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사건이 발생한 3월26일부터 합조단의 발표가 나온 5월20일까지 북한의 행위로 예단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 때문에 초기에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 차이로 인해 한·미 동맹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최근 대북 경고 메시지를 연이어 표명하는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차관도 처음에는 천안함 침몰에 함정 자체 이외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고 어뢰설을 우회적으로 부인했으며,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역시 북한의 소행이라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 ‘천안함 정보’는 한국에 의존?
그러나 합조단 발표 이후 미국은 태도를 바꿨다. 북한의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한국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동조 방침을 표명했으며,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한 적극 지지를 재확인했다. 과연 이러한 행동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쉽게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은 사안 자체가 너무 예민한 터라 당사자인 한국 측 조사가 끝날 때까지 미국은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다가, 조사의 결론이 분명해지자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식의 설명일 것이다. 미국 정부의 설명도 이 수준에서 대동소이하며, 자신들의 입장이 바뀐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미국이 언제부터 한반도의 중대한 군사 정보를 한국으로부터 받아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왔는가 하는 중요한 의문점을 해소할 수 없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천안함 침몰 당시 서해에는 미국의 이지스함 2척과 한국 이지스함 1척을 포함한 최첨단 해군이 합동으로 독수리훈련 중이었다(이 때문에 미군 핵잠수함 관련설을 포함한 온갖 소문과 억측을 낳았다). 남해안이나 제주해협도 아니고 북한과 근거리에 대치하는 지역에서 북한 잠수함이 한·미 합동경계태세를 뚫고 아군 함정을 격침한 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가능할까? 9·11 테러처럼 미국 안방에서도 비밀리에 기습하는 적을 사전에 막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불가항력이라는 해명을 수용하더라도, 공격하고 도주하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더욱이 미국은 거의 두 달간 사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한국 정부가 분석하고 제공한 정보를 받고 나서야 행동을 정했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미 동맹의 신뢰도 추락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정보전 능력을 가졌다는 미국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어야 한다. 한·미 연합사는 한국군이 몸통을 구성한다면, 머리에 해당하는 정보전은 전적으로 미국이 담당하는 구조이다. 그런데도 사태 파악을 못했다거나, 또는 한국의 정보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정보 부서들을 포함해서 미국 행정부가 발칵 뒤집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회 청문회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사건 직후 의회나 미국 행정부에서 어떤 특이 사항도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미국이 북한의 공격으로 간주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뒤늦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극 지지로 돌아서 북한 때리기에 동참하게 된 것일까? 미국 정부 내의 움직임을 알기 어려워 확실한 결론은 내리기 힘들지만, 관련 징후를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건 직후 미국의 최대 관심은 위기상황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사건 직후 한국 정부의 강경한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직간접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자제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북한 공격의 증거를 확보했다는 한국 정부의 목소리는 더 단호해졌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 전략적 이해득실 차원으로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국은 잃을 게 없는 유리한 게임
여기에 오바마 행정부 내부의 역학관계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와의 차별화로 대화 국면을 통한 해결을 천명한 지난 1년6개월 가까이 대북정책은 무정책에 가까울 정도로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2차 핵실험 감행으로 교착 상태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미국은 지난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대화의 물꼬를 트려 했지만 6자회담이나 북·미 회담이 생각만큼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더욱이 여러 차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 사실화하는 듯한 태도가 대내외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협상파의 운신의 폭이 좁아짐으로써 강경파의 목소리가 꾸준히 커졌으리라 보인다.
한국이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고, 여기에 미국 행정부 내부의 강경파가 동조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고 한국을 지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득이 더 많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도 이 국면은 미국이 잃을 게 별로 없는 유리한 게임이다.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한·미 동맹을 챙기는 동시에,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껄끄러워졌던 일본과의 관계도 기지 이전을 포함해서 상당 부분 미국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을 감싸려는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이 앞장서고 미국이 밀면 공은 중국으로 넘어간다. 실체적 진실은 제3국이 밝히기도 불가능한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원래 북한을 그런 집단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한국이 나서서 강경 분위기로 가는 것에 구태여 제동을 걸 이유도 없다.
미국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러한 긴장 국면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통제하는 데 있다. 동북아에 무력 충돌이 생기면 미국에도 결코 이로울 것이 없다. 이런 목표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도 일치한다. ‘한국 지지’와 더 이상의 ‘사태 악화 방지’가 실제로 한·미 간에 교환 조건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황은 그렇게 전개 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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