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8일 제시 린가드가 FC 서울 공식 입단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2월8일 제시 린가드가 FC 서울 공식 입단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축구는 글로벌 콘텐츠다. 그 위상은 일개 스포츠 수준을 넘어섰다.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에는 유엔 가입국보다 많은 211개 회원국이 있다. 매주 지구상 어딘가에서 치열한 경기가 벌어진다. 그만큼 선수가 뛸 수 있는 무대가 많다. 최고의 선수는 유럽 ‘빅5(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 리그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기량을 발휘한다.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은 유럽의 중심을 벗어난다. 튀르키예나 러시아, 중국과 중동 등지로 향한다. 지난해부터는 사우디아라비아행 열풍이 일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 등이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프로리그로 갔다. 주된 이유는 역시 돈이다. 슈퍼스타라면 연봉 1억 유로(1300억원)를 거뜬히 넘기는 수준이다.

일본에도 슈퍼스타 영입 사례가 있다. 2018년,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한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해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비셀 고베는 연봉 300억원을 5년6개월 동안 지급했다. 비셀 고베 모기업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 스타 영입에 강한 의욕을 보인 덕이다. 전성기에서 내려온 경기력에도 이니에스타는 ‘클래스’를 선보였다. 그를 중심으로 한 흥행몰이로 비셀 고베는 단숨에 J리그 최고 인기 클럽에 등극했다. 마무리도 이상적이었다. 2023년 구단 역사상 최초의 J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이니에스타는 팀과 작별했다.

한국은 주변국의 자금력과 슈퍼스타의 활약상을 부러워했다. 2023년 12월 기준 K리그 1(1부 리그) 최고 연봉자는 15억5000만원을 받는 세징야(대구 FC)이다. 최대 인건비를 지급하는 구단은 전북 현대(198억원)였다. 한물간 슈퍼스타마저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주고 데려와야 하는 현실은 K리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그런데 2024년, 예상치 못한 대형 스타가 K리그에 입성했다. 주인공은 제시 린가드. 불과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던 공격수다. 2월2일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린가드의 FC 서울 입단 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했다. 엿새 뒤인 2월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입단식과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럽 축구 이적 소식을 다루는 주요 매체와 유명 기자들이 일주일간 꾸준히 린가드의 한국행을 보도했다.

국내외 축구계가 함께 놀랐다. 국내에서는 ‘여길 왜(대체 어떻게) 와?’, 유럽에서는 ‘거길 왜 가(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린가드는 2021년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뛰며 4강 진출을 견인했다. 노팅엄 포레스트 FC 소속으로 뛴 2022-2023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부상 여파로 준주전에 그쳤지만, 최상위 레벨(1부 리그,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출전 기록만 267경기 45골 29도움에 달한다. A매치 기록은 32경기 6골 5도움이다.

1992년생으로 손흥민과 동갑인 린가드는 빅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스 시절부터 애지중지 키운 특급 유망주다. 5년 전만 해도 러시아월드컵에서 맹활약해 이적료 4000만 유로(약 583억원)까지 평가받았다. 2021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임대 시절이 커리어에서 마지막으로 빛난 순간이다. 지난 2년 동안의 활약상이 과거 명성에 미치지 못해도 여전히 유럽 주요 클럽들이 노릴 수준의 선수다. 실제 최근까지 유럽 중위권 리그와 중동 구단들이 영입을 제안했다.

프로축구 FC 서울 입단을 위해 2월5일 입국한 제시 린가드. ⓒ연합뉴스
프로축구 FC 서울 입단을 위해 2월5일 입국한 제시 린가드. ⓒ연합뉴스

기존 연봉 10분의 1 수준 택한 까닭은?

K리그는 금전 면에서 매력적인 무대가 아니다. 노팅엄 포레스트 FC에서 받던 린가드의 연봉은 130억원 수준이다. FC 서울은 계약 연봉 조건을 비공개에 부쳤지만, 보도에 따르면 15억원쯤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연봉의 10분의 1 수준이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조차 “처음에 ‘린가드를 영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구단 얘기에 ‘장난하지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AFC 시절 린가드와 맞붙었던 FC 서울 기성용도 “K리그를 택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라며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린가드는 튀르키예의 명문 구단 베식타시 JK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FC 서울을 택했다. 베식타시 JK는 연봉 약 40억원을 제안했다.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한국 무대에 온 진의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린가드는 선수 생활 외에도 패션 브랜드, 레스토랑, e스포츠단을 운영 중인데,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려 한다는 분석도 국내외에서 나온다. 세계경제의 새로운 허브로 부상한 한국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린가드는 이 같은 추측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축구와 사업은 별개다. 사업은 나중에 할 수 있다. 지금은 축구가 최우선이다. 그 부분에서 가장 진정성을 보여준 팀이어서 FC 서울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단 관계자나 이번 이적을 성사시킨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린가드는 축구선수로서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으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노팅엄과 계약이 만료된 뒤 어렵지 않게 새로운 둥지를 찾으리라 생각했던 그는 7개월가량 무적(無籍) 신분이었다. 에이전트의 실수와 그의 기량에 대한 팀들의 의구심이 겹쳤다. FC 서울 관계자는 “협상을 하는 내내 (린가드) 선수는 축구에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몸 상태는 7개월을 쉰 선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관리돼 있었다. 그래서 신뢰를 하고 계약을 맺게 됐다”라고 말했다.

축구선수로 자아를 되찾길 원하는 린가드의 입단은 일단 리그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린가드는 국내 10대, 20대 축구 팬들에게 지명도가 높다. 선수로서의 기량뿐만 아니라 골을 넣은 뒤 피리를 불며 춤을 추는 특유의 동작은 어린 축구 팬이나 선수들이 한 번씩은 따라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 팬들이 린가드를 보기 위해 홈과 원정을 구분하지 않고 K리그 경기장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FC 서울뿐만 아니라 홈에서 린가드를 상대할 준비를 하는 나머지 팀들도 ‘낙수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2023년 K리그는 크게 흥행했다. 1, 2부 리그를 합쳐 300만 관중을 돌파했고 1부 리그는 경기당 평균 1만733명을 모았다. 이 훈풍이 린가드 열풍을 타고 더 확장할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수도 프리미엄’을 가진 FC 서울은 지난해 축구 팬으로 유명한 인기 가수 임영웅을 초대하는 등 다양한 행사까지 기획해 한 시즌 43만 관중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린가드에 대한 기대감은 이 수치를 더 증폭시키고 리그의 흥행 규모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K리그의 봄을 꿈꾸게 만드는 요소다.

다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린가드의 경기력이다. 과거 국내 타 종목에도 상당한 인지도의 외국인 선수들이 상륙했지만, 뚜껑을 열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실망감을 준 경우가 있다. FC 서울에 이미 전례가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에서 뛴 키키 무삼파를 2008년 영입했지만, 기량 미달로 2개월 만에 방출한 경험이 있다. 그 때문인지 린가드 영입 과정에서는 스카우터와 피지컬 전문가를 영국으로 파견해 이틀간 선수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정성을 기울였다. 김기동 감독은 “개막전부터 뛸지 장담할 수 없다”라면서도 “팬들의 기대를 배신해선 안 된다. 충분히 몸을 만들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린가드를) 투입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린가드가 K리그에서 재기에 성공하면 입단 당시처럼 유럽에서도 큰 화제가 될 수 있다. 그와 K리그,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다.

기자명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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