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15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 2차 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은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제공
2023년 12월15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 2차 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은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제공

너무 갑작스러운 얘기라 좀 의아하다. 2023년 12월1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회의 얘기다. 2023년 7월 서울에서 1차 회의 겸 출범회의가 열리고 이번이 두 번째 회의다. 한국 측 수석대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따르면, 2024년 6월 3차 회의를 끝으로 조기에 종료하기로 했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그는 “세 번째 NCG를 내년 6월쯤 열 수 있다면 준비형 임무를 띤 NCG는 끝난다. 이후 완성된 확장억제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NCG가 운영될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NCG 운영’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한·미 양국 정상의 ‘워싱턴 선언’ 채택 1년여 만인 2024년 6월께 NCG 회의가 마무리된다는 점은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

NCG는 2023년 4월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의 핵심 결과물이었다. 두 정상은 ‘확장억제 강화와 핵 및 전략 기획 토의, 비확산 체제에 대한 북한 위협 관리’를 목표로 NCG 창설에 합의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워싱턴 선언’을 (핵무기 시대의) ‘제2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한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언론 기고문(‘워싱턴 선언이 거둔 성과’ 〈한국일보〉 2023년 5월2일자)에서 워싱턴 선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한·미 핵협의그룹을 발족하기로 했다는 것이라며 “핵억제(핵우산)만을 별도로 다룬 한·미 협의체를 발족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정부도 워싱턴 선언의 성과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나토의 핵기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NPG)보다 더 실효적이다”라며 NCG를 띄웠다. NPG가 나토 31개 동맹국들 사이의 다자 협의체인 데 비해 NCG는 한·미 간 양자 협의체라는 이유에서다. ‘한·미 간에 핵협의체인 NCG를 신설한 것은 올해 70년을 맞는 한·미 동맹사에 큰 획을 긋는 사안’이라고 평가한 전문가도 있었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출범한 지 1년 만에 겨우 세 차례 회의를 하고 마무리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3년 7월18일 서울에서 열린 NCG 출범회의(1차 회의)는 이 회의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연합 억제 및 대응 태세를 제고하는 메커니즘으로 지속 운영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한·미 양측은 당시 “NCG가 핵 및 전략기획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응 관련 지침을 포함한 양자 간 접근법을 논의하고 진전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일본도 참여하는 3자 협의체로 확대하느냐가 논점이 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 않지만 먼저 (한·미 간에) 궤도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2차 회의 한 달 전인 11월1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도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NCG의 성과를 평가’하면서 “NCG가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양자 협의체로서 연합방위태세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재선 가능성이 중단의 이유?

주최 측 주변에서 거론됐다는 조기 마무리 사유가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략자산 전개에 부정적인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관련 논의를 서둘러 확장억제 공약을 ‘불가역적’ 수준으로 제도화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맨 처음 NCG에 대한 논의에 거품이 좀 끼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NCG가 일정 부분 한·미 간 핵정책 기획을 위해 창설된 것은 맞지만 나토의 NPG처럼 상설협의체라기보다는 한시적 성격을 띤 기구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설기구를 염두에 뒀지만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한·미 관계에서 NCG가 떠오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2023년 1월11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된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에 대한 확고한 KMPR(대량응징보복)이 뭐냐. 바로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와 미국 핵 자산의 운용에서 공동 기획과 공동 실행이라고 하는, 핵 자산 운용에서의 긴밀한 협력이다”라면서 “물론 이제 더 문제가 심각해져서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라고 폭탄 발언을 했다. 현직 대통령이 자체 핵 보유를 언급한 최초의 사례가 될 법한 이 발언에 앞서, ‘미 핵 자산의 공동 기획 공동 실행’을 둘러싸고 2023년 초부터 한·미 양 정상 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 윤 대통령이 2023년 1월2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실효적 확장억제를 위해 미국과 핵에 대한 ‘공동 기획, 공동 연습’ 개념을 논의하고 있으며 미국도 이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다. 핵무기는 미국의 것이지만, 계획과 정보 공유, 연습과 훈련은 한·미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한 사실이 공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다음 날 기자들의 질문에 “노!”라며 이를 짧게 부인해버렸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다시 위의 발언(1월11일)으로 응수한 모양새가 됐다.

2023년 4월26일(현지 시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UPI
2023년 4월26일(현지 시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UPI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 내 핵무장 목소리가 커지는 와중에 한국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으로 핵 보유 얘기가 나오자 미국 측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헤리티지재단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인들은 ‘나토에는 핵기획그룹이 있고 5개 나토 국가들은 전투기로 미국의 핵무기를 투하하는데 한국은 왜 못하느냐’고 묻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2023년 초에 발표한 ‘신뢰의 위기:아시아 내 미국 확장억제 강화의 필요성’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고 미국이 확장억제 공약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2022년 10월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미사일방어 검토보고서(MDR)’는 미국의 ‘핵 동맹’인 유럽과 그렇지 않은 인도태평양 국가 간에 확장억제력 대응 방식에서 차이를 두고 있다. 유럽에 대해서는 ‘확장억제력 강화와 핵 공유 체제의 공고화’를 언급했다. 반면 인도태평양 국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국 확장억제력의 신뢰성과 실효성 강화’를 강조했다. ‘핵 공유가 아닌 동맹 및 우방국과의 긴밀한 협의체계 구축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술핵을 보유해 미국과 핵 동맹인 나토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 확장억제력 관련 협의의 틀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핵협의그룹(NCG)이 뭔가. 기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나토식의 ‘핵 공동 기획’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 여기에 이해를 표시하는 미국 내 여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되 나토식의 NPG 수준까지 이르지 않는 협의 채널이라 할 것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국내 언론에 속내를 밝힌 바에 따르면, 한·미 간 협의체인 NCG와 나토식 핵 공유 체제 NPG는 명칭부터 차이가 있다. NCG는 한·미 간 숙의(delibera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미국이 만약 일어날 수 있는 중대한 사태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구상하는지에 관한 한국의 이해를 돕고 그런 ‘숙의’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반면 나토는 배치된 전술핵무기의 운용 과정을 뜻하는 ‘planning(계획)’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핵 운영 계획(planning), 의사결정(decision-making), 사용 시 핵무기 운반 과정(delivery) 등에 대한 동맹 간의 협의 체제다(〈연합뉴스〉 2023년 4월26일자).

그렇다 해도 NCG에는 분명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핵 공동 기획 기능이 존재한다. 일방적으로 미국 구상에 이해만 표시하는 숙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 ‘핵 공동 기획’이란 ‘핵 위협 상황을 가정해 억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과 비핵 옵션을 선택하고 작동할지 사전에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기존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는 상시 소통하는 채널이 아니다. 미국이 한반도에 확장억제 전력을 전개할 때 한국군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대부분 전략자산 전개는 한국 방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자산 전개 프로그램과 계획된 훈련 일정에 따라 들어오는 게 상당수라고 한다.

바이든 정부의 ‘통합억지’ 전략

한·미 핵협의그룹은 기존 양국 확장억제 협의체보다 신속하고 상시적인 협의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미국 나토 간의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보다 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핵 공동 기획에 참여한다는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니다. 바로 바이든 정부의 ‘통합억지(Integrated Deterrence)’ 전략 덕분이다. 2023년 10월 미국 국방부는 ‘국방전략서(NDS)’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통합억지는 ‘기존 군사적 수단의 확장억제에 미국 정부의 다른 부처나 기관은 물론이고 동맹국이나 협력국과 함께 쓰는 경제적 제재, 수출통제, 외교 조처 등 외교·정보·경제적 수단을 추가해 적 또는 경쟁국이 핵·미사일을 쓰지 못하도록 미리 막는 전략’으로 정리돼 있다. 특히 동맹국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핵전력에 동맹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해 운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통합억지 전략이 구축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2022년 12월16일 발표된 일본 안보 3대 문서에서 통합억지 수용을 밝힌 바 있다. 한·미 간 ‘워싱턴 선언’ 역시 이 통합억지 전략이 핵심이다. 즉 “한·미 동맹은 핵억제에 관해 보다 심화되고 협력적인 정책 결정에 관여할 것을 약속하며, 이는 한국과 지역에서 증가하는 핵 위협에 대한 소통 및 정보공유 증진을 통하는 것을 포함한다”라면서 그것을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NCG) 설립을 선언’하고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한다’고 돼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해 NCG는 미국의 통합억지 전략에 따라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 간 ‘핵 전략 기획·운용’ 관련 가이드라인(지침)을 도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는 협의 채널인 셈이다. 나토가 전술핵을 레버리지로 미국과의 핵 공동 기획·운용에 참여하는 것이 NPG라면, NCG는 재래식 전력을 매개로 관련된 미국의 핵 운용에 참여하는 협의 채널인 셈이다.

2023년 10월20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 연합 도하 훈련에서 K1E1 전차가 부교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20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 연합 도하 훈련에서 K1E1 전차가 부교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에서는 이미 체코, 덴마크, 그리스, 헝가리,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7개국이 주기적으로 미국 폭격기를 엄호하는 연습에 참여해 재래식 항공 지원 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미 간에는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이 별개로 움직였는데, 앞으로 미국의 핵 탑재 전략자산과 한국군 재래식 자산을 통합해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연합훈련 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NCG가 바로 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미는 2023년 7월18일 서울에서 열린 1차 회의에서 △핵 기획 및 태세 검토 △미국 핵 자산과 한국 비핵 자산의 실제 운용 계획 구체화 △미국 핵전략 자산의 정례적 한국 배치·이동 등 5개 분야 행동계획에 합의하며 ‘일체형 확장억제’ 가동에 필요한 조치들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5개월 만의 후속 논의인 이번 2차 회의에서는 이러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핵 전략 기획·운용 관련 가이드라인(지침)을 구체적으로 협의해 2024년 중반까지 완성하고, 2024년 8월 자유의 방패(UFS) 훈련 등 한·미 연합훈련에 핵 작전 시나리오를 포함할 계획이다. 한국군의 재래식 무기와 미국의 핵무기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계획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