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월~목 오후 5시 / https://youtube.com/sisaineditor)
■ 진행 : 김은지 기자
■ 출연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출산은 성차별적이고 저출생은 성평등적 개념? 둘 다 다르게 필요한 개념”
“2067년 인구 3300만명? 이주 배경 인구 포용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 미래 없어”
“부영 출산장려금 1억원 지급에 반색한 정부… 세제 혜택 검토는 옳은 방향 아니야”
“한국 사회 사람값, 사람 대우 제대로 해주는 나라인가? 메가시티보다 중요한 질문”
“20년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으로 정책은 이미 나와 있어… 큰 그림 필요”
“단순 현금 지급이 아닌 저출산·저출생 아젠다를 내놓을 정치인 필요”
“가족 복지지출 OECD 평균 이하… 저출산·저출생 대응도 평균 이하라는 의미”
“저출산·저출생에 300조 썼지만 소용없다? 악의적인 선동… 더 쏟아부어야”
“워라블(일과 삶의 혼합)하자는 저고위 부위원장, 한국은 워라밸도 해본 적 없어”

■ 진행자 / 정치가 반드시 다뤄야 할 의제임에도 후순위로 밀리는 게 있습니다. 저출생·저출산 문제입니다. 관련해 정부에 정책 자문을 해주고 계시는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이라는 책을 최근 내셨죠. 다 읽고 나니 ‘우리 정말 망했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EBS 다큐멘터리 〈초저출생〉 편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과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을 듣고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놀라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이 ‘밈’으로도 쓰이고 있잖아요. 정말 그렇습니까?

■ 정재훈 / 같은 이야기라도 외국인이 한마디 하면 더 주목받는 것 같아요. 저는 좀 기분도 나빴어요. 우리의 절박한 상황을 희화화하는 것 같아서. 머리 쥐어뜯는 사람 한국인 중에도 많아요. 제 주변에도 많고, 저도 이미 여러 번 쥐어뜯었어요(웃음). 사안이 심각한 만큼 공포나 불안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위기의 골이 깊을수록 희망의 높이도 높아진다고 보고 싶고요. 한국 사회가 외부의 평가보다는 우리 내부로 시선을 돌려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이런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 진행자 /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책에서도 짚어주셨지만 출산율과 출생률 개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둘 중 어떤 단어를 쓰느냐를 두고 때로 싸움도 나잖아요.

■ 정재훈 / 왜 싸움이 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출산율은 여성 1인이 평생 낳은 아이 수를 말하죠.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태어난 아이 수를 말합니다. 그해에 태어난 아이 수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 출생률이고, 여성 개인이 평생 낳은 아이 수가 출산율이에요. 개념이 다르죠. 예를 들어 출산율이 높은 지역도 출생아 수가 적기 때문에 여전히 인구 감소 지역이 될 수 있는 거고요. 그래서 출산율은 출산율대로 ‘여성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쪽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고요. 출생률 자체는 인구 규모 변화에 따른 정책적 대응, 그러니까 이 정도로 계속 아이가 태어날 경우에는 어린이집이 얼마만큼 사라지는지에 대해 대응해야 하잖아요. 출산율과 출생률은 다르고 둘 다 필요한 개념입니다. 한국이 과거 산아제한 정책부터 1~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하는 동안 한국이 여성을 출산 장려 정책의 대상으로 삼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잘못한 게 많죠. 그러다 보니까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미룬다고 해서 저출산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의도는 이해해도 두 개념이 다르다는 걸 짚고 싶습니다. 저출산이라고 성차별적인 개념이고 저출생이라고 해서 성평등적인 개념은 절대 아니죠.

■ 진행자 / 단어 가지고 싸우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웃음).

■ 정재훈 / 그래서 저는 ‘저출산·저출생’ 둘 다 써요. 한국이 1980년대 이미 저출산으로 들어갔지만 그때는 70~80만명씩 태어났어요. 저출산 시대지만 저출생 시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초저출산, 초저출생 시대가 된 거죠.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월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이후 태어난 70명의 직원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원하는 출산장려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 규모는 총 70억원이다.ⓒ연합뉴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월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이후 태어난 70명의 직원 자녀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원하는 출산장려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 규모는 총 70억원이다.ⓒ연합뉴스

■ 진행자 / 책에서 한국 사회가 N포세대, 헬조선, 수저계급론까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확대되는 것도 짚어주셨지만, 이런 걸 보면 한국 사회가 쉽게 개선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 정재훈 / 지금 인구가 줄어드는 건 분명 문제지만, 이주 배경 인구가 많이 또 증가하게 될 거예요. 한국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사실은 여기에 한국 사회의 미래도 달려있어요. 50~60년 뒤에 인구가 3300만명으로 줄어든다는 예측도 있지만 통계청 인구 추계는 숫자 알고리즘만 갖고 하는 거예요. 그 사이에 정책적인 변화가 있을 수만 있다면 좌절할 일만은 아니라는 의미고요. 독일 같은 경우도 8000만명 중에 2000만명 이상이 이주 배경 인구에요. 한국도 그렇게 될 수 있죠.

■ 진행자 / 최근에 부영그룹이 출산장려금 1억원을 지급하는 등 기업 차원에서도 저출산·저출생 대책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시나요? 윤석열 대통령도 “상당히 고무적”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주문하기도 했잖아요. 정부가 기업의 출산 지원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 정재훈 / 사람이 공황 상태에 빠지면 갑자기 허둥대게 되잖아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기업이 500만원을 준다, 1억을 준다? 기업이 필요한 사람은 아이 낳는 사람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성 높은 노동자예요. 그런데 기업이 출산장려금을 노동자에게 준다고 해서 이걸 우리 세금으로 세제 혜택을 준다? 기업의 역할은 따로 있는 건데 막 섞이고 있지 않나 싶고요. 물론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건 기업의 선택이고,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세금을 들여서 세제 혜택을 주는 건 반대합니다.

■ 진행자 / 그렇다면 의미 있는 대책, 무엇이 있을까요?

■ 정재훈 / 저출산·저출생은 대한민국 사회가 온몸이 골병 들어서 생기는 문제죠. 우리가 축구 이야기 나오면 다들 한마디씩 거들 수 있는 것처럼, 저출산·저출생 요인에 대해서도 다들 할 말이 있어요. 한국 사회 대개조를 전제로 하면서도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의 일가정 양립이 제대로 되게 하는 거죠. 일가정 양립이 제대로 되어야 하나 낳은 부모가 둘도 낳을 수 있고, 그런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청년들도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거고요. 일가정 양립만이라도 제대로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시급합니다.

■ 진행자 / 관련 대책이 지금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 정재훈 / 부모의 일가정 양립, 사회적 돌봄, 가족 친화 경영 이렇게 나눠서 본다면 사회적 돌봄 체계는 현재 영유아기(어린이집과 유치원)까지는 됐어요. 질적인 수준에 만족을 하든, 못하든 아이를 급하면 저녁 7~8시까지 맡길 수 있잖아요. 그러고 나니까 초등 돌봄 절벽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이 부분도 독일의 전일제 학교, 지금의 늘봄학교 확대로 어느 정도 해소해 볼 수 있어요. 늘봄학교는 민주당 정권에서도 공약했던 거고 정치적으로 합의가 된 거죠. 이 문제까지 해소가 되면 사회적 돌봄 체계는 그래도 어느 정도, 녹색불까지는 아니지만 노란불에서 옮겨가고 있다고 볼 수 있고요. 가족 친화 경영 부분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낮은 수준이죠. 결국 이 부분이 일가정 양립과도 연결돼 있는데 이 축이 완성이 돼야 해요.

■ 진행자 / 시청자분들도 많은 의견 보내주고 계신데요. “빈부격차 등으로 있는 사람도 죽어 나가는데, 없는 아이를 낳으라는 게 의미 없다” 이런 반응도 있어요.

■ 정재훈 / 맞는 말씀이세요. 한국이 사람 대우를 받고 사는 사회냐? 사람값이 어느 정도 되느냐? 제가 〈시사IN〉에 오는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가 사람이 지나가는데도 멈출 생각을 안 해요. 우리가 사람 중심 사회에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해볼 수 있죠. 메가시티 물론 좋죠. 그런데 메가시티보다도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정책과 편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진행자 / 윤석열 정부 저출산·저출생 대책을 평가해 보신다면요?

■ 정재훈 /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토대로 본다면 큰 변화는 없습니다. 정책은 쭉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다만 여기에 아슬아슬하게 출산 장려금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는 걸 저는 좀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고요. 지난 1~2년간의 변화는 아빠의 돌봄 참여 확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사회적 돌봄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유보통합이나 늘봄학교 확대 시도는 높이 평가해도 좋다고 봅니다.

■ 진행자 / 4월 총선이 50일도 남지 않았어요. 정치인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 정재훈 / 저출산·저출생 관련 아젠다들이 나오고 있죠. 주로 돈을 주겠다는 공약입니다. 저희가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만들면서 정책은 사실상 다 나와 있습니다. 수많은 퍼즐이 이미 있고, 이걸 어떤 모양으로 완성할 거냐가 남은 거죠. 우리가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고, 어떻게 성평등 사회를 만들 건지, 이런 큰 그림이 있어야 해요. 사실 개별 정책 전문가는 많습니다. 주거, 청년, 돌봄…. 그런데 큰 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는 건 정치의 몫이잖아요. 국회의원 임기 4년 안에,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한국 정치 체제에 한계가 물론 있습니다. 재임 기간 내에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조적인 한계죠. 당장 현금을 쥐여주기는 쉽지만, ‘사람 사는 마을’을 근사하게 만들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기가 굉장히 힘든 구조에요. 한편으로 좋은 정치인도 우리가 뽑는 겁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저출산·저출생을 자신의 정치 아젠다로 내놓는 거 보셨습니까? 저출산·저출생 아젠다를 내놓는 사람을 뽑겠다는 여론이 조성돼야 해요. 정치인들이 또 눈치는 굉장히 빠릅니다(웃음).

윤석열 대통령이 2월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 시작에 앞서 늘봄학교 방송댄스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월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 시작에 앞서 늘봄학교 방송댄스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 진행자 / 저서에 “어떤 개념의 예산이나 투자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써야 한다. 더 이상 쏟아부었다는 과장된 주장을 하지 말자. 그리고 이제 진짜 한번 돈을 쏟아부어 보자!”라고도 쓰셨어요.

■ 정재훈 / 한국이 국내총생산 대비 가족 복지지출이 OECD 회원국 평균 수준 이하입니다. 가족 돌봄을 지원해 주는 게 OECD 평균 이하라는 의미입니다. 저출산 대응도 평균 이하인 거죠. 그동안 우리가 저출산·저출생 예산이라고 편성했지만 그중에는 스마트 스쿨 조성 사업이니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 지원사업이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데 지원하는 예산은 절반도 안 됩니다. 20년 동안 국가 예산이 200조, 300조 들었다고 하지만 1년에 10~20조 정도인 거죠. 한국은 사실 저출산·저출생에 돈을 쓴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출산·저출생 예산 수백조 썼는데 소용없다는 건 악의적인 선동이고요, 그런 선동은 그만해야 합니다. 진짜 위기라고 생각하면 사회적 돌봄 체계 구축에 정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하고요, 일단은 몇 년만이라도 한번 쏟아부어 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진행자 / 이번에 새로 취임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단순 현금성 지원이 아닌 “‘워라블’(일과 삶의 혼합 work and life blending)에 방향을 맞추겠다”라고 했어요. 이 부분은 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정재훈 / 아마 새로 부임하셨으니까 새로운 콘셉트를 가져야겠다는 욕구는 있겠죠. 일가정 양립, ‘워라밸’의 다른 표현으로 ‘워라블’을 쓰신 거 같은데요. 워라블은 서유럽 국가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에 재택근무 하다 보니까 나온 개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일가정 양립 경험, 해보신 분 있습니까? 한국 사회가 일가정 양립이 보편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나요? 워라밸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회에서 갑자기 워라블 얘기하는 거죠. 사실 한국 사회는 어디까지 일이고 어디까지 아닌지 이미 일이 삶에 너무 블렌딩 돼 있어요. 근무 시간 지났는데 카톡 보내고 그러잖아요. 지금은 금지됐지만. 워라밸이 어느 정도 된 사회에서 워라블도 되는 거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워라블한다고 하면 혼란만 일어나요. 조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제작진
책임총괄: 장일호 기자
프로듀서 :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진행 : 김은지 기자
출연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조현욱 보좌관, 이은기 기자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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