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7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안산공업고와 서울컨벤션고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7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안산공업고와 서울컨벤션고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28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고교야구 배트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고교야구에서 사용하는 나무 배트에 대한 공청회였다.

한국 고교야구는 2004년부터, 1970년대 이후 써오던 금속제 배트 대신 나무 배트를 사용했다. 나무 배트 사용 뒤 타율·홈런 등 타격 지표가 급감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나무 배트 사용으로 강타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프로 국가대표팀이 1라운드 탈락 수모를 겪자 프로 출신 지도자들과 일부 언론에서 ‘금속제 배트 회귀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KBSA 공청회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면이 있다.

공청회 전날인 2월27일, 일본에서도 배트 관련 행사가 있었다. 일본 고교야구는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과거에 쓰던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왔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올해부터 나무 배트 수준으로 반발력을 낮춘 금속제 배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새 배트 제조사를 찾은 오구라 마사요시 일본 U-18 대표팀 감독은 직접 스윙을 해본 뒤 “새 배트는 나무 배트처럼 중심에 공을 맞혀야 좋은 타구가 나온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고교 야구에서 나무 배트를 기준으로 한 스윙을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기존 배트로는 인코스 공을 정확하게 치지 않아도 안타가 나왔다. 나무 배트로 몸을 이용한 스윙을 몸에 익혀야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어떤 제도나 규칙을 변경할 때는 기존 제도로 인한 문제가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변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보다 커야 한다. 이 점에서 금속제 배트 회귀론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KBO리그 젊은 강타자가 과거에 비해 적다는 건 사실이다. 2011년 이후 프로야구 24세 이하 야수들은 리그 전체 WAR(대체선수 대비 승수)에서 11.2%를 차지했다. 2010년대(15.2%)에 비해 매우 줄었다. 하지만 투수들은 29.8%에서 14.7%로 더 많이 하락했다. 젊은 투수와 야수 모두 퍼포먼스가 떨어졌다. 이는 프로야구 수준의 점진적 향상,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운동 꿈나무 유입 감소, 병역 이행률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로 봐야 한다.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NPB)와 비교할 때 KBO리그 젊은 야수들이 유독 부진하다는 증거는 없다. 세 리그가 비슷한 수준이다.

국제대회 부진을 타자 탓으로 돌리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 지난해 WBC에서 한국 대표팀은 20개 참가국 가운데 OPS(출루율+장타율) 1위에 올랐다. 우승팀 일본을 상대로도 넉 점을 냈다. 일본은 결승전에서 미국에 석 점만 내준 팀이다. 반면 대표팀 평균자책점 순위는 16위였다. 타격이 아니라 투수가 문제였다. 지금 한국 야구가 세계 야구에 가장 뒤처지는 분야는 투수, 특히 패스트볼 구속이다. 지난 대회에서 한국은 2009년 대회에 비해 거의 유일하게 구속이 하락한 팀이었다.

정작 고교야구 레벨에서는 국제대회 경쟁력이 금속제 배트를 쓰던 시기에 비해 훨씬 향상됐다. 2004년 이후 11차례 열린 U-18 월드컵에서 한국은 일곱 번이나 3위 이내에 입상했다. 그 전에 열린 15차례 대회에서는 세 번에 그쳤다. 아시아 야구 최강으로 꼽히는 일본은 이 대회에서 통산 딱 한 번 우승에 그쳤다. 일본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서, 나무 배트를 쓰는 국제대회 성적이 나쁘다”라는 진단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일본 고교야구는 만성 타고투저이지만 NPB는 정반대로 투고타저다. 타자들의 나무 배트 적응 문제가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미국과 일본에서 통산 4000개가 넘는 안타를 친 스즈키 이치로도 배트 적응이 어려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와 같은 금속제 배트’는 지금 세계 아마추어 야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고교야구는 올해부터 금속제 배트 반발력을 크게 줄인다. 미국 대학야구(NCAA)는 2011년부터 반발계수를 나무 배트 수준으로 낮춘 비목재 배트(알루미늄 합금, 탄소섬유, 하이브리드 등)를 채택했다. 타이완 고교야구에서는 나무 배트와 NCAA 규정을 따르는 비목재 배트를 함께 쓰고 있다. 반발력 좋은 알루미늄 배트를 재도입하자는 주장은 한국 야구를 ‘갈라파고스‘로 이끌 것이다.

반발력 낮춘 배트를 도입한 이유

나무 배트 도입 이후 한국 고교야구는 오랫동안 지독한 투고타저였다. 고교 야구 2020~2021년 802경기 타율은 0.262, 장타율은 0.355였다. 금속제 배트를 사용한 2001~2003년(212경기)의 0.287/0.455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 배트 도입 초기였던 2005~2007년(239경기) 0.227/0.302보다는 크게 향상된 수치다. 나무 배트로 인한 투고타저 현상은 이미 완화되는 중이다. 여기에 고교야구의 낮은 장타율은 대학 입시에서 타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이유도 있다.

나무 배트에는 단점도 많다. 체격과 근력에서 성장기에 있는 타자가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훈련 만족도가 낮다. 부러지기 쉬워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KBSA는 2011년과 2022년 한 차례씩 설문조사를 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찬반 의견은 거의 반반이었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 집단이 두 배트의 장단점을 비슷한 비중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배트 논란에서 문제는 배트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1970년대 금속제 배트를 채택했다가 2000년대 이후 반발력을 낮춘 배트를 도입한 이유는 두 가지다. 잘 부러지지 않는 배트를 써서 비용 부담을 줄이고, 타구 속도를 떨어뜨려 부상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학생 선수가 더 부담이 적은 환경에서 더 안전한 야구를 하게 한다는 가치를 지향한다. 반면 한국에서 WBC 이후 제기된 배트 교체론은 프로와 국제대회에서의 성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목표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학원스포츠 현실의 단면이다.

KBSA가 두 번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올해 공청회를 열어 의견과 정보를 수집한 건 진일보한 행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두 번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설문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 학원스포츠는 사실상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선수 가족의 비용 부담이 크다. 고교야구 선수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1년에 수백만 원이 배트 비용으로 나간다. 금속제 배트를 쓰면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어차피 프로가 목표다. 훈련은 나무 배트로 해야 한다. 금속제 배트로 바꾸면 비용 부담이 더 늘어난다”라고 말했다. 두 의견이 어느 정도 비율로 갈리는지는 아직 조사된 바 없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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