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송두율 “나는 지금도 경계인이다”


한 코스모폴리탄의 ‘이상한 조국’

 

송두율은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유학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도쿄 물리학교 출신으로 한글 타자기와 컴퓨터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한 송계범 전남대 교수다. 광주 중앙초등학교와 광주서중을 졸업했다. 19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했다.


유학 시절인 1974년 3월1일 유신독재 타도를 내걸고 윤이상 등과 함께 ‘민주사회 건설 협의회(민건)’를 만들어 초대 의장을 맡았다. 민건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실명을 밝히고 반유신 활동을 벌였다(사진). 그때부터 송두율은 정보기관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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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보수 언론은 그의 교수 자격을 의심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판결문에도 나오듯 그는 1972년 위르겐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뮌스터 대학에서 사회학 분야 교수자격(Habilitation)을 취득했다. 1994년 8월부터 훔볼트 대학 한국학 초빙교수로 재직하다, 1998년 3월 뮌스터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 당시 뮌스터 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대표해 한국에 와서 구명운동을 펼친 크리스만스키 명예교수는 “송 교수는 뮌스터 대학 사회학연구소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1991년 서울대 1년간 초청, 1996년 부친상, 2000년 늦봄통일상 수상 등 여러 차례 귀국할 기회가 있었는데, 매번 공안 당국이 조사나 준법서약서를 요구해 귀국을 포기했다. 1995년부터 6차례에 걸쳐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가 후원하는 남북해외 통일학술회의를 개최했다(사진). 200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37년 만에 귀국했다가 체포되었다. 국정원은 귀국 하루 전날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국정원 조사 첫날, 1973년 방북과 노동당 가입 사실을 진술했고, 보수 언론을 통해 확장되면서 여론재판을 당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구속을 반대했지만, 검찰 공안부 주도로 구속되었다. 2004년 3월 1심 재판부는 반국가단체 구성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004년 7월 2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난 그는 2004년 8월 독일로 돌아갔다. 2008년 대법원은 송 교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한 뒤 방북한 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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