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복씨(50)는 준우 이야기를 하면 얼굴빛이 밝아진다. 준우와 함께한 시간은 10년이 지나도 다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씨는 세월호 가족과 일반 시민이 함께하는 4·16합창단에서 2016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가 집에서 노래하면 준우가 옆에서 잘 들어줬어요. 참사 이후에는 아이가 없는데 여전히 노래가 흘러나오는 게 싫었어요. 한동안 엄청 울었죠. 4·16합창단에서 〈너〉 악보를 받았을 때 못 불렀어요. ‘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 알아듣던 너. 세 살 적 기차 창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던 너. (중략) 열넷 은행잎을 주워 선물이라고 내밀던 너. 열여섯 방문을 닫고 음악을 크게 틀던 너.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가사 내용이에요. 다들 그랬을 거예요. 한 달은 가사만 보고 한 달은 듣기만 했죠. 그렇게 노래를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변함없이 함께해준 시민 합창단원들 덕분에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저를 버리지 않는 분들처럼 느껴져요.
준우 동생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지금도 그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 있어요. 매년 4월16일이 되면 언론에서 배가 뒤집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저희는 장례 치른 뒤부터 그 장면을 못 봐요. 준우가 세월호 배 안에서 마지막까지 몸부림쳤다는 걸 발견 당시 손가락을 보고 알았어요. 녹슨 세월호 배를 보기 힘든 이유예요. 착한 준우를 그렇게 보냈다는 게 지금도 힘들어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10년 전과 똑같이 미안한 마음이에요.
간담회에서 만난 시민이 미디어가 아닌 실제로 유가족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어요. 잘 웃고 밥도 잘 먹는 제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자기 주도적인 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저희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세대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저는 준우가 아직 어딘가 살아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너는 아직 어리고 똑똑해서 극락세계에 갈 때가 안 됐다고, 그러니 죽음을 즐기고 있으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해가 안 되시죠. 그런데 저만의 세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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