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택의 전세가가 상승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그러자 ‘전세가 상승세가 매매가를 밀어올릴 것’이라거나, ‘이참에 집 한번 사볼까’ 하는 식의 선동적인 제목을 단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지금처럼 전세가가 오르면 주택 가격이 오를까? 198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 전세가가 크게 상승한 뒤 매매가 상승세가 커진 경험에 견주어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이른바 주택 가격 대세 상승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대세 하락기에는 통하지 않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오른쪽 도표를 살펴보자. 참고로, 위쪽은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 지수 추이로 나타낸 1986년 이후 서울 지역 주택 가격 사이클이다. 아래쪽은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세가 추이, 그리고 전세가 지수와 매매가 지수 간의 차이를 나타낸 도표이다.

ⓒ시사IN 안희태‘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매입하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도표를 보면, 전세가의 상승률이 크게 나타난 시기는 대부분 대세 상승기 초기로, 이때에는 단기적으로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치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수급 불균형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이다. 이후 부동산 투기 붐 등에 편승해 주택 공급이 단기간에 급증한 뒤에도 전세가가 비교적 꾸준히 상승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집주인들이 급상승한 매매가 수준에 맞춰 더 많은 전세 보증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가 지수에서 매매가 지수를 뺀 차이를 보면, 전세금이 집값 상승분을 모두 충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해 갭이 2002년 이후 지난해 중반까지 계속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세 하락기에 전세 주택 수요 증가해

그러나 주택 가격이 대세 하락 흐름에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주거 소비자에게 자가 주택과 전세 주택은 대체재 관계이다. 이들 잠재적 주택 수요자는 대세 상승기 때에는 ‘전세 레버리지(전세를 끼고서 주택을 구매하는 것)’를 이용해 집을 사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반면 대세 하락기에는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이 줄면서 자가 주택 수요는 줄고, 전세 주택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전세 전환 수요나 매매 포기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대세 하락기 초기 매매가가 떨어지는 시기에도 전세가는 일시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과거에도 나타난 바 있다. 도표를 보면 1991년 4월 이후 서울의 매매가가 하락세인데도 전세가는 1991~1997년 하반기까지 완만하지만 상승세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동시에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주택 가격 하락기에는 반대로 매매가 하락 또는 침체 속에 전세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 전세 시장에서 나타나는 ‘매매가 침체-전세가 상승’은 바로 이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매매가 하락과 전세가 상승은 대세 하락기 초반의 모습에 가깝다. 따라서 일부 부동산 업계와 언론에서 현재의 전세가 강세 현상을 주택 매매가 상승의 전조로 읽는 것은 과거 대세 상승기와 최근 대세 하락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는 서울의 전세가 지수를 매매가 지수로 나눈 비율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가파르게 오르던 주택 가격이 1991년 4월을 기점으로 하락하자, 이 비율도 급락해 저점을 기록했다.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전세가는 계속 상승해 이 비율은 외환위기 전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외환위기 직후 급락했다가 2000년대 초반에 급상승했다. 하지만 전세가에 비해 매매가가 급등한 2002년 이후부터 이 비율은 가파르게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세가에 비해 매매가가 그만큼 과도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5월 이후 전세가가 상대적으로 더욱 강세를 띠자 이 비율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현재의 전세 가격 상승은 1991년 4월 이후처럼 주택 가격 하락으로 상대적으로 전세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미입주·미분양 물량 산적해 ‘집값 상승’ 어려워

사실 최근의 전세가 상승세는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는 ‘하우스 푸어’들이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려고 전세가를 올리는 측면이 작용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집주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는 상당수 언론의 선동 보도도 한몫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적어도 과거처럼 집값이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주택 매수를 포기하고 전세로 눌러앉거나, 주택을 매도한 뒤 전세를 넓혀가는 현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최근 서울의 전세가 상승세가 집값을 밀어올릴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오히려 과거와 같은 집값 상승을 전망하는 가계가 급감하고 있는 징표라는 점에서 오히려 일정한 시점에는 집값 하락이 재연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더구나 인천 영종·송도 신도시와 김포·파주·고양·용인·화성·남양주 등 경기도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도 미분양과 미입주 물량 등이 잔뜩 쌓여 있는 판에 매매가가 계속 오르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8·29 대책’ 등 정부의 억지 부양책 등에 기대어 억지로 버텨온 다주택 투기자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점에 이르러 매물을 쏟아내면 전세가와 매매가가 자연스럽게 큰 폭으로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주택 가격 수준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수요는 사실상 거의 바닥나 주택 가격이 상승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반 가계들은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일부 언론의 억지 보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신중하기를 바란다.

기자명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