 코끼리에게 적용해봅시다. 우연한 변이로 인해 아프리카 코끼리의 약 4%는 상아가 없이 살아갑니다. 밀렵 때문에 상아를 가진 코끼리들이 생존경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해지면서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이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과정이 계속해서 축적된다면 결국 상아 없는 코끼리만 세상에 남게 됩니다. 밀렵 때문에 생겨난 극단적인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 압력은 고롱고사에서 살아가는 상아 없는 코끼리의 비율이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피부색도 진화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흔히 피부색에 따라 거칠게 백인종·황인종·흑인종으로 구분하지만, 모든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에 속한 생명체입니다. 600만 년 전 같은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인간이 왜 지금처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생물학적으로는 물론, 피부색에 따른 여러 낙인과 차별이 널리 퍼져 있는 오늘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AP Photo케냐에서 한 아기가 말라리아 백신을 맞고 있다.

피부색은 피부에 존재하는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선크림을 바릅니다. 피부가 상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햇빛 노출로 인한 피부암을 예방하기 위해서지요. 자외선은 동시에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필수 요소이기도 합니다. 비타민 D는 뼈를 형성하는 데 핵심 구실을 담당하는 물질로, 비타민 D가 체내에서 부족할 경우 뼈가 변형되는 구루병(Rickets)뿐 아니라 심장병·대장암 같은 여러 질병에 걸릴 확률도 증가해 사망 위험이 높아집니다.

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는 선크림처럼 자외선 흡수를 방해합니다. 멜라닌 색소가 풍부한 흑인의 경우 백인과 같은 양의 비타민 D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자외선에 5배가량 더 노출되어야 합니다. 햇빛 노출량이 많은 적도 부근 지역에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필요한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멜라닌 색소가 많아야 피부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는 반대로 위도가 높은 러시아나 북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백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햇빛에 적게 노출되는 지역에서는 피부색이 연한 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고, 수만 년 동안 그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연한 피부색을 지닌 이들이 다수가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즉 피부색은 인간 능력의 우월함과는 관련이 없는 일조량에 따른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자연환경에 따른 인간 몸의 진화를 보여주는 좀 더 명확한 증거는 말라리아가 적혈구에 남긴 흔적입니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한 기생충 질환으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매년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감염되고, 그중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입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아프리카에서만 40만명이 넘는 사람이 말라리아로 사망했습니다.

ⓒ연합뉴스서울 시내 한 빌딩에서 직원들이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

1949년 영국 런던 대학 유전학 교수인 존 스콧 홀데인은 신기한 점을 발견합니다. 말라리아가 흔한 지역이 겸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이 분포하는 지역과 지리적으로 유사했던 것입니다. 겸상적혈구병은 적혈구가 변형되어 빈혈을 초래하는 병입니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유전자에 변형이 생겨서 적혈구가 찌그러진 낫 모양으로 변화하게 되지요. 정상 적혈구는 평균 120일을 사는데, 낫 모양 적혈구는 그 수명이 20일에 불과합니다. 그로 인해 체내 적혈구 수가 급감해 빈혈이 발생하고 청소년기 성장에도 큰 장벽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낫 모양의 적혈구가 쌓여서 혈관이 막힐 위험이 증가해 사망률 역시 증가하지요.

전혀 다른 병처럼 보이는 말라리아와 겸상적혈구병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는 바로 이 적혈구의 형태입니다. 낫 모양으로 변한 적혈구에는 말라리아 사망의 주요 원인인 ‘열대열 말라리아원충’이 기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겸상적혈구병을 가진 경우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장점이 있음에도 겸상적혈구병은 그 자체로 생존을 크게 위협하는 치명적 질환이었기에 그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생존에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진화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몸은 둘 모두 이득을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겸상적혈구병이 발생하려면 대립유전자 한 쌍이 모두 변형되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만 변형되는 겸상적혈구 형질(Sickle Cell Trait)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 것입니다. 이 경우 빈혈도 거의 발생하지 않고 적혈구 안에 말라리아원충이 기생하는 것 역시 어려워집니다. 2018년 출판된 한 논문에 따르면, 아프리카 지역에서 겸상적혈구 형질의 유병률은 인구 10만명당 1만6121명으로, 유럽의 803명보다 20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 위험이 높았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겸상적혈구 형질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인간의 몸에 남은 상흔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거주하는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변화해왔습니다.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변화는 인간의 몸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내몰았습니다. 인간의 몸은 아직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지요. 그런 맥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야간노동의 증가입니다. 물론 기록에 따르면 과거 로마제국 시대에도 노예들은 밤에 일하곤 했습니다. 야간노동이 대규모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산업혁명을 거친 20세기 이후입니다. 특히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가 밤을 무력화하는 결정적 구실을 했습니다. 오늘날 야간노동 하는 곳을 찾기란 어렵지 않지요. 공장은 물론이고 병원·방송국·대중교통·콜센터·택배 서비스까지 우리 일상에 야간노동은 공기처럼 존재합니다.

ⓒ시사IN 이명익2018년 12월2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새로운 위협, 야간노동

오랜 시간 인간의 몸은 낮에는 햇빛 아래서 일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수면을 취하도록 진화되어왔습니다. 야간에 불빛에 노출되며 노동하는 일은 인간 세포의 생체시계를 무너뜨리고 호르몬을 교란시켜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반해 2008년 덴마크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발표됩니다. 덴마크 직업병판정위원회는 항공기 승무원으로 20년 넘게 일하며 매주 한 번 이상 야간노동을 계속해왔던 여성에게 발생한 유방암을 산재보험으로 보상하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결정 이후 야간노동으로 인한 질병이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야간 교대노동이 발암 요인이라는 근거는 학술적으로도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교대제 근무(shift work)’를 납과 같은 등급인 유력한 발암물질(IARC 2A, Probable Carcinogen)로 분류했습니다. 전 세계 노동인구 중 20% 정도가 야간 교대제 근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결정이었지요. 2019년 7월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국제암연구소가 주최한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 27명은 2007년 결정 이후 출판된 논문을 재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교대제 근무’를 여전히 ‘유력한 발암물질’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며,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발암물질의 이름을 ‘야간 교대제 근무(night shift work)’로 바꿉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뿐, 야간 교대제 근무는 유력한 발암물질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현대인이 야간에만 노동을 계속한다면 몸이 그 상황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이 질문에 답한 학자가 있습니다. 파리 제5대학 시몽 폴카르드 교수는 야간 교대제 근무를 다룬 기존 연구들을 모아 검토한 후 2008년 학술지 <국제 시간생물학(Chronobiology International)>에 그 결과를 발표합니다. 논문에 따르면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 중 멜라토닌 호르몬으로 관찰한 생체시계 변화를 기준으로 야간노동에 온전히 적응한 것으로 드러난 비율은 3%가 안 되는 극소수였습니다. 수백만 년 변화를 거치며 형성된 인간의 몸은 새로운 위협인 야간노동과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은 대다수가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살아갈 뿐이지만 그 몸에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겪은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몸이 현재 보내는 시간은 조상과 후대를 잇는 진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변화일지언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월 동안에도 진화의 힘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보건학자로서 다윈의 생각을 2019년 한국 사회에 가져와봅니다. “오늘날 ‘자연’선택을 통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있는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지요.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고롱고사 코끼리의 상아가 사라지고 있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과 결이 다른 생존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2019년 한국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조건은 말라리아와 같은 자연환경이 아닙니다. 더 많이 다치고 더 일찍 죽는 사람은 저임금을 받으며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입니다. 지난해 12월 새벽 3시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낀 채 사망했던 태안화력발전소의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의 죽음은 가장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다 가장 먼저 죽어가는 수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경쟁하는 무대 자체가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코끼리가 동료와 부모가 무참히 죽어나가던 전쟁 중인 고롱고사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코끼리는 안전한 국립공원에서 보호받으며 지내는 것처럼요. 같은 시대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2011년 <지역보건과 역학(Journal of Epidemiology and Community Health)>에 발표된 이화여대 정최경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사망 불평등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1995~2000년 태어난 어린이를 기준으로 1~4세 영유아에서 아버지가 중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경우,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경우와 비교해 사망률이 2.5배 높았습니다. 5~9세의 경우 이 수치는 2.8배로 증가합니다. 이러한 사망률 차이의 가장 큰 이유는 교통사고를 비롯한 사고성 재해입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더 위험한 지역에서 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대개 사고를 당했을 때 즉시 필요한 응급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더 자주 다치지만 더 천천히 치료받습니다.

진화의 힘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요. 한 사회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목숨이 부당하게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인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2019년 한국 사회의 ‘고롱고사’는 어디인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상아가 없는 코끼리’는 누구인지, 이 부조리한 생존경쟁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밀렵꾼은 누구인지에 대해 말입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