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구단 한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한화 이글스:클럽하우스〉의 한 장면. ⓒ왓챠 제공

OTT 서비스 왓챠는 지난 3월24일 〈한화 이글스:클럽하우스〉를 공개했다. KBO리그 구단 한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주제는 ‘리빌딩’. 스포츠에서 하위권 팀을 재건해 강팀으로 만드는 과정을 뜻하는 단어다.

박준영 감독은 지난해 1월25일 카를로스 수베로 신임 감독 취임식 때부터 촬영을 시작해 11월에 마무리 지었다. 촬영 기간 중 끝난 페넌트레이스에서 한화는 49승 83패 12무로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 ‘리빌딩 파트1’ 시즌에 승률을 전년 대비 4.5%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파트2’ 격인 2022년에 한화는 6연패로 새 시즌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3시즌 동안 페넌트레이스 5할 이상 승률을 딱 한 번 한 팀이다.

KBO리그에서 리빌딩은 쉽지 않다. 무너진 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수가 많아야 한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리빌딩 방식은 대개 이렇다. 당분간 성적을 포기하고 유망주 선수들을 끌어모은다. 이른바 ‘탱킹(Tanking)’이다. 이들의 기량이 무르익는 시점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윈나우(Win-Now)’ 모드로 돌아선다. 돈을 쓰거나, 유망주를 내주면서 성적을 올릴 베테랑을 영입한다.

KBO리그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선수 이동 역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FA 자격 취득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FA 영입 대가로 원소속 구단에 하는 보상도 훨씬 크다. 외국인 선수는 팀당 3명씩으로 정원이 정해져 있다. 돈을 써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떨어진다.

한화가 좋은 사례다. 한화는 2015년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다. 모기업 차원에서 돈을 쓰기로 방침을 정했다. 2년 동안 FA 8명과 계약했고 비싼 외국인 선수를 고용했다. 2015년 승률은 0.472, 2016년엔 0.468에 그쳤다. 선전이긴 했지만 이후 예고된 추락을 겪었다. 성적을 내기 위해 노장을 기용하느라 젊은 선수가 성장 기회를 얻지 못한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지금 프로야구에서 젊은 스타 선수가 등장하는 건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됐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0년대 삼성 라이온즈와 프로야구 최강을 다퉜다. 원년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했다. 정규시즌 승률은 삼성이 0.583으로 해태(0.550)를 앞섰다. 해태나 삼성 같은 명문 팀은 주전들이 노쇠하면서 하락세를 맞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해태는 1990년부터 IMF 외환위기로 팀이 망가지기 전인 1997년까지 승률 0.587로 1980년대보다 더 잘나갔다. 라이벌 삼성이 이 기간 승률 0.528로 침체기를 맞았던 점과 대비된다.

1990년대 해태에는 이종범·홍현우·김종국 등 젊은 스타 야수가 김봉연·김성한·김종모 등 베테랑을 밀어냈다. 마운드에는 선동열이 건재한 가운데 조계현·이강철·이대진·김상진이 등장했다. 1990년대 해태는 KBO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리빌딩을 이뤄냈다. 과감하게 팀을 쇄신한 김응용 감독의 리더십이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환경적 이유도 있다. 199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젊은 선수가 야구를 잘하는 시대였다.

1991~2000년 전체 프로야구 선수 WAR(대체선수 대비 추가승수)은 3488승이었다. 이 가운데 30.2%가 24세 이하 젊은 선수 몫이었다. 2001~2010년엔 22.0%로 3분의 2로 줄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엔 11.6%로 다시 반토막이 났다. 리빌딩의 기본은 젊은 유망주에게 기회를 줘 성장시키는 것이다. 프로야구단 리빌딩의 과업 난이도는 그만큼 높아졌다.

1982~1990년 24세 이하 선수 WAR 비율은 22.4%였다. 당시 고교 선수는 프로 직행보다 대학 진학을 우선순위에 뒀다. 1990년대부터 프로가 1순위로 변했다. 더 우수한 신인이 더 어린 나이에 프로에 도전했다. 1990년대에 젊은 야구 스타가 속속 등장했던 이유다.

2000년대부터는 24세 이하 선수의 활약이 줄어들었다. KBO리그 출범 이후 한국 야구 수준은 지속적으로 향상됐다. 신인이 당장 주전으로 활약하기 어려워졌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있다. 한국 야구선수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병역의무를 진다.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선수는 입단 직후부터 입대 시기를 두고 고민한다. 지금 대다수 프로야구 선수는 24세 이전에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한다.

프로야구 선수의 병역과 연고지 문제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병역 부담이 덜했다. 1995년까지 공익요원 복무 선수는 야간 홈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다. 이 조치는 이듬해 폐지됐다. 그 뒤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로야구 선수는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은 비율로 현역 입대했다. 비밀은 추악했다. 2004년 9월 병역 비리 수사에서 많은 선수가 브로커를 고용해 병역의무를 회피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풍조가 바로잡힌 뒤 입대 비율이 늘어났다. 야구장에서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에는 타고투저가 영향을 미쳤다. 투수가 야수보다 더 일찍 두각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신인 타자는 프로 투수의 공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24세 이하 타자의 WAR 비율은 2000년대 15.2%에서 2010년대 10.0%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투수 쪽 감소 폭이 더 심했다. 2000년대 29.8%에서 2010년엔 13.6%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리그 평균자책점은 2000년대 4.28에서 2010년대 4.68로 올라갔다. 가뜩이나 좁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젊은 투수가 주전급, 특히 선발투수로 성공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2020년대에 한화의 리빌딩이 성공할 가능성은 앞 시대에 비해 훨씬 낮다. 한화와 같은 비수도권 연고지 구단은 더 불리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 붐이 불며 아마추어 야구로 유입되는 유망주 풀은 줄어들었다. 고교야구 선수의 서울 편중 현상으로 비수도권 고교팀은 선수 난에 허덕인다. 연고지 고교 졸업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1차 지명은 지난해까지 유지됐다. 그 기간만큼 비수도권 구단이 불이익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성공을 거둔 팀이 있다. 지난해 우승팀 KT 위즈는 창단 다섯 번째 시즌에 승률 5할을 찍고 7년째에 한국시리즈 트로피 주인공이 됐다. 2013년 창단한 NC 다이노스는 두 번째 시즌부터 4년 연속 승률 5할 이상이었고, 2020년 챔피언이 됐다. 모기업 없는 구단인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 이후 5년 연속 승률 5할 미만이었다. 그 뒤 9시즌 동안 여덟 번 승률 5할 이상이었다. 뭔가 방법을 찾았다. 이 구단들에선 공통적으로 어떤 종류의 ‘혁신’이 일어났다.

〈클럽하우스〉 촬영을 허락한 박찬혁 한화 구단 대표는 “‘리빌딩’이라는 말은 우리 구단에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계획’이 아니라 (성적이 떨어졌다는) ‘상황’에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조직 전체와 구성원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부여하고 달성을 위한 방법을 찾아간다는 게 그가 생각하는 ‘리빌딩’이다. 지난해 상당한 성공을 거둔 수비 시프트도 이런 인식에서 시작됐다. 박 대표는 “우리의 출발점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노력과 실패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라며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기자명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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