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아픈 결과를 받아들었다. 세계 야구와 기량 차이가 확연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2회 WBC에서 한국 대표팀의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46.3㎞로 8강 진출 팀 가운데 일본(시속 147.5㎞)에 이어 2위였다. 이번 대회에선 시속 145.7㎞로 20개국 중 16위였다. 1위 도미니카공화국보다 시속 8.2㎞, 일본보다는 시속 8.0㎞ 떨어졌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된 ‘구속 혁명’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세계 추세에는 뒤처졌지만 한국 야구도 공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KBO리그 포심 평균 구속은 시속 144.2㎞로 역대 최고였다. 전년 대비 시속 1.3㎞가 증가했다. 2014~2020년 7년 기간 증가분과 같았다. 평균 시속 150㎞를 넘긴 내국인 투수는 7명이었다. 안우진(시속 153.4㎞)을 비롯해 모두 25세 이하 젊은 투수들이다. 아마추어에서 과거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배출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고교야구 대회에서 포심 최고 구속이 시속 145㎞를 넘긴 투수는 38명이었다. 같은 해 일본 고시엔 대회에선 16명이었다.

더 빨라진 패스트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지속될 수 있는 현상일까. 프로야구 ‘홀드왕’ 출신 왼손 투수이자 바이오메카닉스(생체역학)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차명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50)의 의견을 들었다.

차명주 야구 국가대표(1992~1995), 롯데 자이언츠(1996~1998), 두산 베어스(1999~2003), 한화 이글스(2004~2006), KBO리그 3년 연속 홀드왕(2001~2003),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대학원 강사(2019~2021), 국민대 생체역학 박사 수료(2022),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시사IN 이명익

프로야구에서 지난해부터 패스트볼이 빨라졌다. 올해는 다소 떨어졌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이 추세가 이어질 수 있을까.

아직 확고한 추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좋은 투수가 여럿 나오는 해가 가끔 있기도 하다. 92학번 동기들이 그랬다. 박찬호·조성민·임선동·손경수·염종석· 정민철 등이 있었다. 박재홍은 프로에서 강타자로 활약했지만 투수로도 빠른 공을 던졌다. KBO가 스트라이크존을 2022년부터 넓힌 것도 강속구를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고교야구에서 시속 150㎞를 던진 투수가 늘어났다. 사설로 불리는 야구 아카데미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 있다.

아카데미가 기량 향상을 이끄는 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시속 150㎞를 던지느냐가 문제다. 하늘로 날아가거나 땅바닥에 꽂히는 공과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들어가는 공이 같을 수는 없다. 어린 투수에게는 구속 못지않게 제구력과 부상 방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선수는 스피드에 집착한다. 현실적으로 프로 구단에 가장 어필하는 게 구속이니까.

아카데미는 몇 개쯤 되나.

아직 현황 파악도 되지 않았다. 서울과 경기도에만 100개가 넘을 것이다. 전국으로 따지면 300개가 넘는다는 말도 들었다. 잠깐 운영하다 문을 닫은 곳도 꽤 있다. 야구 기량을 가르치는 ‘레슨’과 체력을 단련하는 ‘트레이닝’을 주로 한다. 최근 3~4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학교에서 단체 운동이 제한됐던 영향이 크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이 주로 운영하거나 ‘간판’이 된다.

예전에는 부원의 사설 아카데미 이용을 금지하는 야구부도 많았다.

지금은 허용하는 추세다. 경인 지역에는 허용하는 학교가 많다. 지방에는 금지하는 학교도 있다. 그래도 막기 어렵다. 재활 운동을 하러 간다며 아카데미를 찾는 선수도 있다. 야간 훈련 때 남는 선수가 서너 명밖에 없다는 말도 들었다.

레슨비는 어느 정도인가.

편차가 있지만 적은 돈이 아니다. 레슨과 트레이닝 과정을 합쳐 월 150만~200만원이면 싼 편이다. 일대일 레슨은 회당 10만~20만원 선이다(역시 사설 아카데미가 운영되는 일본의 경우 1시간 기준 회당 5000엔(약 4만6700원) 정도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하는 현상이 ‘한국적’이다. 하지만 선수가 기량을 올리고 싶어 하는데 금지하기도 어렵지 않나.

그렇다. 서울 지역에서 고교 야구부는 평균적으로 인원이 50명가량이다. 절반이 투수인데 투수코치는 대개 두 명이다. 선수가 코칭을 받을 기회가 크지 않다. 대다수 야구부원은 진학과 프로야구단 취업이라는 현실적 목표가 있다.

안우진(사진)을 비롯한 젊은 투수 7명이 평균 시속 150㎞를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아카데미가 단기간에 양적으로 증가했다면 질적 저하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데.

성장기 선수인 만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요즘 선수들 신체 조건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단순히 근력을 늘리는 것과 공을 잘 던지고 잘 치는 근육을 키우는 건 다르다. 트레이닝이 그만큼 중요하다.

아카데미를 평가·검증할 제도적 장치가 있나.

전혀 없다. 스포츠 서비스업종으로 등록하면 개설 가능하다. 관련 자격증도 없다. 야구계는 축구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 좋은 지도자를 육성하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FIFA 시스템을 받아들여 등급별로 지도자 자격증을 따도록 했다. 축구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게 있으니 큰 저항이 없었다. 하지만 야구는 아직 ‘우리가 왜 그런 걸 해야 돼?’라는 분위기다.

아카데미가 선수 육성에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면 기존 시스템과 어느 정도 통합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야구부와 아카데미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하다. 선수가 두 곳에서 서로 충돌되는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면 부상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피해는 선수가 보는데 지금은 양쪽이 책임을 전가하기 딱 좋은 구조다.

WBC 이후 한국 야구 지도자 육성 능력에 대한 지적이 많다. 선수와 학부모가 사교육을 찾는다면 결국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지 않을까.

결국 2023년 WBC는 한국 야구가 스포츠과학 성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지도자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해졌다. 내 대학 시절 88올림픽 영향으로 스포츠과학이 아마추어 스포츠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때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던 선수가 많다. 이 선수들이 프로에 들어오자 한국 야구 구속이 크게 빨라졌다. 이미 한 번 ‘구속 혁명’을 한 셈이다. 그런데 선수가 바뀌기는 쉬워도 지도자가 바뀌기는 어렵다. 아카데미가 한국 야구 발전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토대가 취약하다. 그래서 지금의 구속 상승이 일시적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협회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그동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레슨이든 트레이닝이든 한국 선수의 몸 데이터에서 출발해야 한다. 야구선수 기량 측정에 필요한 항목은 이미 정립돼 있다. 가령 뉴욕 양키스는 선수가 출근할 때마다 악력을 잰다. 2017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부 지원을 받아 100개 학교 선수 체력 측정을 했다. 그런데 예산 문제로 1회성으로 끝났다. 아쉬운 일이다. 지금 협회에서는 연령대별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나이에 따라 적합한 운동이 다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런 것도 없었다.

기자명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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