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 김민수씨(가명)가 변호인에게 쓴 편지. ⓒ뉴스민 갈무리
운전기사 김민수씨(가명)가 변호인에게 쓴 편지. ⓒ뉴스민 갈무리

내가 다니는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에는 이주민 전문기자가 있다. 박중엽 기자다. 박 기자는 최근에 통근버스를 운행하던 중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나온 법무부 공무원 11명을 다치게 한 한국인 운전기사 김민수씨(가명) 이야기를 썼다.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출근길에 갑자기 추방될 위기에 처한 이주노동자들은 운전기사에게 한국어로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외쳤고, 김씨는 순간적으로 액셀러레이터을 밟았다. 차량을 충돌해 틈을 만들고 차 문을 열었다. 운전기사 김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 판결을 전한 짤막한 보도를 박 기자는 눈여겨봤다. 단신 기사 너머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이주민 인권 활동가와 변호사를 만났다. 공장에서 그의 동료를 만났고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이주노동자들 소식을 수소문했다. 가족을 만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묻고, 대구교도소에 직접 면회를 가기도 했다. “그 사람들과 오래 함께 일했습니다. 저랑 다를 바 없는, 같이 생활하던 사람이잖아요. 그때는 정말 머리가 새하얗게 돼서 차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도 못했어요. 버스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운전기사 김민수씨의 이야기를 담은 첫 기사는 그렇게 나왔다. ‘접견 시간은 10분, 동료 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라는 기사다.

‘불법체류자는 단속해 쫓아내야지’ ‘공무원이 다쳤는데 왜 옹호하냐’는 질문에도 기사는 차분히 반박한다.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도 체류 자격을 잃을 위험은 상존하며, 그 때문에 이주노동자 강제 단속에 몰두하는 정책은 어떤 개선도 이루지 못한다고 말이다. 지난해부터 법무부가 강력한 단속 활동에 나서면서 단속 중 부상당한 공무원 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 나아가 대구 공단도, 경북 농촌도 이주노동자 없이 존립할 수 없는 현실까지 짚었다.

운전기사 김씨가 그런 선택을 한 데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자신의 변호사에게, 2016년 공무원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를 적발해 수갑을 채운 일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함께 밥 먹고 담배 피우던 사람들이 잡혀가면서 “도와주세요” 외쳤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은 단속 차량을 보고 패닉에 빠졌고, 도망갈 곳이 없으니 창문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했지만 곧 잡혔다.

운전기사 김씨와 이주노동자들이 일했던 대구의 한 공단. ⓒ뉴스민 갈무리
운전기사 김씨와 이주노동자들이 일했던 대구의 한 공단. ⓒ뉴스민 갈무리

“기사가 나가고 후원금 입금 알림이 계속 울렸다”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길어올린 이 기사는 〈한겨레〉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 다른 언론에서도 다뤄지고, SNS를 통해 공유되며 변화를 만들고 있다. 운전기사를 돕기 위해 나선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기사가 나가고 후원금 입금에 알림이 계속 울렸다”라고 전해왔다. 7000장 넘게 탄원서가 모이고 이자스민 정의당 국회의원을 초청해 구조를 들여다보기 위한 포럼도 열렸다. 여전히 기사에는 부정적 댓글이 달리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가 김씨의 마음을 한 번쯤 상상해봤으리라 믿는다. 박중엽 기자는 이번 기사가 왜 유독 주목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며 “독자들이 평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미디어오늘〉에 말했다.

지역 곳곳에 박중엽 기자 같은 전문기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서울 밖에는 공공의료·저출생·농업·여성·이주민·장애인 등 약한 고리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함께 풀어나가지 않으면 공멸할 게 뻔한데, 대부분의 기사는 배경과 해결책 없이 현상만 담는다. 이런 기사들은 좌절과 무기력을 낳는다. 조회수를 노리고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나쁜 기사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주노동자, 그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공무원을 분리하지 않고 ‘구조’ 속에서 이해하려는 기사는 그래서 귀하다. 기사의 진짜 강력한 힘은 사람을 묶어낼 때 발휘된다는 것을 배운다.

기자명 김보현 (〈뉴스민〉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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