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4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한 프로야구 2군 경기에서 구심(오른쪽)이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에 따라 이어폰과 음성 수신장치를 착용한 채 심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8월4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한 프로야구 2군 경기에서 구심(오른쪽)이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에 따라 이어폰과 음성 수신장치를 착용한 채 심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프로야구는 많은 것이 바뀐다. 베이스 크기가 커진다. 수비 시프트는 제한된다. 투수가 정해진 시간 동안 투구를 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되는 ‘피치클락’이 전반기 시범 도입을 거쳐 도입된다. 그리고 로봇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한다.

앞의 세 가지는 메이저리그가 이미 지난해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ABS(Automated Ball-strike System)로 약칭되는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은 한국 프로야구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앞서 채택한다. 지금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메이저리그가 바꾼 규칙이나 규정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수용해왔다. 일본 프로야구(NPB)가 변화를 수용하는지도 지켜봤다. 이런 점에서도 ABS 도입은 전례 없이 빠르다.

베이스, 시프트, 피치클락이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베이스는 38.1㎝(15인치)에서 47.72㎝(18인치)로 커졌다. 그래서 베이스 사이 거리가 줄었다. 당연히 주자에게 유리해진다. 메이저리그는 2023년부터 커진 베이스를 적용했다. 이 해 도루는 전년 대비 40.9% 증가했고 도루성공률도 75.3%에서 80.2%로 올라갔다.

시프트 제한으로 1-2루, 2-3루 사이에 내야수 세 명이 포진할 수 없게 됐다. 수비 전술이 제약되면 타자에게 유리해진다. KBO의 시프트 제한은 지난해 메이저리그가 채택한 규칙을 따랐다. 2022년 메이저리그 전체 OPS(출루율+장타율)는 0.706이었다. 지난해엔 0.734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특히 시프트로 가장 피해를 보았다고 알려진 좌타자들은 0.697에서 0.742로 6.5% 더 크게 증가했다. 메이저리그가 역시 2023년 채택한 피치클락은 경기시간 단축이 목표였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평균 2시간40분으로 전년 대비 무려 24분이나 줄었다. 피치클락이 시범 운영된 올해 KBO리그 시범경기 시간도 전년 대비(20경기 기준) 23분 단축됐다.

하지만 ABS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야구 규칙에는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규정이 있다. 존 상한선은 ‘타자 유니폼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 하한선은 ‘무릎 아랫부분’이다. 수평면은 홈플레이트 모양과 일치한다. 이 상·하한선과 수평면으로 이뤄진 입체 공간이 바로 스트라이크존이다. 시속 150㎞가 넘는 공이 입체 공간을 통과하는지를 모든 심판이 같은 정확성으로 판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필연적으로 오심을 전제한다.

심리적 편향도 작용한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면 타자는 삼진아웃이다. 스리 볼에서 볼이면 볼넷으로 출루한다. 앞 상황에서 존이 좁아져 볼 판정이 많아지고, 뒤 상황에서 존이 넓어져 스트라이크가 자주 나오는 현상은 여러 연구에서 다뤄졌다. 이는 경기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심판의 ‘부작위 편향’으로 설명된다. ‘의도적 오심’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점수 차가 크게 난 경기 막판에 어떤 심판들은 존을 넓게 보곤 한다(스트라이크 판정이 많아져 아웃 확률이 높아진다). 경기를 빨리 끝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ABS는 주심의 눈과 경험이 아닌 공을 추적하는 트래킹 시스템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사람 심판보다 더 정확하게 공을 판정할 수 있다. 심리적 편향이 없고, ‘재량권’도 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로봇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야구 규칙의 ‘스트라이크존이 기준’이라는 답은 정답이면서도 정답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존은 규칙상 존과 상당히 다르다. 다소 과장하면 야구 역사에서 규칙상 존이 정확히 지켜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에서 야구 심판으로 활동하는 이금강씨는 “규칙의 입체 스트라이크존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건 내겐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KBO는 시범경기를 앞두고 ABS 운영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설명된 존은 야구 규칙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다. 우선 좌우는 홈플레이트 세로면에서 2㎝ 확대 적용됐다. 그리고 입체면 통과 기준을 “홈플레이트 중간면과 끝면 두 곳에서 공이 상하로 라인을 스쳐야 한다”라고 정했다. 끝면은 중간면 기준보다 1.5㎝ 낮췄다. 모두 야구 규칙에는 없는 설명이다. 상한선과 하한선은 타자 키를 기준으로 일정 비율을 적용해 정했다. 그래서 규칙과는 달리 타자의 타격폼에 따른 차이가 반영되지 않았다.

승부조작 유혹도 차단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는 2019년 독립리그를 시작으로 로봇 심판 실험을 해왔다. 2023년에는 트리플A 전 구장에 ABS 시스템을 설치했다. 앞 시즌엔 11개 구장이었다. 2023년 트리플A의 볼넷은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통상적인 변화 폭을 훨씬 뛰어넘었다. 결국 그해 9월부터 존을 확대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볼넷 증가는 KBO가 2020-2023시즌 ABS를 운영한 2군 경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KBO는 이 경험을 반영해 ABS 시행 첫 해인 올해 존을 다소 넓혔다.

ABS 스트라이크존 기준을 안내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포스터.
ABS 스트라이크존 기준을 안내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포스터.

‘로봇 심판’이 도입되면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타자는 스트라이크 세 개면 아웃이지만 투수는 볼 네 개가 출루다. 그래서 ABS가 볼·스트라이크 판정 정확도를 같은 확률로 높인다면 투수가 유리해진다. 사람 심판은 존 좌우 모서리에 스트라이크 콜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로봇이 이 코스 판정을 정확히 하면 투수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볼넷 증가에서 보듯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ABS 판정이 야구를 어떻게 바꿀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에 맞춰 ABS 존이 다시 변경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3월9일 시작된 시범경기에서 볼넷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첫 38경기에서 9이닝당 볼넷은 3.55개였다. 지난해 정규시즌 3.60개보다 적다.

메이저리그도 멀지 않은 장래에 ABS를 도입할 것이다. 심판의 필연적인 오심에 결과가 좌우되기에는 야구 산업이 너무 커졌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심판 판정에 대한 팬들의 불신이 오랫동안 쌓여왔다. KBO는 ‘공정한 판정’을 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ABS를 조기 도입한 이유 중 하나다. ABS는 이미 규모가 커진 불법 스포츠 베팅 산업에서 파생되는 승부조작 유혹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ABS 존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선수들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스트라이트존은 야구 역사에서 고정 불변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존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게 야구 탄생 뒤 40년이 넘게 흐른 1887년의 일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다. 지금의 ABS는 완벽하지 않다. 2군 경기에서 트래킹이 실패한 비율이 0.2%였다. 존 상·하한선 설정에는 더 정밀한 영상 장비와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스포츠는 공정해야 하고, 판정의 정확성은 공정의 중요한 척도다. 강타자 출신인 이택근 SBS 해설위원은 ABS 판정에 대해 “볼이라고 생각한 높은 코스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 장면이 많았다. 다소 생경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다. 특히 좌우 코스에 판정이 일관적이다”라고 말했다. “타자 입장에서 로봇 심판이 바깥쪽 꽉 차는 코스를 정확하게 판정한다면 타자에게 불리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그런 공은 어차피 타자가 못 친다”라고 답했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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