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책에서 보게 되는 가장 나쁜 공직 임용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매관매직(賣官賣職)과 음서(蔭敍)라고 하겠다. 매관매직이란 문자 그대로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파는 것’이고, 음서는 ‘양반 귀족의 자제가 부친의 후광으로 벼슬을 하는 것’이다.

광복이 되고 우리 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직업 공무원제가 확립되는 데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오늘날처럼 국가시험을 통한 공무원 임용제도가 확립된 것은 제3공화국부터이다. 입학시험과 공무원 채용시험을 엄정하게 시행해서 자유당 시절에 만연했던 ‘뒷문’을 막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공무원 채용 창구를 시험으로 일원화한 데 힘입어 관료제도가 정착되었고, 덕분에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성장 정책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 고위직이 반드시 관료로만 채워지지는 않았다. 제5공화국까지는 군 출신들이 각료 등 정부 고위직과 공공기관 임원으로 많이 진출했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공기업과 공단의 임원으로 진출했는데, 언론은 이런 인사를 ‘낙하산’이라고 불렀다. 이것도 특혜라면 특혜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같은 낙하산들은 대개 무해무익(無害無益)했던 것 같다. 이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해악을 끼치지도 않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천하의 YS와 DJ도 그런 인사를 할 때면 혹여나 관료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눈치를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서는 낙하산 인사가 노골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무슨 포럼이니 연대니 하는 사조직에 가담했던 전직 관료와 교수들을 공기업 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방송통신에 관해 아무런 지식도 없어 보이는 인사를 해당 기관의 위원으로 주저함 없이 임명했다. 과거에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들이 오랫동안 쉬다가 격(格)에 맞지 않는 자리를 다시 차고 든 경우도 많이 보인다.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긴 ‘올드 보이’들이 보톡스와 머리 염색으로 재무장하고 엉뚱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2007년 ‘MB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의 고위 공직 진출은 정말 눈부시다. 정권을 창출한 참모들이 새 정권의 정무직에 진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도 나름 합당한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현 정권에서는 그게 실종되어버렸다. 문책성 사임을 한 사람들을 전문성과 무관한 자리에 임명하는 관행도 과거 정권에서는 없던 일이다. 전문성도, 연관성도 없는 사람들이 오직 캠프 인연으로 각종 공직을 차지해서 엽관제(獵官制)를 방불케 하더니, 드디어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창피한 사고가 나고 말았다.

판검사 임용,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넘어가 ‘음서’ 영향권에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고위 공직자의 인사 풀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추진해온 공무원 특채제도가 현대판 음서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장관 등 외교부 고위직이 자기 자식들을 자기가 근무하는 부서에 특채했으니, 최소한의 염치가 사라져버린 우리나라 지도층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와중에서 법무부가 법학전문대학원장의 추천으로 검사 인턴을 채용하는 방안을 내놓자 사법연수원생들이 현대판 ‘음서’라면서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그런 제도가 결국은 배경과 로비에 따른 검사 임용을 초래할 것이라 여긴다.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현대판 음서제’가 성행하는 요즘 세태 때문이다. 대기업·로펌 등 좋은 일자리를 놓고 많은 사람이 경쟁을 하다보니 결국에는 ‘바지 바람’이라는 부모 배경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러해도 판검사 임용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임용하는 관례가 확립되어서 기댈 만한 부모가 없는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는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로 넘어감으로써 이제는 판검사 임용도 ‘음서’의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법시험이나 공무원 시험도 공부를 할 만한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 유리하지만 그래도 이런 시험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그나마 공정한 게임이었다. 성적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공직 임용에는 ‘엽관’이나 ‘음서’보다는 시험이 훨씬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기자명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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