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월 내로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를 확정·공표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월 내로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를 확정·공표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주식투자로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한국에도 올까? 윤석열 정부는 2월 내로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높이기) 프로그램’을 확정·공표할 계획이다. “‘(국민) 자산 형성의 사다리’로서 자본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가를 올리겠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상장기업의 주가가 다른 나라의 비슷한 기업보다 낮게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

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기업들의 ‘투자 행태’가 꼽힌다. 대체로 한국의 상장 대기업들은 위험하지만 높은 수익을 획득할 수 있는 사업 부문에 큰 자금을 투자해왔다. 이런 투자는 해당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발전에 필요하다. 위험하고 불투명한 대규모 투자 가운데 상당수가 성공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 경제가 있다. 다만 대규모 투자로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내긴 힘들다. 그러나 주주들은 기업의 투자 규모, 매출 확대, 시장점유율보다 높은 수익률을 선호한다. 해당 기업이 ‘장사 밑천(주주들이 제공한 자본금)에 비해 얼마나 높은 순수익을 올리느냐’에 따라 주주들에게 배분될 수 있는 몫이 기본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해당 투자 지표가 바로 ROE(자기자본수익률, 순수익/자본금)이다. 주주들에게는 100억원의 자본금으로 10억원의 순수익을 올리는 기업(ROE 10%)보다 1억원으로 2000만원을 버는 업체(ROE 20%)가 훨씬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고용, 경제성장 등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설사 기업의 ROE가 낮더라도 주주들의 혜택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해당 기업의 순수익 중 많은 부분을 주가 상승에 사용하면 된다. 기업이 수익을 사내 보유나 재투자가 아니라 ‘배당률 높이기’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쓰면 주가가 오른다. ‘자본금에 대비한 시가총액(PBR·주가순자산비율, 시가총액/자본금)’이 상승했다는 의미다.

예컨대 자본금이 2억원인 기업이 2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면 ROE는 10%(2000만원/2억원)다. 이 기업이 발행한 주식 2만 장(1주당 액면가는 1만원, 장부상 자본금은 2억원)이 1주당 8000원(시가총액은 1억6000만원)으로 거래되고 있다면, PBR은 0.8배(1억6000만원/2억원)에 불과하다. 시가총액이 ‘장부상 자본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PBR 1배 이하’ 업체다. 한국 증시 전체 종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런 기업이다. 현대차, 기아, LG와 SK 계열의 대표 기업들, POSCO홀딩스, 거대 금융지주회사 등 한국 경제의 중추로 불릴 만한 기업들이 그런 상태다.

일본 도쿄의 JPX(일본거래소그룹) 건물. ⓒAP Photo
일본 도쿄의 JPX(일본거래소그룹) 건물. ⓒAP Photo

주주 친화적인 ROE와 PBR 높이기

이 기업들이 낮은 PBR에도 불구하고(혹은 ‘때문에?’) 비교적 견조하게 성장해온 이유를 따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2024년 2월 현재 윤석열 정부는 투자자들에게 빨리 희망을 주고 싶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서 흘러나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혹은 ‘기업 밸류업’ 방안의 핵심은 한국 상장기업들의 투자‧배분 행태를 고쳐 ROE, PBR 등 투자지표를 높이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거래소가 기업들에게 ‘투자지표 개선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계획을 공시하도록 권고한다. 여러 상장사들의 투자지표를 비교·공개해서 투자자들이 한눈에 투자하기 ‘좋은’ 회사와 ‘좋지 않은’ 회사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혹은 투자지표가 높은 기업들만 편입하는 주가지수(닛케이 225, S&P500 같은)를 만들어 이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ROE와 PBR을 높여야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주주 친화적인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태계로 가는 길목에 끈질긴 걸림돌이 있다. ‘재벌’로 불리는 창립자 가족들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전제적으로 지배해온 이들의 ‘독재’를 꺾지 않으면 주주 친화적인 투자‧배분 행태(ROE와 PBR 상승)로 전환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기되는 방안이 기업지배구조 개혁이다. 이사회를 대폭 강화하면 창립자 가족(대주주)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현행 상법에서 이사들은 ‘기업 법인’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충실 의무). 이사들이 주주에게도 책임을 지도록 상법을 개정할 수 있다. 이사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창립자 가족의 결정에 동의하는 경우, (설사 그 결정이 해당 ‘기업 법인’에 이익을 준다 하더라도) 법률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면 주가가 올라갈까? 눈부신 성공 사례가 있다. 일본 정부가 2023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자산소득 배증 플랜’(이하 플랜)이다.

일본거래소그룹(JPX)은 지난해 3월 상장사들에게 ‘PBR 1배, ROE 8%’라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주가 부양안’을 내놓으라고 권고(?)받는다. PBR과 ROE가 높은 기업 150개로 ‘JPX 프라임 150’이라는 지수도 만들었다. 이 플랜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추진된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기반 위에 진행되고 있다. 당시 아베 정부는 공적연금(GPIF)과 일본은행이 ROE가 높은 기업들의 증권을 매입하도록 규제했다. 업체들이 ROE를 높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책임과 책무’를 법률로 규정했다. 윤석열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아베-기시다 정부 정책의 복제에 가깝다.

‘자산소득 배증 플랜’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 225’는 지난해 2월15일 2만7050.86에서 올해 같은 날 3만8046.09로 1년 동안 40.6%나 상승했다. 올해 들어서도 무려 14.1% 올랐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제도를 온전히 다른 토양에 옮겨 심는 일이 가능하고 바람직할까? 더더욱 ‘자산소득 배증 플랜’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이른바 ‘새로운 자본주의’ 구상의 한 부분이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일본을 구출하기 위한 비상구이기도 하다.

‘자산소득 배증 플랜’의 본질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정체되거나 내리면서 경기 전반이 침체되는 현상이다. 오늘보다는 내일 물가가 더 낮을 것이므로, 경제주체들이 투자와 소비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수요(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오르고 이로 인한 임금 상승이 완만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사라진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저수요→저물가→저임금→저성장→저수요)을 끊으려면 어떻게든 총수요를 늘려야 했다. 이를 위해, 2013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설치한 거시경제적 장치가 바로 초저금리와 초저엔(円)이다. 일본의 기준금리는 현재 -0.1%다. 엔화 가치는 1달러당 150.12엔(2월15일 현재)으로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초저엔은 일본 대기업들의 수출 수익을 늘려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거나 다른 부문에 대한 ‘낙수효과’가 발생하진 않는다. 일본 정부는 가계소득을 높여 수요를 증진시켜야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시다 정부는 가계소득을 올리는 두 가지 방법을 채택했다. 하나는 임금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권고하고 이를 위한 세제 혜택까지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가계의 ‘자산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일본의 개인 보유 금융자산은 2121조 엔에 달한다. 이 중 52.5%가 현금과 예금으로 금융수익과 거의 무관한 상태다. 이런 자금 중 일부분을 ‘자산소득 배증 플랜’으로 자본시장으로 이끌어냈다.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초저엔 환경에서 예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일본 주식으로 몰려들었다. 기업들은 PBR과 ROE를 높이라는 당국의 요구에 순응했다. 일본 주식시장이 날아오를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초저금리로 잔뜩 팽창한 엔화 유동성이 주식시장으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의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이다.

초저금리-초저엔 환경의 변동에 따라 일본 자본시장은 엄청난 충격에 노출될 수 있다. 최근 일본 당국은 금리를 한동안 인상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 당국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이 계속된다면 금리인상은 불가피하다.

지난해 12월21일 나온 경제 전망에서 일본 정부는 2023/2024년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의 실질경제성장률을 1.6%로 추정했다. 다음 회계연도의 실질성장률은 1.3%로 잡고 있다. 지난 1월10일 일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명목임금인상률-인플레이션율)은 2022년 11월보다 3.0% 하락했다. 20개월째 실질임금 감소가 계속되고 있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플랜’에 대해 “주가가 올라도 주식 투자자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경제 전반에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대기업들의 투자 실적 역시 이윤 증가에 비해서는 여전히 정체되고 있는 수준이다”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지난 10여 년에 걸친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플랜’을 결합하면서 주식시장을 부흥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활황을 장기적으로 이어 나가려면 견조한 경제성장과 실질임금의 상승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기업 밸류업’이 단지 ‘주가 올려서 주주들 기쁘게 하기’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투자·배분 행태를 크게 바꾸는 작업이라는 점에 유의하고 지극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주주, 노동자, 채권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가 협력하며 경쟁하는 공간이다. 주주에게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나 해당 기업의 존속과 발전에 반드시 이롭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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