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서 ‘거세’라는 단어를 접했다. 앞에 ‘화학적’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1940년대 나치스의 아우라가 가득한 이 섬뜩한 우생학적 단어를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경계도시2〉는 바로 이 거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대상은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 혐의를 받던 송두율 교수이다. 그의 행적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문제는 그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이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그의 생각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들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한 철학자를 윽박질렀다. 여기에는 좌우가 따로 없었고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언론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 사람들은 기광을 부리며 날뛰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문화대혁명이 재현됐다. 누군가 그의 목에 큰 칼을 씌웠고 그의 이마에 ‘간첩 송두율’이란 글씨를 새겨 넣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정확하게 ‘화학적 거세’였다.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송 교수가 가족·변호인단과 함께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하버마스의 성실한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양심을 훼손당한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독창적인 학문적 사유와 숭고한 자유주의의 신념은 그가 흘리는 붉은 피에 덮여 지워져버렸다. 그는 공개적으로 노동당 탈당과 독일 국적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이 레드콤플렉스와 파시즘의 광기 앞에 내면적 가치는 유린당했고 한 경계인은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향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자리가 편치 않았고 자주 한숨이 나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다. 수많은 언어가 난무했다. 전향·경계·준법·서약·맹세·고백·포용…. 인간의 복잡한 사유와 문명의 산물인 언어는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것은 사악하고 혐오스러웠으며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물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후회합니까?” 그가 대답했다. “네, 후회합니다.”

그는 과연 사람들의 바람대로 거세되었을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세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렇다! 나는 영화 말미에 공개적으로 거세당한 것은 참여정부하에서 1년여 동안 펼쳐진 이 고통스러운 블랙코미디를 지켜본 한국 사회이며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영화를 본 후 각자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벗고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자신의 ‘거시기’가 온전히 붙어 있는지를.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제자이자 뮌스턴 대학 교수인 송두율(66)은 1968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1970년대 현지에서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반체제 인물’로 분류됐고, 1991년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는 이유로 ‘친북 인사’로 분류됐다. 그래서 2003년 9월22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을 받아 37년 만에 귀국한 송 교수는 다음 날 바로 국정원 조사를 받아야 했다.

국정원과 검찰 조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초점은 ‘송 교수가 무엇을 말하러 한국에 왔는가’보다 ‘그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인가 아닌가’, ‘그는 우리 편인가 아닌가’를 검증하는 데에 맞춰졌다. 특히 송 교수가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김세균 서울대 교수의 말마따나 “전쟁이 나도 그만큼 떠들썩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 신문들은 송 교수 기사로 지면을 도배했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모든 행적을 반성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법질서를 지킬 것을 맹세하라”라고 철학자에게 사실상의 ‘전향’을 요구했다.

이 사건이 법원에 넘어간 뒤, 송 교수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철학 사상과 무죄의 근거들을 낱낱이 밝혔다. 하지만 이미 그를 ‘간첩’으로 결론내버린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04년 7월 2심 판결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송 교수는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1년 뒤 대법원은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송 교수는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았다.   

기자명 천명관(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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