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을 언급했다.ⓒ평양 조선중앙통신
1월1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들을 언급했다.ⓒ평양 조선중앙통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남북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 관계 정의다. 굴곡은 있었지만 1991년 12월 탈냉전의 문턱에서 남북이 합의한 대로 30여 년간 이어졌다. 이제 신냉전의 파고 속에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12월26~30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는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라고 선언했다. 남북이 그렇게 부인하던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가 된 것도 모자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전원회의 보도문에는 지난해 긴박한 정세 속에 북한이 가졌을 울분이 한가득 적혀 있다.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반공화국 대결 책동’이 한 해 내내 계속됐다는 것이다.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정권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미국 대통령의 협박도 있었고 ‘미국과 남조선 놈들의 반공화국 핵대결 강령’인 이른바 ‘워싱톤선언’ ‘핵협의그루빠’, 3각 공조체제 강화, 남반부에 초대형 전략핵잠수함, 핵전략폭격기, 초대형 핵동력항공모함 타격집단이 최초이거나 때없이 들이밀어 남조선은 이제 ‘미국의 전방 군사기지, 핵병기창’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가 북한이 느끼기엔 ‘반공화국 책동’의 정점이었을 수 있다. 북한이 먼저 핵공격을 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미국의 핵 반격에 남쪽의 재래식 전력이 동조하고 나서는 것이니 말이다. 북한은 사흘 만인 12월18일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8호의 네 번째 시험발사로 응수했다.

동족 관계 부정으로 핵 안전핀 뽑혀

‘핵대결’ 와중에 열린 당 전원회의가 남북 관계를 좋게 평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동족 관계도 동질 관계’도 아니라고까지 한 것은 좀 생뚱맞아 보인다. 동족 관계는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되는 게 아니다. 동족 관계를 부정하다 보니 통일정책과 대남 관련 기구, 심지어 ‘우리민족끼리’니 ‘삼천리금수강산’ 같은 용어에까지 철퇴를 가했다. 북한이 열거한 ‘반공화국 핵대결 책동’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아하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동족 관계 부정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간에도 북한이 남한을 주적 또는 적대적 관계로 칭한 경우는 많았다. 그렇지만 동족 관계까지 건드리지는 못했다. 동족을 건드리면 통일 문제에 손을 대야 하고 선대의 유훈을 내쳐야 한다. 선대와의 탯줄을 끊고 홀로 서는 것을 의미하므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1월24일 북한은 신형 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 첫 시험발사를 했다.ⓒEPA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1월24일 북한은 신형 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 첫 시험발사를 했다.ⓒEPA

그렇지만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었을 터이다. 동족 관계가 바로 대남 전술핵 전략의 최대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2016년 2월5일자 〈노동신문〉 논평에서 “미 국방성이 며칠 전 서울 상공에서 핵폭탄이 폭발하는 경우를 가상한 모의시험 동영상을 공개했었다”라며 “미국이 우리가 남조선을 대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서 그 동영상을 내돌린 것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라고 했다. 이어서 “우리가 핵 억제력을 보유한 것은 민족의 머리 위에 핵폭탄을 들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동포인 남조선 인민들에게 핵폭탄을 떨구겠다고 위협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북한은 이 같은 얘기를 틈날 때마다 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핵이 남한을 전쟁에서 지켜준다고까지 했다.

북한이 전술핵을 개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하노이 회담 실패 후 단거리 미사일 훈련에 집중할 때부터였다. 2021년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에 ‘핵무기의 소형화로 전술무기화’, 즉 전술핵이 올라오면서 현실이 됐다. 일본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2022년 8월10일자 〈동아일보〉 칼럼에서 ‘북한의 특이하고 위험한 핵 독트린’의 출발점으로 바로 이 장면을 지적한다.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까지만 해도 북한 핵은 오로지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제 주한 미군뿐 아니라 동족인 한국군까지 겨냥한 전술핵이 등장했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북한도 이 점이 부담스러웠으리라. 2021년 10월11일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 3대혁명전시관에서 처음 열린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기념 연설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분명코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 유지되던 문재인 정부 시절 얘기다.

2022년 9월23일 오전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와 이지스 구축함 베리함(사진 뒤)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연합뉴스
2022년 9월23일 오전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와 이지스 구축함 베리함(사진 뒤)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등장과 함께 ‘전쟁주적론’은 ‘남한주적론’으로 바뀌었다. 2023년 1월1일 발표한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도에서 남한은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이 되어 있었다. 남한을 ‘대한민국’이라고 칭하며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주적론’은 동족 관계라는 벽에 부딪혀 있었다. 이제 선대의 유훈까지 저버리며 마지막 걸림돌을 치워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에는 걸림돌이지만 남한엔 마지막 안전핀이 뽑힌 것이다. ‘임박한 위협’이다.

전술핵 전략 청사진, 파키스탄 모델

8차 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저위력 핵탄두에 대한 국제적 추세를 반영한 측면이 있었다. 2018년 미국이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신형 저위력 핵무기를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개발할 것을 선언하자 러시아의 핵 독트린이 바뀌었다. 2020년부터 통상무기 공격에 전술핵으로 반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며 어정쩡했던 북한의 태도도 변했다. 2022년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윤석열 정부 등장을 계기로 남쪽도 북한 핵공격의 대상이라는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부담을 덜어줬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남한과의 통상 전력 격차를 더욱 실감시켜 전술핵 전략의 실질적 동기를 제공했다.

2022년 4월부터 본격화한 북한의 전술핵 관련 움직임은 청사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이해 4월4일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남조선이 우리들과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핵전투 무력이 동원돼 무서운 공격이 가해질 것”이라며 처음으로 한국군도 북한 핵의 공격 대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의 핵은 전쟁 억제라는 고유의 사명 외에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을 막기 위한 ‘제2의 사명’을 갖고 있다고 밝혀 핵 사용 범위를 비군사적 분야로 넓혔다.

전방부대에 대한 전술핵 배치, 타격 목표 설정, 훈련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2022년 4월17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 참관 소식을 전하며 전선 장거리 포병부대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같은 해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모두 일곱 차례 미사일 발사가 이뤄졌는데, 전술핵 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킬 체인(Kill Chain·선제타격 체체)에 대응하기 위해 내륙 저수지에서 SLBM을 발사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노동신문〉은 “해당 군사훈련은 미 해군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핵동력 잠수함을 비롯한 연합군 대규모 해상전력이 조선반도 수역에서 위험한 군사연습을 하는 시기에 진행됐다”라고 밝혀 한·미 군사훈련 시기에는 대응을 피하던 예전의 북한이 아님을 보여줬다. 그 뒤 3월과 8월의 한·미 군사훈련 시기에 북한도 단거리 탄도탄이나 순항미사일을 쏘면서 맞대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 전술핵 관련 움직임의 청사진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파키스탄 모델이다. 파키스탄은 북한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핵기술을 전수했고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제공했다. 전술핵으로 우월한 재래식 전력에 대처하려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비슷하다.

2022년 3월23일 파키스탄 군이 국경일 열병식에서 샤힌-III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AP Photo
2022년 3월23일 파키스탄 군이 국경일 열병식에서 샤힌-III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AP Photo

파키스탄은 샤힌(Shaheen)-Ⅲ와 같은 인도 전역을 겨냥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함께 바부르(Babur)-Ⅲ라는 잠수함발사 순항미사일 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인도가 파키스탄 국경을 48~72시간 내에 8~9개 여단과 함께 대규모 재래식 군사작전으로 돌파하는 콜드스타트(Cold Start) 전략을 추진하자 나스르(Nasr)라는 전술핵무기를 2013년부터 실전 배치했다. 나스르는 위력 0.5~5kt에 사거리 60~70㎞에 이르는 직경 30㎝ 이하의 고체연료 미사일이다(‘북한 핵전략 변화의 쟁점과 과제: 파키스탄의 전범위 억제와 비교’에서 인용).

파키스탄 모델의 키워드로 ‘비대칭 확전’ ‘전범위 억제’ ‘안정-불안정성의 역설’을 들 수 있다. ‘비대칭 확전’은 재래식 공격에 핵무기 선제사용을 불사하는 것을 말한다. ‘전범위 억제(Full Spectrum Deterrence)’는 인도의 거의 모든 지점을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전략무기와 전술핵무기 체계를 동시 운용하는 것으로, 북한 역시 미국 본토 타격용 전략핵무기와 한반도와 그 주변 전장용 전술핵무기를 모두 갖추려 한다.

전술핵, 국지 분쟁의 상관성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안정-불안정성의 역설’이다. 핵보유국 간에 직접적 전쟁 가능성은 줄어들지만 핵전력을 배경으로 저강도 분쟁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카길 전쟁이 대표적이다. 1999년 5~7월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파키스탄 군이 카슈미르의 카길을 점거한 것이 발단이었다. 양국 모두 경쟁적으로 핵 개발을 실시한 지 1년 만에 전쟁이 일어나 핵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세계 각국이 우려했다. 당시 파키스탄의 도발은 핵무장에 따른 지나친 과신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핵무기를 갖고 있으니 국지전 정도 일으킨다고 인도가 함부로 맞설 수 없으리라 오판했다는 것이다. 또 전쟁이 일어나도 우방과 국제사회가 ‘핵전쟁 예방’이라는 명분으로 적극 개입하면 인도로부터 점령을 용인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 침략자로 낙인 찍히고 전쟁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 1월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데 따라 고쳐야 할 것들을 지적하면서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주권 행사 영역과 관련해 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어야 하며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번 회의는 오는 9월 제14기 제11차 회의가 될 것이다. 남한이 고수해온 북방한계선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 내지 서해경비계선 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9월이면 미국 대선이 임박한 시기다. 바이든과 트럼프 양 당사자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주변국 움직임도 분주할 것이다. 중국이 타이완해협에서 모종의 군사행동을 도모하면서 북한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9월29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도쿄나 워싱턴으로 갈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김 장관이 밝힌 정부의 입장에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대화 의지를 밝혀온 북·일 양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주목된다. 30여 년 전인 김영삼 정부 시절 어떻게 하든 미·일의 대북 접근을 견제하려던 한국 정부와, 미·일과 통하면서 한국 정부를 봉쇄하려던 북한의 외교 혈투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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