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8일 TBS 구성원들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민영화’를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언론노조 TBS지부 제공
2월28일 TBS 구성원들이 서울시의회 앞에서 ‘TBS 민영화’를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언론노조 TBS지부 제공

제작비 삭감으로 외부 진행자가 대거 하차하고 시사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폐지되었다. 지난해 10월 희망퇴직이 실시되었고 5개월 만에 직원 1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전체 인원 360명의 27%에 해당하는 규모다. 조직 쇄신을 약속한 대표이사는 올 2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남은 구성원들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폐국만은 막아달라’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는 피켓을 들었다. 지난 1년간 수도권 공영방송 TBS에서 일어났고 여전히 벌어진 일이다. TBS가 존폐 기로에 놓였다. 5월31일을 기점으로 서울시 출연기관이라는 지위가 해제된다.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TBS가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걸 대부분 모른다. 지난해 3월부터 제작비는 거의 0원이나 다름없었다. 사내 아나운서들이 대부분 투입되었고 한밤중에는 (진행자 없이) 음악만 틀면서 버티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의 송지연 지부장이 내부 상황을 전했다. 2022년 11월 서울시의회가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을 가결한 지 1년 6개월 만이다. 전체 예산의 70%(200억~300억원대)를 서울시에 의존하고 있던 TBS로서는 앞날이 불투명하다. 민간 투자자가 나타나 민영화 절차를 밟거나, 법인 청산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청산은 곧 폐국을 의미한다. 어느 쪽이든 지역 공영방송이 해체되는 유례없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TBS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TBS의 정식 명칭은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다. 1990년 개국한 이후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운영되다가 2020년 2월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독립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다 보니 ‘시정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예산을 주되 TBS의 편성과 인사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30년 만에 홀로서기에 나선 TBS가 내세운 슬로건은 ‘시민의 눈으로 한 걸음 더’였다. 교통방송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종합채널로서 뉴미디어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상황이 급변한 건 2021년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거로 취임하면서부터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크게 벌어졌다. 청취율 1위에 오르는 등 TBS의 채널 경쟁력을 견인했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수차례 제재를 받는 등 편향 논란이 잇따랐다. 10년 만에 지자체 정권이 교체된 가운데 2021년 10월 서울시의 TBS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고, 이듬해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 후 서울시의 TBS 예산 지원 ‘근거’인 조례가 폐지되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2022년 12월30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TBS 화면 갈무리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2022년 12월30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TBS 화면 갈무리

TBS 내부의 혼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임명된 정태익 TBS 대표이사는 “정치적 편파 논란으로 인해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을 훼손하며 시민 여러분에게 큰 실망을 안겨드렸다”라고 사과했다. TBS 혁신안의 하나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권력에 의해 강제된 반성문”이라는 언론단체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9월 TBS는 이강택 전 대표이사와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인 방송인 김어준씨에게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가 하면, 김어준씨와 〈신장식의 신장개업〉 진행자인 신장식 변호사에 대해 ‘무기한 출연정지’를 결정했다.

TBS의 프로그램들은 편향적이었나? 그 이유로 방송이 제지되거나 지원금이 끊기는 것은 합당한가? 하나하나 따져볼 여지가 크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TBS 내부는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다(언론노조 TBS지부를 중심으로 TBS 폐지 조례안에 대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3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TBS의 한 구성원은 “내부적으로 고민은 컸지만 서울시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거나 밉보이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정치적으로 휘말리면서 내부 동력은 사라졌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두고 원망의 화살을 정치권보다는 서로에게 돌리고 있다. 3년 전 수도권 유일의 공영방송으로 전환하면서 가졌던 자부심은 다 사라지고 이제 굴욕감과 후회만 남았다.”

언론 자유에 대한 ‘신유형 탄압’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영방송이 흔들리는 것은 그만큼 기반이 취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왜 편파적인 언론에 세금을 내야 하느냐’며 돈줄을 옥죄는 식이다. KBS는 수신료였고 YTN은 공기업 지분 매각이었다. 서울시 예산에 의존하는 TBS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이를 ‘신유형 탄압’이라고 명명한다. “시의회에서 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한 고리가 드러났다. 정상적인 시의회나 정부라면 이렇게 밀어붙이는 게 불가능해야 한다. 재원을 건드리는 것은 언론 자유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런 초현실적인 일이 지금 벌어졌다.”

재원 구조를 직간접으로 건드리는 이 신유형 탄압은 언론사를 내부에서부터 흔들어놓는다. 독립된 지 고작 3년 된 TBS에는 바람이 더 크게 불었다.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TBS를 나온 한 PD는 “김어준 효과로 가려졌던 모든 문제들이 김어준의 이탈 이후 한 번에 표출되었다”라고 말했다. “TBS의 구성원들은 TBS를 어떠한 논조를 가진 공영방송으로 성장시킬지 관심이 크게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언론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수의 제작진이 있었지만, 과거 사업소 시절의 공무원 마인드가 문화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TBS가 받았던 사회적 관심에 비해 공영방송으로 성장해가는 속도는 더뎠다는 지적이다. 그는 TBS의 생존권 호소가 외부에는 왜 ‘우리끼리의 싸움’으로 비춰지는지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확보하기 위한 TBS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TBS는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 방송 서비스와 코로나19 특보 등 재난방송을 해왔고, 〈우리동네 라디오〉 〈시민영상 특이점〉처럼 시민참여 방송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청자위원회도 하나의 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역 공영방송으로선 전에 없던 실험을 해가는 부분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있다면 공적 책무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해야지, 30년 넘게 유지해온 공적 자산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게 아닌가.” 서울시 입장에서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결과일 수밖에 없다.

김희경 TBS 이사(미디어미래연구소 전략연구센터장)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시민 공모주’ 모집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울시와 시의회를 전문적으로 감시·비판하는 언론사는 놀랍도록 없다. 서울시 의회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제대로 감시가 안 된다. TBS가 그런 매체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이미 인력과 방송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방송사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2년 9월26일 서울시의회에서 TBS에 대한 서울시 출연금 지원 폐지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
2022년 9월26일 서울시의회에서 TBS에 대한 서울시 출연금 지원 폐지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

조례 폐지를 주도한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TBS 민영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종배 시의원은 지난해 9월6일 “다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고 서울시장을 차지하게 된다면 김어준이 돌아올 수도 있다. 피 같은 세금이 들어가는 공영방송에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1월1일부터 시 출연금이 완전히 끊길 예정이었으나 서울시 요청으로 5월31일까지 유예되었고, 인건비와 퇴직금 명목으로 93억원이 추가 배정되었다. 112명이 더 나가야 나머지 180명이 5월까지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송지연 지부장은 “희망퇴직 신청자가 많지 않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TBS를 살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죽기 위한 시간을 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해체’의 나쁜 선례

TBS의 민영화도 순탄치 않다. YTN의 경우 보도전문채널일 뿐 아니라 N서울타워와 사옥 등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데 비해 TBS의 자본금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영어방송을 포함한 라디오 방송 2개와 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상업광고가 허용되지 않아 매물로서 매력이 크지 않다. 상업광고 불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 조건이고 민영화를 한다고 당장 상업광고가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TBS 구성원들이 민영화가 곧 폐국을 의미한다고 보는 이유다.

김희경 이사는 “시계가 5월 말로 이미 맞춰져 있는데 그때까지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민간 투자자를 찾기까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출연기관 해제 후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건, 서울시의 책임 방기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는 “의회 손을 떠났다”는 반응이다. 2월28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이종배 시의원은 “집행부의 명확한 입장이 중요하다. 이제는 의회 손을 떠났고 책임 전가는 안 통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3월13일 〈시사IN〉과 통화하면서 “시의회와 같이 협의해갈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5월31일까지 출연기관이 유지되고 이후에는 해제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TBS 내부 결정을 가급적 지원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TBS 문제의 책임 주체로서 나설 수는 없느냐는 질문에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준비한다’라는 말씀을 드리기가 힘들다”라고 답했다.

TBS 구성원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폐국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5월31일이 다가오고 있다. 정준희 교수는 “결국 나머지 공영방송의 기반도 그렇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법성에 대한 고려 없이 ‘돈줄부터 조이면 공영방송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공영방송 해체 과정이다”라고 비판했다. TBS의 운명은 TBS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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