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닛케이 주가지수가 지난 2월22일 약 34년 만에 3만9000을 넘어 역사적 최고점을 돌파했다. 3월4일에는 4만 선까지 돌파한 이후 약간 하락했다. 올해 일본의 주가상승률은 세계적으로 높다. 2023년 경제성장률도 한국보다 높은 1.9%를 기록했다. 과연 버블 붕괴 이후 30년이 넘는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 경제가 부활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은 기본적으로 지난 수년 동안 일본 기업의 이윤 증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2013년 아베노믹스 이후 엔화 환율이 크게 상승(엔화 가치 하락)하여 수출 대기업들의 이익이 증가했고, 최근의 엔저는 이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베 정부 때부터 실시해온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노력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도쿄 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보다 낮은 기업들에 대해 주가 상승을 위한 개선책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실물경제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성장률이 꽤 높았지만 최근에는 민간소비 둔화와 함께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3분기와 4분기는 경제성장률(연율로 환산)이 -3.2%, -0.4%를 각각 기록하면서 ‘기술적으로’ 경기침체에 들어섰다. 2023년에는 기업 도산 건수가 전년도(2022년)에 비해 33%나 늘어났다. 이는 일본 정부가 팬데믹 이후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무이자 무담보’ 대출, 이른바 ‘제로제로(이자와 담보가 없다는 의미)’ 대출의 종료와 관련이 크다.
아래 〈그림〉(‘2021~2023년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구성요소’)은 연율로 환산한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여준다. 2023년 1분기와 2분기는 성장률이 꽤 높았다. 그러나 2분기부터 민간소비가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는 임금상승이 정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급속한 엔저를 배경으로 인플레이션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명목임금 상승률은 그보다 낮아서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지난 1월까지 22개월 동안 연속 하락(전년도 같은 달 대비)했다. 지난 1월의 하락 폭이 이전보다 둔화되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실질임금이 줄어들어 가계소득이 정체되니 민간소비 증가가 둔화되면서 성장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가는 올랐지만 2022년 현재 일본 전체 인구에서 개인투자자는 약 12%에 불과하다. 2023년 저축이 제로(0)인 인구는 전체의 27%나 되는 실정이다.
1990년 자산시장 버블 붕괴로 국민소득의 약 3배나 되는 자산가치가 사라진 이후 일본은 30년 넘게 경제 정체와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왔다. 일본의 경험은 인구감소-인플레이션율 하락-성장둔화라는, 이른바 ‘일본화’를 겪기 시작한 다른 선진국들에 ‘반면교사’가 되었다. 물론 일본의 장기 불황에는 고령화라는 인구 충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령화 효과를 제거하고 나면 지난 30년간 일본의 경제성장 성적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아베노믹스, 절반의 성공이자 실패
예컨대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995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여 2019년까지 약 14%나 감소했다. 따라서 1990년 이후 2019년까지 경제 전체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주요 선진국 8개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생산가능인구 1인당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연간 약 1.4%여서 국제적으로 낮지 않았다. 결국 일본 장기 불황의 상당 부분은 일할 인구가 줄어든 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빠르게 성장하던 경제에서 성장이 둔화되면 생활수준의 향상이 어렵고 정부 재정도 곤란을 겪게 된다. 불황과 고령화로 재정적자가 증가하여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은 1990년 약 63%에서 2012년 226%까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게다가 총수요 부족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은 불황을 더욱 심화시켰다. 2013년 실시된 아베노믹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었다. 아베 정부는 양적·질적 완화로 대표되는 ‘팽창적 통화정책’ ‘기동적인 재정확장’ 그리고 ‘투자 촉진을 위한 구조개혁’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을 쏘았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중앙은행이 ‘2%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국채를 매입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한계가 있었지만 재정도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 마이너스금리와 장기 국채금리를 직접 통제하는 ‘수익률곡선 통제’ 정책까지 도입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2015년 이후의 아베노믹스 2단계에서 ‘일억 총활약 계획’을 내세우며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아동보육과 노인요양에 대한 지원 등 진보적인 개혁정책을 도입했다.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이자 실패였다. 경제는 약간 회복되었고 일자리가 증가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달성하지 못했다. 엔저와 함께 수출 대기업의 이익이 증가하여 주가는 높아졌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은 정체되었다. 2013년에서 2019년까지 실질임금이 상승한 해가 2년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일본의 임금상승 정체는 장기 불황 기간 내내 지속되었던 문제다. 2021년 일본의 노동자 1인당 실질임금은 1991년에 비해 겨우 5% 상승해 다른 선진국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아베 총리도 2단계 아베노믹스 이후에는 임금상승을 강조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아베노믹스 기간 동안 기업의 투자는 약간 촉진되었으나 국내총생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상대적으로 정체되었다. 그래도 일본은행의 금리억제 정책 덕분에 이전에 비해 정부부채 비율이 안정화된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인들의 불만도 점점 커져갔다. 일본 경제는 이미 2019년 경기가 악화되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에 대응하여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정을 확장했지만 여전히 경제회복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2021년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토로 내세운 배경도 이러한 시민들의 불만이었다. 그는 의료·보육·요양 노동자들과 하청기업 노동자 등 취약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에 기초하여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되는 새로운 일본 경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근로소득세 최고세율 45%에 비해 너무 낮은 15%의 금융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초고소득층은 이자나 배당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이 크기 때문에 연소득 1억 엔이 넘어가면 실효소득세율이 오히려 낮아지는 ‘1억 엔의 벽’을 깨겠다는 것이었다.
기시다는 주식시장 하락 및 정치적 반대에 직면하여 금융소득세율 인상 계획을 철회했지만, 총리실 주도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한 여러 계획들을 발전시켰다. 기시다 정부는 2021년 10월에 발표한 ‘긴급 제언’ 문서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 촉진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지속 가능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여러 성장전략과 임금인상을 포함한 분배전략을 발표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외부 충격이 있을 때 하청기업이 하청단가를 높이고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가 확립되도록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22년 6월 발표한 실행계획에는, 일본 정부가 사람에 대한 투자와 분배, 과학기술과 혁신, 스타트업, 그린 전환, 디지털 전환 등의 분야에 계획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에도 기시다 정부는 자산소득 배증 계획, 스타트업 육성 계획 그리고 노동자의 숙련 향상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 등을 속속 발표해왔다. 2023년 일본 정부는 기존 계획들을 더욱 발전시켜 업데이트한 ‘새로운 자본주의’ 계획을 다시 제시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한편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와 여러 선진국이 추진했던 포용적 성장과 맥이 닿아 있다.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2단계 아베노믹스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임금인상을 더욱 강조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성장전략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산업정책 그리고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최근 미국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 부활, 그리고 현대적 공급 측 경제학의 문제의식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와 비교할 때 새로운 자본주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적 기반이나 경제학적 근거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기시다가 바라는 임금인상이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하려면 임금이 오르고 가계소득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총수요가 확대되고 그것이 경제성장의 촉진으로 이어진다. 총수요의 확대는 완전고용을 배경으로 생산성 상승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재정확장을 통해 총수요를 촉진하고 총공급 확대까지 추구했던 바이든 정부의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높은 수준의 고용과 성장이 유지되는 경제)’와 비슷한 논리다.
실제로 후생노동성이 2월 발표한 보고서는 임금이 1% 높아지면 생산이 0.2% 상승하고 일자리가 16만 개 생긴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도 임금인상 권고
그렇다면 거의 2년째 내내 하락하고 있는 일본의 실질임금이 과연 높아질 수 있을까. 오랫동안 정체돼온 임금인상 문제가 이제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되었고 그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22년 중반 이후 소비자물가가 급속히 높아지자 이를 배경으로 임금상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확산되었다. 2023년 1월 ‘유니클로’로 유명한 패스트리테일링이 임금을 40%나 인상하기로 발표하는 등 여러 대기업들이 임금인상에 동참했다. 지난해 ‘춘투(봄철 임금인상 투쟁)’에서는 대기업의 명목임금 상승률이 3.6%로 3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4% 이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게이단렌(일본 경제단체연합회)도 임금상승을 권고했고, 2024년에도 산토리홀딩스가 7% 인상을 발표하는 등 여러 기업들이 임금인상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임금인상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조건이다.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계속 낮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드디어 2022년 2.5%, 2023년 3.2%로 높아졌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 확대를 배경으로 한 급속한 엔저와 관련이 크다. 일본은행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지속했지만 미국은 2022년부터 급속히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높아졌는데 엔저로 인해 수입물가가 더욱 높아져 결국 인플레이션이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안정적인 임금상승에 기초한 총수요 확대와 인플레이션이 정착된 후에야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다. 인플레이션과 임금상승이 상호작용하며 물가상승-임금상승의 선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될 때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올해 임금이 얼마나 높아지는가가 통화정책 전환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인상은 기시다 정권의 운명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인플레 상승과 소득 정체를 배경으로 기시다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022년 상반기 50%대 중반에서 계속 떨어져 지난 2월에는 25%를 기록했다.
하지만 앞으로 인플레이션을 넘어서는 높은 임금상승이 가능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임금상승의 여력이 크지 않다. 무엇보다 임금은 결국 노동과 자본 간 투쟁과 협상의 결과다. 그러나 일본의 노동조합은 기업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고 협상력이 미약하다. 노조 조직률은 오랫동안 하락해왔고, 파업 같은 단체행동도 극히 드물다. 2022년 파업을 동반한 노동쟁의는 겨우 65건에 그쳤다. 2023년 8월 세이부 백화점 노동자들이 61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하자 국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또한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 좌파 정치세력도 매우 약해서 임금상승을 추동하는 정치·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천천히 변화하는 일본에서 재계를 포함한 대다수 구성원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임금인상의 실현 여부가 결국 일본 경제가 진정으로 회복하고 새로운 자본주의로 변모할 수 있을지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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