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로 PA 간호사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월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로 PA 간호사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3월6일 연락이 닿은 지방 사립대 병원의 한 간호사는 다소 뜻밖의 얘기를 했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 이후에도 우리 병원은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지역을 대표하는 상급종합병원이지만 기피과로 꼽히는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내과·외과도 전공의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지 수년째다. 의대 정원이 1998년 이후 늘지 않은 가운데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인턴·레지던트 등이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집중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그사이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워온 이들이 ‘PA 간호사’다. 이 병원에는 PA 간호사가 100여 명으로 전공의 수의 두 배에 가깝다.

PA 간호사는 Physician Assistant(의사 보조)의 준말로 정부에서는 ‘진료지원인력’이라는 용어를 쓴다. 의료 현장에서는 PA 간호사, 전문간호사, 임상전담 간호사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수술방에서 집도의의 수술 보조를 전문으로 맡는 PA 간호사들은 그 가운데서도 SA(Surgeon Assistant) 간호사로 다시 분류된다.

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하는 일은 의사에 더 가깝다. “인턴이나 저연차 레지던트 업무를 보통 수행한다”라고 한 대학병원 의사는 설명했다. 유니폼도 일반 간호사와 다르다. PA 간호사가 의사처럼 보이는 흰색 가운을 입는 병원도 있다. 의사가 해야 할 의료 행위를 간호사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PA 간호사는 없어서는 안 될 직군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부 병원은 부족한 의사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PA 간호사를 차출해왔다. 2015년 전공의 특별법이 통과돼, 주 100시간을 초과했던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줄어들면서 PA 간호사 인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204개 병원에서 근무 중인 PA 간호사는 3815명으로, 2010년(1009명)과 비교했을 때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전체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PA 간호사가 1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전공의들이 씨가 마르다시피 한 기피과들은 교수(전문의)와 그 분야에 숙련된 PA 간호사가 호흡을 맞추는 분업체계로 사실상 돌아간다. 대표적인 곳이 흉부외과다. 일반 간호직군으로 병원에 들어와 흉부외과에서 10년가량 PA로 일한 간호사는 “교수 혼자서 다 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수술방이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월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3월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의료라고 하면 보통 ‘대리수술’ 같은 걸 떠올리지만 대학병원 PA가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교수님이 ‘집도의’를 하고 ‘보조의’ 역할을 PA 간호사가 한다. 관상동맥 수술을 예로 들면 집도의가 심장 쪽을 맡는 동안, PA 간호사가 대체할 혈관을 다리나 팔에서 채취한다. 원래는 의사가 해야 하지만 전공의가 없는 현실에서 교수님이 이걸 다 하려면 수술 시간이 두 배가 된다. 수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길어질수록 환자가 겪게 될 부작용이나 합병증 위험이 증가한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진료지원인력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국제 동향 고찰 및 시사점(2022)’ 보고서에서 의료 현장의 필요와 의료 인력 공급 사이에 생긴 불일치로 ‘PA 간호사’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2000년 인구 1000명당 4.7개였던 병상수는 2019년 12.4개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만큼 병원이 입원 환자를 더 많이 받고, 환자들이 요구하는 의료 수요가 커졌다는 뜻이다. 반면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부터 3300명에서 3058명으로 오히려 240여 명이 줄었다.

PA 제도 정착된 미국·캐나다·영국

미국·캐나다·영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PA 제도가 법적으로 정착돼 있다. 나라마다 역할과 권한은 다르지만, 전문 간호사를 양성하고 자격을 부여해 의사 인력만으로 다 채울 수 없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려는 취지에서 PA 제도가 발전돼왔다. 그러나 의사 직역에 대한 침해라며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협회의 미온적인 태도 사이에서 ‘PA 간호사’ 양성화 논의는 긴 시간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에게 크게 위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직군에 위임할 수 있는 의료 행위가 있다. 사실 지금도 PA 간호사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신분이 모호한 탓에 PA 간호사들은 업무에 대한 교육, 처우 개선, 적정 인력 등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기득권은 다 유지하려고 하면서 의사 수 늘리기도 반대하니 의료 현장이 참 힘들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에서 PA 간호사들의 업무는 가중되고 있다. 지역의 거점 국립대학병원인 A 병원은 비교적 전공의 충원이 원활히 이뤄져온 편이다. 상급종합병원인 병원 규모에 비해 PA 간호사 수도 30여 명으로 적은 편이다. 역설적으로, 적은 수의 PA 간호사들이 전공의가 하던 일을 다 떠안게 되었다. 한 간호사는 애당초 PA 간호사들의 업무 기준이 모호했던 탓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꾸역꾸역 메우고 있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PA 간호사들끼리, 이 사태를 초래한 건 정부와 의사들인데 ‘우리가 다 먹고(떠안고) 죽는다’라고 자조 섞인 얘기를 많이 해요.”

환자에게 각종 동의서를 받는 업무가 현장에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입원동의서는 간호사가 받지만 수술·시술·처치 등에 대한 동의서는 원칙적으로 의사가 받도록 돼 있다. 의료 행위는 부작용이 뒤따를 가능성이 상존하고 이를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병리학·생리학 등 의학 지식이 필요하다. “앵무새처럼 달달 외워서 쭉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러다가 환자나 보호자분이 뭘 물어봤는데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불신이 생기고 항의가 들어오는 거죠. 드물더라도 수술, 시술 부작용으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데 업무를 맡는 입장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싶습니다.”

3월6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6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의료 공백에 대응하고자 2월27일부터 전국 종합병원과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위 이외에는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하더라도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파업 당시, 파업을 풀고 돌아온 전공의들이 PA 간호사를 무면허 의료 행위로 고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응급구조사도 의사 일 떠맡고 있어

그러나 이 조치가 발표된 이후 현장의 우려와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의사단체나 의사들이 PA 간호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방지할 수 있더라도, 환자와 보호자가 간호사 개인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제기했을 때 보호받을 길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간호사들로서는 의견 수렴이나 늘어난 업무에 대한 보상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의사 업무를 대신하라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받은 셈이다.

간호사 이외의 직군은 그런 법적 보호조차 대비되지 못한 상황이다. 한 대학병원의 노동조합 상근자는 “응급구조사들이 특히 위험한 처지”라고 말했다. 응급실에는 PA 간호사가 없어서 인턴, 레지던트들이 하던 ‘침습적 행위(삽입, 절개 등의 처치)’를 응급구조사들이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느라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만한 혼선도 생기고 있다. 수도권 지역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한 의료인은 얼마 전 있었던 심폐소생술(CPR) 케이스를 얘기했다. “원래 CPR을 할 때 교수님이 리더 역할을 하고, 그 밑에 전공의는 인공호흡기를 넣고, 인턴은 호흡기 주머니를 짜고, 이런 식으로 역할 분담이 돼 있어요. CPR이 뜨면 의료진이 쫙 몰려와서 탁탁 정해진 일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수님이랑 PA 간호사들만 있으니, 교수는 시키는 데만 익숙하고 PA 간호사는 안 해본 일을 하게 돼 손발이 잘 안 맞는 거죠.”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자 3월7일 정부는 의료 공백을 간호사로 메우는 지침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나섰다. 앞서 2월27일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시작할 때는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병원장과 간호부서장이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했다. 3월7일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공표했다. 집도(수술), 마취, 엑스레이 검사, 요로전환술(체내 소변 흐름 변경 시술), 전문의약품 처방, 배액관 삽입(수술·시술 뒤 삽입하는 튜브), 사전의사결정서 작성 정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의료 행위를 허용하는 구체적 가이드라인이다.

이 지침은 또 숙련도 등에 따라 간호사를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가칭), 일반간호사로 나누어 할 수 있는 업무를 구별했다. 국립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병동 간호사는 이 조치에 큰 우려를 내비쳤다. “전공의 이탈 후 그 업무를 지금까지 PA 간호사들이 맡아왔어요. PA 간호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문제가 있지만, 하던 일이 늘어나거나 업무 범위가 넓어지는 차원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지침으로 일반 간호사들이 전공의가 하던 의료 행위를 일부 맡게 된다면 완전히 새로 배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병원을 굴러가게 하는 데에 주요 인력이지만 법상으로는 유령 같은 존재인 PA 간호사의 신분을 제도화하고 관리·운영 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 사회적 논의기구인 ‘진료지원인력(PA) 개선 협의체’를 꾸린 이유다. 구체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던 이 협의체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앞에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현실화되었다. 의료 현장의 혼란은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루아침에 양지로 나오게 된 PA 간호사들의 처지는 더 위태로워졌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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