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처리된 한국토지주택공사법(LH공사법) 개정안에서 수정된 조항은 ‘한 줄’이지만 앞으로 초래할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LH공사법 11조, 토지주택공사(LH)의 손익금 처리와 관련된 조항이다. 이제까지는 LH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내부 적립금으로 해결하고 그것도 안 되면 이익 준비금으로, 그마저도 모자라면 ‘다음 사업연도로 이월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이를 ‘정부가 보전한다’고 바꾼 것이다. LH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울 길이 열린 셈이다.

ⓒ뉴시스빚더미에 앉은 LH 구조조정에서 세종시(위), 보금자리주택 등 국책 사업은 제외되었다.

LH 부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총부채가 125조원, 부채 비율은 541%에 달한다(아래 그래프 참조). 정부 부채(407조원)의 3분의 1이 넘고 전체 공기업 부채(274조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고 보면 이지송 LH 사장이 12월29일 LH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계획된 사업을 다 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말도 과장은 아니었다. 현재 부채로 인한 월 이자 부담만 해도 하루 100억원. 200만 가구에 한 달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36만3000원)를 전액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에도 영향 미칠 것”

그런데 웬일인지 칼자루는 LH가 쥔 꼴이다. 지난해 12월 장광근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LH공사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해온 LH의 호소는 ‘겁박’에 가까웠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이미 진행 중인 사업까지 중단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혀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기 지역구 해당 개발 사업의 변경이나 취소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 이후, 자산이 130조원으로 국내에서 삼성그룹 다음으로 규모가 큰 대기업으로 출범한 LH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부채 비율이 100%대인 일반 상장기업에 비한다면 LH의 재무구조는 벌써 부도가 났을 정도로 취약하다. 김진애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LH 문제의 핵심 중 하나로 ‘회계’ 관리를 지적했다.

“지금 상태로는 도대체 어떤 사업에서 얼마가 이익이고 손해가 났는지 사업별 집행 내역을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LH법 개정안은 국민 세금이 수반되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에 따른 비용추계서조차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되었다.”

일찌감치 전문가들은 LH에 ‘구분 회계’를 요구해왔다. 손실보전에 앞서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에 기반한 구조조정이 먼저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LH와 정부는 부채 증가 원인을 과거 정부 탓으로만 돌리며 책임 소지가 드러날 수 있는 회계 자료 공개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시사IN 윤무영12월8일 날치기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문제의 ‘LH공사법’이 통과되었다.

새로운 회계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LH 측은 내년 5월에 나오는 외부 용역(삼일회계법인) 결과를 토대로 2년 뒤에야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 정권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과 겹친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정부가 공기업에 대해 손실보전을 명문화한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굉장히 안 좋은 선례’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정부 사업 하다가 덮어쓴 거라고 하면 도리 없지 않나. 그럴 거면 공기업을 왜 만드나.”

가늠해보자. LH공사법 개정으로 초래되는 재정 부담은 얼마나 될까? 정부는 개정안의 ‘단서 조항’으로 “보금자리주택사업, 산업단지조성사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익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에 한한다”라고 제한했지만, LH의 해석은 달랐다.

자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LH가 수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업이 국책 사업으로 공익사업에 해당하므로 사실상 LH 사업 전체에 대한 손실보전을 규정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앞으로 세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LH의 모든 사업을 손실보전 대상인 공익사업으로 지정토록 국토해양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형태는 어떨까? LH 관계자는 “출자 형식뿐만 아니라 현금 지원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4대강 사업 수행으로 심각한 재정문제에 봉착한) 수자원공사의 이자 부담을 당초 출자 형태로 지원하려다 최근 시행령을 바꿔 보조금 형태로 직접 지원키로 해 논란을 낳았다.

 
무엇보다도 ‘손실보전’ 조항의 명문화로 LH의 신용도가 높아지면서 유동성 해소에 숨통이 트였다. LH는 지난 8월 이후 국민연금·농협 등 채권 시장 ‘큰손’들이 채권 매입에 난색을 표하면서 채권 발행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부채를 채권으로 돌려막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아울러 각종 연기금의 투자 폭도 확대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일반적으로 회사 자본금의 50% 수준으로 채권을 보유할 수 있지만, ‘정부가 손실 보전을 한다’는 조항이 있으면 80%까지 투자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8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LH 채권 투자액은 10조6335억원. 노무현 정부 말기까지 3조7000억원이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국민연금이 떠맡아야 할 LH 구원투수 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 밖에도 ‘은근한’ 지원 방식은 많다. LH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 지역의 주변 도로 등 간접시설 비용을 정부 돈으로 충당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LH 손실보전법이 사실상 ‘백지수표’를 발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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