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8만여 명이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명으로 급감했다.ⓒ시사IN 이명익
2012년 48만여 명이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명으로 급감했다.ⓒ시사IN 이명익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숫자 하나가 한 사회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0.72명. 2월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합계출산율이다. 지난해(2022년 통계) 발표한 0.78명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고질적인 저출생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악화되고 있다. 매년 2월에 발표되는 전년도 합계출산율은, 한국 사회가 매년 받아드는 일종의 성적표로 인식되고 있다.

0.72명이라는 숫자가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체감하기 쉽도록 한 국가의 인구가 총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면 이들의 자녀(2세대) 수는 총 36명으로 줄어든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2세대가 낳아 기르는 손자녀(3세대)는 다시 13명까지 쪼그라든다. 단 두 세대(약 60년) 만에 공동체가 소멸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줄어든다.

통계청이 2월28일에 발표한 ‘출생·사망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암담한 내용이 많다. 일단 출생아 인구 절대치가 줄었다. 2022년 약 25만명이던 출생아 수는 지난해 23만명으로 2만명 감소했다. 2012년 출생아 수(48만455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자연스럽게 총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2023년 기준 사망자는 35만2700명으로 출생아 수보다 약 12만명 더 많다. 그만큼 인구가 ‘자연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작년 한 해에 경남 통영시 총인구만큼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줄어들었다.

지역별로는 ‘세종 쇼크’가 강하다. 2022년 합계출산율 발표 당시에는 세종특별자치시가 그나마 희망처럼 여겨졌다. 합계출산율 1.12명을 기록하며 전국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0명을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3년에는 세종마저 합계출산율이 0.97명으로 떨어졌다. 전년 대비 13.2% 감소했다. 세종은 광주(-16.4%)와 함께 전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크게 떨어진 지역으로 꼽혔다. 2022년 0.59명으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서울 역시 올해 0.55명으로 더 악화되었다. 인천(0.69명), 경기(0.77명) 등 수도권 나머지 지역도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지난해보다 합계출산율이 감소했다.

향후 전망도 어둡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발표했다.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미래 인구 예측 모델이다. 당시 통계청은 향후 합계출산율이 2024년 0.68명, 2025년 0.65명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중위 추계 기준). 그러나 통계청의 이런 ‘추계’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역사가 있어서다. 2019년 ‘장래인구추계’ 발표 당시 통계청은 ‘합계출산율이 2020년에 0.9명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과도한 낙관론이었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2021년에도 통계청은 ‘2024년에 0.7명까지 떨어진 뒤 반등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마저 민망한 ‘흑역사’가 되게 생겼다. 통계청의 예측 모델보다 출산율 감소가 심화되면서 합계출산율 추계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2025년 0.65명이 최저점일 것’이라는 현 예측치마저도 불안한 이유다.

“출산율 1.0명이 목표”라는 대통령

한국에서 인구문제, 특히 청년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는 이제 상수다. 단순히 ‘인구 감소 공포’를 넘어, 이 문제가 수도권 과밀·집중화, 여성의 경력 단절, 육아휴직이 어려운 노동환경, 경제적 불평등, 청년의 불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0명 밑으로 떨어진 2018년(0.98명) 이후, 출산율 하락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결합한 결과라고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문제는 구체적 대응책을 만들어갈 정치의 영역에서 출산율 감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윤석열 정부의 기본 기조부터 살펴보자. 이번 통계청 발표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출산율 1.0 회복’을 정책 목표로 천명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두 차례 이 목표치를 언급했다. 첫 발언은 2월7일 방영한 KBS 특별대담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합계출산율) 1.0을 목표로 방안을 강구하겠다. 구조적인 부분과 구체적인 정책 부분을 나누어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효율적으로 가동해 뭔가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2월7일 방영한 KBS 특별대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합계출산율 1.0명 회복이 목표라고 밝혔다.ⓒKBS 화면 갈무리
2월7일 방영한 KBS 특별대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합계출산율 1.0명 회복이 목표라고 밝혔다.ⓒKBS 화면 갈무리

며칠 뒤인 2월13일, 부산에서 주재한 ‘민생토론회’ 현장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1.0’을 콕 집어 언급했다. “수도권 집중과 과도한 경쟁이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으로 합계출산율 1.0을 회복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합계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라도 비수도권 지역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이었다. 2월20일 국무회의에서도 재차 “저출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즉효 대책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저출산 정책을 재구조화해야 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저출생 문제가 노동·보육·격차 등 각종 구조적 이슈가 뒤엉킨 문제라고 인식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의식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대통령의 메시지에서 모순이 쉽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1.0명이라는 목표치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23년에 발표한 통계청 인구추계 모델에서 합계출산율 1.0명을 넘기는 것은 2035~2040년에나 가능한 얘기다. 이 추계 모델은 ‘현 추세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계청의 중위 추계 모델대로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2027년 5월9일까지) 내에 합계출산율은, 1.0명은커녕 0.6명대의 늪에서 헤어 나오는 것조차 어려울 전망이다.

부산에서 설파한 ‘지역 균형발전으로 합계출산율 1.0 회복’도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부산에 가기 전에, 이미 수도권 지역에서 인구집중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정책들을 발표해두었기 때문이다. 각각 경기도 고양·수원·의정부에서 열린 2·3·6차 ‘민생토론회’가 대표적이다. 1월10일 고양시에서는 노후계획도시 재정비 지원 정책을 강조하며 수도권 1기 신도시의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1월15일에는 수원시에서 수도권 남부 지역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지원을 약속하며 “일자리를 300만 개 이상 창출하겠다”라고 선언했다. 1월25일에는 의정부시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을 6개까지 확대하며 주요 수도권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요컨대 부산에 가서 외친 ‘합계출산율 1.0을 위한 지방 시대’ 이전에 이미 ‘주거·일자리·교통을 대거 보완한 수도권 시대’를 약속한 셈이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철도망 구축에는 (비수도권 일부 사업을 포함해) 약 134조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투입된 돈이 23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자원이 투입되는지 짐작게 한다. 첨단산업 일자리 목표치(300만명)도 전국의 일자리 지도를 다시 만들게 하는 수준이다. 지속된 출산율 하락은 ‘생산가능인구’를 대폭 줄인다. 지난해 12월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22년 3674만명이던 생산가능인구는 2032년까지 332만명이 감소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언대로라면, ‘일할 사람이 부족한 문제’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질 좋은 핵심 일자리를 경기도 남부에 집중시키는 꼴이다. 부산에서 외친 ‘출산율 1.0을 위한 지방 시대’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2월28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공동취재
2월28일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공동취재

갈피 못 잡은 집권 2년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 ‘인구문제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적된 문제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는 ‘인구 5000만명 유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공약이었다. 이미 통계청 인구추계에서도 ‘인구 감소’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이 추세를 뒤집고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을 ‘인구대체수준(2.1명)’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2021년 12월10일 국민의힘은 인구정책 관련 브리핑에서 인구 5000만명 유지를 목표치로 삼되 구체적 출산율 목표치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선대위에서 인구정책을 담당한 인물이 얼마 전 사퇴한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 당시 김 전 장관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인구 5000만명 유지는)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목표를 그렇게 두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캠프 차원에서 수치를 면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두루뭉술한 공약만 제시한 셈이다.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저출생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도 인구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5월3일, 당시 인수위는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추후 5년 동안 추진할 핵심 정책을 소개했다. 일종의 ‘집권 청사진’이다. 하지만 당시 ‘110대 국정과제’ 항목 가운데 ‘저출산’과 ‘저출생’이라는 단어는 각각 딱 한 번씩만 등장한다.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과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및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이라는 항목에서 부모급여 신설, 돌봄서비스 확대, 육아휴직급여 적용대상 확대, 출산휴가·난임휴가 확대 등이 등장했지만 당시 인수위는 이들 정책을 적극적인 저출생 정책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청년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과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유자녀 가구를 위한 복지 지원을 산발적으로 담아내는 수준에 그쳤다. 국정과제 발표 2개월 전인 2022년 2월 말, 2021년도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발표되었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기지 않았다. 합계출산율이라는 단어조차 당시 국정과제에 등장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저출생 문제 대응이 조금씩 변화한 것은 2023년 3월부터다. 당시 2022년도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7명대(0.78)에 접어들면서 부랴부랴 정책 과제가 새롭게 수립됐다. 늘봄학교 확대 및 유보통합 시행, 난임지원 확대, 부모급여 지급, 신혼부부 주거공급 등 저출산 관련 주요 과제를 한데 모아 발표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초저출산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러한 내용을 덧붙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혼인 건수 감소해 향후 2~3년간 초저출산이 지속될 전망.” 당시 정부가 놓친 대목이 있다. 혼인 건수가 특정 시기에만 유별나게 줄어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연간 총 혼인 건수는 2013년 32만2800여 건에서 2022년 19만1700여 건까지 매년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2021년에 감소 폭이 크긴 했지만, 거리두기가 해제된 2022년에도 혼인 건수는 전보다 줄어들었다. 2023년에는 19만3600여 건으로 전년 대비 1% 증가했지만 팬데믹 기간(2020~2021년)만큼 회복하지는 못했다. 혼인 감소는 팬데믹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기현상이 아니라 이미 일종의 추세로 고착화되었다. 2023년 윤석열 정부의 정책 목표는 주로 ‘결혼한 가정이 아이를 낳도록’ 유도하는 데 집중해 있지만, 실제로는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청년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저출생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한 2023년에도, ‘청년의 삶’은 정부의 대책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저출생 문제를 풀어가려는 과정에서 여권 주요 인사와 대통령실의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2023년 1월5일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자녀를 3명 낳으면 대출금 원금까지 탕감해주는 헝가리식 모델”을 언급해 논란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나경원 부위원장의 의견은 사견일 뿐’이라며 반박했고, 나 부위원장 역시 한발 물러서야 했다. 섣부른 정책 언급을 대통령실이 ‘진압’한 모양새가 되었다.

지난해 3월2일 제주도 한 초등학교의 입학식. 합계출산율 하락으로 학령인구 감소세도 가팔라지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3월2일 제주도 한 초등학교의 입학식. 합계출산율 하락으로 학령인구 감소세도 가팔라지고 있다.ⓒ연합뉴스

물론 나경원 당시 부위원장이 제시한 헝가리식 모델이 과연 ‘배울 만한 정책이냐’에는 의문이 남는다. 2021년 이하얀 한국외대EU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대외경제연구원을 통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채 감면’을 외친 헝가리식 모델은 사실 ‘헝가리 순수 혈통 아이를 늘리기 위한 배타적 민족주의 정책’에 가깝다. 2019년 헝가리 정부는 ‘4명 이상 아이 가진 여성 평생 소득세 면제’ ‘5년 이내 자녀 출산 시 대출이자 면제’ ‘3명 이상 출산 시 대출액 전체 탕감’ ‘초혼 여성 무이자 대출’ 등을 발표하며 연간 GDP의 5%를 출산 정책에 쏟아부었다. 문제는 이 정책의 지향점이다.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는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는 난민 수용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인구 부족 문제를 이민정책으로 풀어가려는 서유럽 국가들과는 상반된 태도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2019년 국정연설에서 “헝가리 국내에 사는 인구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헝가리 혈통의 아이들이 필요하다”라며 난민 배제와 혈통주의를 강조했다. 합계출산율을 늘리기 위해 과감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것도, ‘순수 혈통 헝가리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이민 확대를 고민하는 한국 사회가 혈통주의에서 유래한 헝가리식 모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헝가리식 모델은 정책을 시행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이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되지도 않았다. ‘저출생 대응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조바심이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이주민을 배척하기 위한 용도로 비쳐지는 정책을 인구정책의 최전선으로 끌고 왔다.

비록 나경원 당시 부위원장은 대통령실의 반발에 직을 내놓고 물러나야 했지만, 이후 저출생 문제에 대한 다소 ‘과격한 접근’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부영그룹이 아이를 갖는 임직원에게 1억원을 주겠다고 발표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은 조세 체계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으로 이어졌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1억원을 상여 형태로 지급할 경우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부영그룹 측은 이 때문에 세금을 아끼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임직원의 자녀)에게 증여 형태로 축하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증여세가 소득세보다 싸다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이 출산장려금을 줄 경우 세제 혜택을 주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한 기업이 축적한 영업 성과를 출산하는 가구의 추가 소득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 미혼·비혼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요인은 없는지 심도 깊게 논의되지는 못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다소 논란이 따르는 방식’이라도 용인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청년·젠더 정책의 부재

구조적이고 복잡한 문제라 하더라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구체화된 정책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가 인지하기 쉬운, 구체적인 액수로 표현되는 현금성 지원 정책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여야 정치권도 ‘알고는 있지만 예각화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 저출생 문제가 실제로는 청년·젠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청년정책은 저출생 대응 과정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정부가 현재 가장 공들이고 있는 청년정책은 ‘자산 형성’ 측면이다. 청년도약계좌처럼 초기 자산 구축을 돕는 정책도 있지만, 가상자산 과세 유예처럼 청년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도 청년정책의 일환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새 정부 집권 이후, 청년층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불안이 커졌던 문제는 전세사기·전세금 미반환 같은 이슈였다.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 문제 역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부족했던 이슈다. 전세사기 문제는 ‘개인 간 사금융’으로 치부되고, 수도권 집중은 ‘비수도권을 지원하면 되는 문제’로 평가된다. 이들 개별 이슈가 종합적인 ‘청년정책, 저출생 대응 정책’으로 논의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이슈는 주거에 대한 불안, 가족을 형성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면서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젠더 이슈, 성평등 문제도 정부가 놓치고 있는 출산율 하락의 핵심 원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과정에서 젠더 이슈를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젠더 갈등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면서 미혼·비혼 여성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기회가 줄어들었다.

1월18일 경상북도청에서 토론 형식으로 열린 신년 업무보고. 저출생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경상북도 제공
1월18일 경상북도청에서 토론 형식으로 열린 신년 업무보고. 저출생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경상북도 제공

혼인과 출산이 감소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여성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실존적인 불안을 강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남녀 임금격차,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전통적인 결혼 생활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할 것이라는 불안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지를 계속해서 미루고 기피하게 만든다(〈시사IN〉 제808호 ‘“우리 결혼 안 합니다” 2030 연애·결혼 리포트’ 기사 참조). 이런 불안을 풀어내려면 정부가 젠더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개인이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청년 여성의 불안감과 젠더 이슈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에서 1990년대생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오늘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 해소와 성평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저출생 문제는 ‘사회경제적 요인’과 ‘문화 가치관적 요인’이 존재하는데, 사회경제적 요인은 흔히 말하는 ‘비용’의 문제다. 이 부분은 현재 정치권에서 각종 현금성 지원, 장기적인 주거 지원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더라도 문화와 가치관과 연관된 문제, 예컨대 ‘엄마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이라는 성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혼인 기피와 출산율 저하는 해소되기가 어렵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적 돌봄체계를 확대해 여성의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정부의 대책에서도 등장하고 있지만, 성평등한 노동시장 구축, 민주적인 가족관계 확립은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하는 주제다.

집권 기간에 떨어진 합계출산율이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라고 일갈하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 현재 출산율은 과거 삶의 영향을 받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집권 3년 차 정부만의 문제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가 합계출산율을 진지하게 고민한 시점이 다소 늦었고, 대책 마련 과정에서 청년·젠더 정책을 등한시한 점은 현 정부와 정치권의 패착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정치권에서 저출생 이슈는 더 자주,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낯선 풍경도 많을 것이다. 경상북도는 2월 도청에서 ‘저출생과의 전쟁 선포식’을 열고 ‘경북 주도 K-저출생과의 전쟁 전략 구상’을 발표했다. ‘전쟁’이라는 표현을 붙일 만큼 지역에서는 ‘절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산율을 마치 고도성장기 수출 목표액처럼 삼고, 전 사회가 동원되는 총력전 형태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성적표 앞에서 한국 사회는 전례 없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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