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3일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Photo
9월13일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Photo

보스토치니 북·러 정상회담(9월13일)에 대해 국내와 미국의 온도차가 느껴진다. 미국 측 전문가들은 지난 7월12일 이뤄진 고체연료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 18호의 배후에 러시아의 기술지원이 있었다는 의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 따라서 보스토치니 이후 무엇이 더 튀어나올지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반면 국내 일부에서는 옛 소련 시절 이래 러시아가 동맹국에조차 첨단 군사기술을 넘겨준 적이 없다며 다소 느긋해한다.

러시아가 동맹에조차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한 적 없다는 것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최정점에 달하던 시기 소련으로부터 핵·미사일 통상 무기체계와 기술지원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소련군 내부에서 한·미·일의 군사적 제휴로 인한 동북아 위기감을, 북한을 극동의 전초기지로 삼아 돌파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군비 근대화로 한반도 군사 밸런스가 남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주요 고려 사항이었다. 북한 측의 거듭된 군사원조 요구에 응하지 않던 크렘린이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 이때 그 유명한 영변의 5MW 원자로가 완공됐다. 1986년의 일이다. 당시 소련의 미사일 기술지원 덕에 북한 미사일 기술이 그 뒤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했다. T-62 전차의 라이선스 생산도 이때 이뤄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통상 병기 수준을 환골탈태시켜 오늘날과 같은 꼴을 갖추게 하는 통 큰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임에도 푸틴이 극동까지 직접 날아온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러 관계는 최악의 상태다.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한·미·일 간 군사협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대중국 억지를 위한 군사력 현시 차원에서 전략자산을 과도하게 전개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10월 전략문서 발표를 계기로 12월의 일본 안보 3문서와 적기지 공격권 허용, 미·일, 한·미 정상회담에 이은 8월18일의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대중 신냉전 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런데 당사자인 중국은 가만히 있고 난데없이 러시아가 치고 나온 형국이다.

제이크 설리번 등 바이든 정부의 젊은 책사들이 중국에 신경 쓰다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간과한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극동은 먼 거리다. 따라서 러시아 수뇌부는 극동의 정세가 불안정해져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9월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영역을 북반구 동쪽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한·미·일 3국 연합체 등 소규모 군사·정치 동맹을 만들고 있다”라고 비판해 최근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을 보여줬다.

북한 입장에서는 또 한번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러시아의 도움으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출 절호의 기회다. 북한은 과연 러시아로부터 무엇을 받으려 할까.

7월13일 북한이 고체연료 ICBM 화성18호를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7월13일 북한이 고체연료 ICBM 화성18호를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의 핵은 오로지 대미용이었다”

2018년의 북·미 대화는 2017년까지 핵무력을 완성하고 미국과 담판을 벌이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27차례 친서가 교환됐다. 로버트 칼린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이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2021년 8월호)에서 전문 분석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일관되게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상응하는 미국의 행동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에 대한 답은 없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만 반복했다. 칼린 분석관은 “친서 교환이 다른 어떤 외교 활동보다 교섭 결렬의 원인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1차 북·미 담판을 거치며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대미 요구사항 관철이 힘들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의 국방력 강화 5개년계획에 열거된 12개 첨단무기다. 요약하면 ①다탄두 ②극초음속 ③핵잠수함 ④각종 전자무기 ⑤무인 타격 장비 ⑥정찰 탐지 수단 ⑦군사 정찰위성 ⑧핵무기의 소형화로 전술무기화 ⑨초대형 핵탄두 ⑩1만5000㎞ 사정권 안 명중률 제고 ⑪수중 및 지상 고체엔진 대륙간 탄도로켓 ⑫수중 발사 핵전략무기다.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타격할 무기들 사이에 ‘핵무기의 소형화로 전술무기화’, 즉 전술핵무기에 대한 것이 눈에 띈다. 일본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는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은 오로지 대미용이었다”라고 지적했다(〈동아일보〉 2022년 8월10일자 ‘북한의 특이하고 위험한 핵 독트린’). 전술핵은 주한미군도 겨냥하지만 한국군도 겨냥한다. 8차 당대회 때까지만 해도 전술핵에 대한 언급은 미국과 러시아의 핵 독트린 변화를 반영한 측면이 강했다.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8년 ‘핵태세 검토 보고서’에 신형 저위력 핵무기가 등장했다. 과거 억지의 수단으로만 인식되던 핵무기가 전장에서 사용 가능한 무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핵 독트린 변화를 반영해 2020년 6월2일 만들어진 ‘러시아연방정부의 핵억제를 위한 핵정책 기본원칙’에서는 핵 사용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핵무기 지휘통제 시설에 대한 공격 임박, 적국의 재래식 무기가 러시아의 현행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례 등에도 핵을 쓸 수 있게 됐다. ‘군사행동의 악화(escalation of military actions)’라 하여 다른 국가의 개입으로 전장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핵을 쓸 수 있게 됐다. 이를 ‘에스컬레이션 억지’라고도 하는데, 북한의 변화된 핵 독트린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반도 전쟁에 미군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핵 사용도 ‘에스컬레이션 억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2022년 들어 북한의 핵 독트린 변화에 기름을 들이붓는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는 북한에 충격적이었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거의 대부분 러시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계 최강인 줄 알았던 러시아 재래식 전투력이 급조된 서방 무기 지원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에 판판이 깨진 것이다. 그나마 눈여겨볼 것은 2월24일 개전 연설에서 행한 푸틴의 핵 위협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가뜩이나 재래식 전력에서 한·미 연합군에 밀려 핵개발에 올인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핵무기의 중요성이 완전히 입증됐다. 미국 본토에 대한 ICBM의 타격력이 확실하면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나 일본의 무기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전자는 ICBM의 실전성과 생산성을 확보하는 길이고, 후자는 러시아의 핵 독트린을 본뜬 북한판 전술핵 사용 독트린과 기술개발의 길이다.

북한으로서는 윤석열 정부가 오히려 고마울 수 있다. 윤 정부의 대북 강경 노선을 빌미로 거리낌없이 전술핵 사용을 전제로 한 핵 독트린의 명분을 쌓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4일 김여정 담화가 그 포문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40일 되는 시점에 김여정은 “남조선이 우리들과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전쟁 초기에 주도권을 장악하고…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전투무력이 동원되게 된다”라고 말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대남 전쟁에서 핵무기 선제 사용을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3월28일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
3월28일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이어받아 4월25일 저녁 열린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 유명한 ‘제2의 사명’ 연설을 한다.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에는 영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 비군사적 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 굉장히 포괄적인 표현이다. 미국에 이어 러시아가 낮춰버린 핵무기 사용의 허들을 순발력 있게 낚아채 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을 메운 것이다.

북한의 핵 독트린은 이후 질주를 거듭한다. 지난해 9월8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5가지 조건으로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공격 감행 혹은 임박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 공격 감행 및 임박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감행 혹은 임박 △유사시 전쟁 주도권 장악 등 작전상 필요 △국가 존립, 인민 생명에 파국적 위기 초래 등을 들었다.

결정적 카드 쥔 러시아의 선택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 대량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나라의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선언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엇을 달라고 할까. 고체연료를 베이스로 하는 화성18호 미사일이 북한 측 주장대로 성능을 갖추었다면 큰 산을 하나 넘은 것은 분명하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에 비해 연료 주입 시간을 줄여 생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화성18호의 현재 길이는 25m, 9축 18륜의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한다. 북한 도로 여건상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해 실전성이 떨어진다.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가 되려면 중국의 동풍(둥펑)-31D처럼 14~15m의 콤팩트한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이는 미사일 엔진 문제가 걸려 있어 북한 기술로는 어렵다.

전술핵은 탄두의 소형 경량화가 더 진전돼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나 일본의 무기 지원을 차단하고 한국군과의 재래식 군사력 격차를 해소하려면 표준형 핵탄두를 만들어 KN-23, 24, 25와 사정거리 110㎞의 신형 전술유도병기,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등 투발 수단에 레고처럼 자유자재로 끼워 쓸 수 있어야 한다. 탄두 중량 200㎏대가 되어야 하는데 3월23일 공개한 ‘화산포31’은 직경 50㎝, 길이 90㎝, 중량 500㎏대다. 러시아가 기술을 준다면 모를까 아니면 7차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시의 대미 억지력으로 충분하려면 미국 본토에 확실하게 도달할 수 있는 핵무기 300개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2023년 1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추정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50~70개분의 핵물질을 보유 중이다. 이 중 30개 정도는 핵탄두로 만들었다. 매년 6개분의 핵물질 생산이 가능해 2030년까지 80~90개가 될 전망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동결된 영변 50MW 원자로가 가동되면 연간 11개분의 플루토늄 증산이 가능해진다. 러시아가 북한에 플루토늄을 넘겨줄 가능성도 대두했다. 지난 9월21일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옛 소련 시절 생산해 보유 중인 플루토늄 가운데 100~1000㎏을 북한에 건네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해 충격을 안겨줬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핵무기 기하급수적 증가’의 가장 빠른 길이다.

7월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전승절 행사 참석차 방북한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7월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전승절 행사 참석차 방북한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결국은 러시아가 결정적 카드를 쥔 셈이다. 러시아의 선택은 무엇일까. 푸틴 대통령과 쇼이구 국방장관 발언에 그 힌트가 들어 있다. 푸틴 대통령은 9월13일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그 때문에 이곳에 왔다”라며 지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9월15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시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서는 “한반도 상황과 관련한 어떤 것도 위반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의도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무기 거래에 대해 “물론 이웃 국가로서 공개되거나 발표되어서 안 되는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라며 시인성 발언을 한 데 대해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위성 관련 기술은 한편으론 우주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되고 또 한편으로는 한반도에 증원되는 미군 병력이나 무기 움직임을 볼 수 있는 군사정찰 기능을 수행한다. 전형적인 이중 용도 기술인 셈인데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나름 남북을 배려한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한 것은 지난 7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과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에 대해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인은 한국과 잘 지내고 싶으니 한국도 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다. 9월16일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쇼이구 국방장관이 또 한번 퍼포먼스를 했다. 러시아 전략폭격기를 설명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일본까지 갔다 올 수 있다”라고 덧붙인 것이다. 한·미·일이 더 나아가면 러시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다.

북·러 외무장관 회담에 이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 그리고 북·중·러 해상훈련까지. 보스토치니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 심상치 않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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