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 마을에 동네서점이 들어섰다. 이름은 ‘일단 멈춤’. 햇볕이 들어오는 큰 창과, 나무, 책이 한데 어우러진 서점은 재개발을 앞둔 건물 틈에서 맑은 공기를 품었다. 독립출판물 서점 ‘퇴근길 책 한잔’과 음악 도서 전문 서점 ‘초원서점’이 인근에 자리를 잡으며 오래된 골목은 동네서점 산책로로 이름을 알렸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단 멈춤은 2016년 8월31일 문을 닫았다. 경영난이 폐업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책방이 운영되는 것도 아니었다. 주 6일 하루 평균 9시간 이상 근무하고도 월세, 세금, 위탁수수료 등을 제하면 60만~80만원을 손에 쥐었다. 하루 2만원여를 손에 쥐는 일은 노동의 대가일까, 좋아서 하는 일에 따라온 성과일까.

책방은 오늘 매출이 높아도 과연 내일은 손님이 올지 알 수 없었다. 얼마 못 가 월세와 모객, 수익을 걱정하는 일로 바뀌었다. ‘일단 멈춤’ 운영자 송은정씨는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확신 대신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자신과 더 자주 마주쳤다(〈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효형출판, 2018)’라고 고백한다. “‘현재’의 어려움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미래 없음’이 괴로웠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점을 운영해볼까’ 생각하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도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하지만 해야 할 일의 목록만 보면 낭만보다 현실에 가깝다. 정산, 택배 포장, 입고된 책 SNS에 소개, 음료 준비, 설거지 등에다 앞날에 대한 불안까지 더하면 홀로 감당하기 버겁기만 하다.

ⓒ일단 멈춤 송은정 제공2014년 11월∼2016년 8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운영한 동네서점 ‘일단 멈춤’.

어떤 노동은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동네서점의 서가는 운영자의 개성과 감각을 집대성해놓은 결과이지만, 그들이 부지런히 책을 읽고 품을 들여 소개해도 돌아오는 대가는 궁색하다. 독자가 동네서점 서가에서 책을 발견하더라도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면 어쩔 수 없다. 대형 인터넷 서점의 무료 배송, 굿즈, 10% 저렴한 혜택과 경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합리적 소비 말고 ‘투표적 소비’

서울 상암동 동네서점으로 이름을 알린 ‘북바이북’은 지난 7월1일 매장 운영자를 찾는 공지를 올렸다. 판교, 광화문까지 매장을 넓혔지만 결국 끝을 맞았다. 심야 서점 등 특색 있는 행사를 열었던 ‘북티크’는 서교동, 논현동에 둥지를 틀었지만 모두 접었다. 소규모 동네서점의 경우에는 정확한 정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가가린’ ‘기억 속의 서가’ ‘물고기이발관’ ‘책방오후 다섯 시’ ‘커피차가 있는 서점’ 등 다수 책방이 다음을 기약했다. 

결국, 서점은 책을 팔아야 한다. ‘그곳’에서 책을 사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서점만의 매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2년간의 영업을 마치고 휴지기에 들어간 ‘사적인 서점’은 2017년 봄부터 SNS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사적인 서점 운영자 정지혜씨가 읽은,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서너 권을 소개하고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꼭 “사적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책을 전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품을 존중받고 싶다고 한다. “사적인 서점의 엄선된 큐레이션과 정성이 담긴 소개 방식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도서 구입으로 그 수고를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돈을 써서 최대 이익을 얻는 ‘합리적 소비’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넓히거나 공감하는 것에 돈을 쓰는 ‘투표적 소비’. 좋았으니까, 응원하니까, 돈으로 한 표 행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유유, 2018).” 동네서점의 실험은 운영자와 독자 간 상호 존중과 이해가 밑바탕이 될 때 지속 가능하다. ‘질문서점 인공위성’은 에디터가 선별한 도서를 커버로 씌워 표지를 볼 수 없게 만든 뒤, 해시태그만 달아서 판매하는데, 놀라운 아이디어로 매출도 상승했다고 한다. 가장 주요한 승부처는 독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떤 실험이 운 좋은 누군가의 로또 당첨일 뿐이라면 동네서점 전반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렵다. 동네서점 운영자들은 공통적으로 출판사 공급률, 도서정가제 등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 유통 구조상 서점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수요는 한정되어 있고, 가격은 출판사가 매기고, 마진은 도매상이 정하기 때문이다(〈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브로드컬리).” 

동네서점 ‘이후북스’의 황부농씨는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알마, 2018)에서 ‘열고 싶으면 열어야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책방이 곳곳에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돈벌이는 안 될 것이다’라고 썼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책방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 특색 있는 서점의 출현은 탁월한 작가와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일 것이다. ‘동네서점 열풍’을 지나온 동네서점은 문화적 흐름으로 안착해가는 길에 놓여 있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왼쪽부터).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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