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축구 팬’이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드는 걸 ‘삶의 로망’으로 꿈꾸던 야구 팬이었으나, 어쩌다 축구 팬이 되었다. 새벽녘에 깨어 무심코 해외 축구 경기를 틀어놓고 있다가 관심이 늘었나. 팀·선수 이름을 알게 되니, 기사도 찾아 읽게 되었다. 선덜랜드 AFC라는 영국 팀도 잘 모르는데, 〈죽어도 선덜랜드〉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지역 팀에 열광하는 팬들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다.
FC 서울 경기가 열리는 주말이면 걸어서 한 시간가량 걸리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 간다. 가는 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 축구장에서 맥주 한 캔 마시고 응원하고 박수 치고 오는 걸 ‘올해의 취재’로 삼으려 한다. 얼마 전 조금 쌀쌀했던 날 경기장에 갔을 때는 관객이 2만명 정도 됐다. 지난해에는 1만명 수준이었는데, 두 배로 늘었다. 카타르월드컵 영향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4월8일은 상황이 달랐다. 예매하려 했더니, 한 석 한 석 뜨문뜨문 좌석이 비어 있을 따름이었다. 가수 임영웅이 시축하는 날이었다. 그날 4만5000명이 넘는 관중이 모였다. 나는 ‘오늘은 포기’ 했다. 나중에 하이라이트 영상을 봤더니, 평소 보던 관람객 성비·연령대가 아니었다. 중장년 여성 관객들이 많이 보였다. 임영웅 팬덤이 이 정도인가 싶었다. 잔디 보호를 위해 축구화를 신고서 하프타임 공연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임영웅 현상’이 궁금해졌다.
문화팀의 김영화 기자가 ‘임영웅 현상’을 취재했다. 소속사에 연락했지만, ‘가수 인터뷰도 하지 않고, 소속사도 임영웅 현상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홍보하기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팬덤은 막강했다. 김 기자는 임영웅의 팬들과 대중음악 평론가 등을 취재했다. 팬들이 모이는 카페를 찾고 봉사활동에 동행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었다. 기사 말미에 나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에서 활동하는 한 여성 팬(64세)의 아들이 엄마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단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그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사는 게 행복하더라.”
되짚어보면 〈죽어도 선덜랜드〉는 ‘축구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를 매개로 노동자 도시의 역사와 지역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이번 커버스토리도 잘 만든 ‘문화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 ‘임영웅 현상’ 뒤에 있는 중장년 여성들의 삶이 느껴졌다. 축구장에서 ‘나의 팀’을 위해 박수 쳤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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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축구는 글로벌 콘텐츠다. 그 위상은 일개 스포츠 수준을 넘어섰다.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에는 유엔 가입국보다 많은 211개 회원국이 있다. 매주 지구상 어딘가에서 치열한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