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내원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얼마 전, 의대 증원을 주제로 좌담 기사를 썼다. 오랫동안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도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의대 교수는 요즘 무척 괴로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의료 공백 현상을 취재해왔던 기자로서 나도 심란함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의사 인력이 크게 모자라는 것은 팩트라고 답하겠다.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의사 인력 수급 추계들은 숫자에 차이가 있을 뿐, 한국에 의사가 부족하고 이대로라면 인력난이 점점 심화된다는 방향을 일관되게 가리킨다. 대한의사협회만이 거의 유일하게 의사 수가 충분하다는 결과를 내놓는다.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은 수가가 낮고 대우가 열악해 의사들이 그리로 가지 않아 발생하는 ‘배치’의 문제라는 의사들의 주장은 말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 이들 역시 의사 수 늘리기 못지않게, 늘어난 인력이 필요한 곳으로 유입되도록 정교한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보건의료 연구그룹 HSC가 과거 신문기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7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의사들은 한국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시대에 발맞춘 변화의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키고, 급기야 응급실·중환자실마저 비운 의사들의 행동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의대 증원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인 상황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사 집단이 보여줬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소수 강경파가 의사를 대표하고 시민들과 유리되어 폐쇄적 집단으로 고착되는 지금의 현실을, 의사 사회는 되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말 이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본격적으로 의대 정원 논의에 돌입했다. 10월 무렵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민감한 사안인 증원 숫자 2000명은 올해 2월6일에야 전격 발표했다. 밥상머리 민심이 형성된다는 설 연휴를 나흘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들었던 의사인력 수급추계 보고서 3개는 각각 2020년 10월, 11월과 지난해 2월 이미 발표된 연구들이다.

당장 내년부터 65% 늘어난 신입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교육 현장의 우려나 필수·지역·공공 의료로 의사를 보낼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촉박한 타임라인 속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나설 경우 행정명령과 법적처리에 들어간다는 대응책은 치밀하고 철저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줄이기보다, 증폭하고 키우는 쪽으로 일련의 과정이 전개돼왔다. 윤석열 정부 특유의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 스타일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속 시원한 진격이지만 좋은 정치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재 스코어 승자는 명확하다. 3월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39%였다. 2월 첫째 주 29%에서 껑충 뛰어오른 수치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40%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긍정 평가 이유로는 의대 정원 확대(21%)가 가장 많이 꼽혔다. 그렇다면 패자는 의사 집단일까? 한 해 배출되는 의사 수가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난다면 현재의 가파른 인건비 상승세는 다소 완화되고 의사 집단 내부의 경쟁도 가열될 것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고소득 직종이라는 지위 자체가 허물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장 주도의 의료 공급체계를 그대로 둔 채 의대 증원이 추진될 경우, 의사들이 새로운 수익 창구를 만들어낼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따로 있다. 첫 번째는 의료대란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 환자, 보호자, 그리고 병원에 남은 여러 다양한 직군의 의료진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삶을 헌신하며 365일 24시간 필수의료 현장을 지켜왔지만 이기적 집단으로 함께 찍혀버린 신생아실, 흉부외과 같은 바이탈과(필수의료과) 의사들이다. 세 번째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며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해온 개혁적 보건의료 운동 세력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붕괴의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물꼬일 뿐이다. 그 뒤에는 실로 무수한 과제가 남아 있다. 2000명을 ‘선포’하고 나선 정부와 더더욱 적대적으로 돌아선 의사 집단 사이에서, 지방 소멸·고령화 시대에 한계에 다다른 보건의료 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변화의 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 시민들은 어떨까? 이번 증원으로 우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곳에서 의사를 만나게 될까? 쉽게 답할 수가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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