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1심 최후진술.

“존경하는 재판장님. 37년 만에 경계인으로서 조국땅을 밟으면서 저는 다섯 마리 원숭이에 대한 우화를 생각했습니다. 사육사가 매일 아침 나무 꼭대기에 신선한 바나나를 매달고, 전류를 통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 원숭이가 바나나를 따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흐르는 강한 전기에 놀라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원숭이도 연이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새로 들어온 다섯 번째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려 하자, 네 마리 원숭이가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원숭이는 만류를 뿌리쳤습니다. 사육사가 이미 전류를 끊었는데도, 네 마리 원숭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국가정보원과 공안검찰, 거대 언론, 그리고 이른바 지식인들이 바로  위에 지적한 네 마리 원숭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네 마리 원숭이가 벌였던 그 시끄러운 굿판이 결국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몰고 올 또 한 번의 충격을 기대해봅니다.”

과연 송두율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시끄러운 굿판’은 한심한 ‘도깨비 장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판명났다. 송두율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9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다시 4년 뒤, 네 마리 원숭이가 덮어씌운 ‘간첩죄’ 혐의를 거의 대부분 무죄로 판시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원숭이의 예언이 차례로 현실이 되었지만, 그가 1심 최후 진술에서 언급한 마지막 ‘기대’만은 실현되지 않았다. 뒤늦게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또 한 번의 충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가 지적하듯이 “상처는 깊고 선명한데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2003년 9월. 그해 가을 대한민국이 보여준 광기와  광란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둘뿐이다. 송두율 자신, 그리고 ‘송두율 사건, 그 이후’를 알고 싶어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 홍형숙 감독. 남과 북 어느 한쪽으로 투항(?)하지 않고 꿋꿋하게 경계인으로 남겠다던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 송두율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경계도시〉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 7년 만에, 홍형숙 감독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속편을 완성했다.

“(송두율 교수가 독일로 돌아간 후) 그로부터 5년이 흐르는 동안, 송 교수 스스로 자신의 책을 통해 당시 사건에 대해 얘기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 한국 사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중략)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09년 송두율은 더 이상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송두율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 속편을 만들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송두율의 죄가 ‘한국으로 돌아온 죄’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고 최소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거라고 믿은 순진함이 죄다.

솔직히 〈경계도시〉는 그저 그랬다.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경계도시 2〉는 다르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고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국가정보원, 공안검찰, 거대 언론, 그리고 이른바 진보라는 가치를 지지한다던 지식인들. 이 네 마리 원숭이가 펼친 눈부신 활약(?)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속편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하루아침에 배반하고 자유 대한의 품으로 귀순하지 않는 한 다섯 번째 원숭이가 설 곳은 없다. 그런 나라에 사는 게 답답한 여섯 번째 원숭이가 카메라를 잡았다. 이제 당신이 일곱 번째 원숭이가 될 차례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또다시 벌어지는 ‘시끄러운 굿판’의 실체를 간파하고 ‘도깨비 장난’의 슬픈 허상을 부끄러워하며, ‘또 한 번의 충격’을 받을 차례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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