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팀에 있으면서 ‘K’라는 수식어를 자주 쓰게 된다. 웹툰부터 드라마, 음악까지 해외로 뻗어나가는 K콘텐츠의 면면을 조명할 일이 많아진 까닭이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 때가 많다. 자문화 중심주의나 우월주의에 기반한 ‘K’의 오남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한국의 어떤 것이 해외에서 인기라는 소식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왜? 어떻게 가능했을까?
얼마 전 미국에서 히트 친 냉동 김밥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시사IN〉 제858호 ‘그 냉동 김밥은 어쩌다 미국에서 품절되었나?’ 기사 참조). 그 시작에는 한국계 미국인 인플루언서가 있었다. SNS에서 어머니의 한식 레시피를 공유하는 세라 안 씨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 정체성을 숨겨온 그가 우연히 대형마트에 파는 냉동 김밥을 리뷰했는데, 그 이후 전국적으로 품절 대란이 일었다. 그저 기적 같은 해프닝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와 대화하면서 나는 한류의 한 축이 한국계 이민자들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안씨가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내게 한국어와 한식은 중요한 문제다. 그 문화를 전승하지 않으면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그냥 미국인이 될지도 모른다.” 단순히 ‘K’로 요약할 수 없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미나리〉부터 〈성난 사람들〉 〈패스트 라이브즈〉까지 한국계 이민자들을 다룬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세 작품의 감독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고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를 두고 ‘한국적인 이야기가 통했다’라거나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분석은 어쩐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산업의 성과만 강조될 뿐 그 뒤의 사람들은 가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언론에서 처음으로 냉동 김밥 열풍을 다룬 NBC 보도는 한국계 기자가 한 것이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웹툰을 번역하는 이들은 한국어가 능숙한 원어민이다. ‘K 열풍’은 이처럼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룩해내고 있는 성과가 아닐까.
미국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다양성이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주에서 비롯된 서사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고, 이민자들은 그 대열의 맨 앞에 섰다. 어찌 보면 한류는 ‘국뽕’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셈이다. 취재를 할수록 ‘K’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한국인’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다양한 경계인들이. 그런 분투와 성공을 더 많이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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