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와 FC서울의 경기 시축자로 나선 가수 임영웅이 하프타임 때 팬들을 위한 깜짝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분 즐길 준비 됐습니까!” 경기장이 콘서트장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가수 임영웅의 외침에 관중석에서 우레 같은 함성소리가 쏟아졌다. 4월8일 임영웅이 시축자로 나선 프로축구 K리그에 이목이 쏠렸다. 이날 모인 관중은 4만5000여 명, 코로나19 이후 최다 관중 기록이다. 40만원짜리 로열석 암표까지 등장했다. 인기가 많은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임영웅은 가요계를 넘어 사회 전반을 들썩이게 하는 이름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을까. 그가 승리를 거머쥐었던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2020년 3월 끝난 점을 감안하면 3년 넘게 화제성이 지속되고 있다. 일시적 돌풍은 넘어섰다. 나훈아나 심수봉 같은 대가수만 오른다는 KBS 단독쇼 무대에 나오는가 하면, 2022년 순위 사이트 ‘아이돌 차트’ 평점 랭킹에서 방탄소년단과 뉴진스를 제치고 연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첫 정규 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는 밀리언셀러다. 모두 임영웅의 인기를 보여준다.

임영웅은 ‘현상’일까? 그렇다면 임영웅 현상은 무엇을 말하나? 〈시사IN〉은 임영웅 팬들과 음악평론가, 트로트 연구자에게 물었다. 임영웅이 현상이라면 그것을 견인하는 중장년·노년층(중장년으로 통칭) 여성 팬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음악사에서 트로트 가수와 중장년 여성이 이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모두 비주류로 간주되었던 주체다. 호기심과 편견 어린 시선을 한 겹 걷어내고 임영웅 현상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오후 4시. 인터뷰 도중에 폰 알람이 일제히 울렸다. ‘스밍(음원 스트리밍)’을 알리는 소리다. 보통 자정부터 한 시간짜리 앨범을 16번 돌리고 나면 오후 4시쯤엔 노래가 멈춘다. 멜론에 접속해 임영웅의 ‘런던 보이’를 클릭하는 오영희씨(78)의 손이 익숙한 듯 보였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스밍이 잘 돌아가고 있나 핸드폰 체크한다니까.” 맞은편에 앉은 박선옥씨(60)도 스마트폰을 열었다. ‘임영웅’이라 적힌 앱 보관 폴더에 지니뮤직부터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 음원 앱이 있다. 모두 잘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서 인터뷰가 재개되었다.

4월12일 오영희씨가 서울 강남구 ‘배영주 교실’을 찾은 건 임영웅 때문이다. ‘배워서 영웅이 주자’의 준말로 스마트폰 활용을 어려워하는 팬들에게 ‘덕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팬카페 영웅시대 정회원이 되는 법부터 아이돌 동영상 앱인 아이돌 플러스에서 임영웅에게 투표하는 법, 인스타그램에서 임영웅 해시태그 남기는 법 등 주제는 매번 다르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박선옥씨도 임영웅의 팬이다. 3년 전에는 유튜브도 낯설었는데 어느덧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임영웅 게시물이 1만 개가 넘는다. 좋아하는 가수를 오래 보려고 동참한 일이다.

달라진 변화를 주변에선 잘 이해하지 못한다. 티켓 한 장에 15만원씩 하는 콘서트를 한 번만 가지, 왜 할 때마다 계속 가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어떻게 아들뻘인 연예인에 빠졌느냐며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다. 팔순을 앞둔 오영희씨는 개의치 않았다. “죽기 전에 영웅이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여든 넘으면 죽어야지 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아흔 넘도록 살아야 해. 임영웅이 내 생명을 연장해준 거나 다름없어.” 코로나19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론 좋아하던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는데 임영웅 노래는 유독 듣고 싶어지는 게 신기했다. 임영웅 노래엔 이별보다 사랑 노래가 많더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렇게 어린 사람이 수많은 할머니, 엄마들을 위로한다니까. 덕분에 나는 ‘이별동’에 살다가 ‘사랑동’으로 이사 온 거지.”

임영웅 ‘덕질 스터디’ 공간인 서울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에서 자원봉사자 김숙영씨(가운데)가 초보 팬을 위해 ‘수업’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덕질 스터디’ 공간이 만들어진 건 〈미스터 트롯〉이 방영되던 2020년 봄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민원’이 빗발쳤다. “자녀들한테 물어보면 왜 굳이 이런 걸 하느냐고 타박하거나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본인들이 해결해버린대요. 여기에 오면 혼자서도 계속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드리거든요(박선옥).” 배영주 교실만이 아니었다. 서울 마포구 ‘참된 덕후교실’,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를 포함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임영웅 카페와 스터디 모임이 생겨났다. 임차료와 관리비는 팬들이 직접 낸다. 전국에 22개 모임이 운영 중이다. 연령대가 높은 트로트 팬덤에서 스마트폰 활용 방법을 서로 알려주는 문화는 전부터 있었지만, ‘덕질 스터디’만은 〈미스터 트롯〉 이후 자리잡은 새로운 문화다.

팬덤을 주도하는 중장년층 여성들

가수 임영웅이 세운 기록은 이처럼 열성적이고 조직된 팬덤 활동의 결과물이다. 임영웅의 노래가 각종 음원 사이트를 휩쓸고 그가 광고하는 정수기, 샴푸, 심지어 자동차까지 판매량이 급증한다. 전국 투어 콘서트는 전회 전석 매진으로 17만명이 운집했다. 평론가들은 트로트 팬덤에서 이런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보통 전국 투어를 해도 지방 도시에선 하루 이틀 정도 하는데 임영웅 콘서트는 지역마다 사흘씩 했다. 아이돌 가수 중에서도 이 정도 티켓 파워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임영웅 콘서트 실황 무대가 곧장 영화와 VOD로 개봉되는 이유다.

휴대전화 음원 앱으로 임영웅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장면(왼쪽). 서울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에 놓인 가수 임영웅 사진과 관련 굿즈들(오른쪽).ⓒ시사IN 신선영

하지만 임영웅 현상을 단순히 티켓 파워나 광고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음 팬카페 ‘영웅시대’ 회원 수는 18만9000여 명. 팬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지만 팬덤을 주도하는 건 50~70대 여성이다. 원래 대중음악계에서 팬덤 문화의 핵심 구성원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주축이 된 팬덤일수록 아이돌 가수의 영향력도 커졌다. 임영웅 현상이 새로운 건 중장년 여성들의 조직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팬덤 역사에서 조명된 적이 거의 없다. 임영웅은 무엇이 달랐기에 이 많은 여성들을 움직였을까?

우연히 〈미스터 트롯〉 첫 방송을 본 날을 황광순씨(64)는 기억한다. 정년퇴직을 앞둔 2020년 1월이었다. 흰색 정장을 입은 한 남성 참가자가 자신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를 위해 노래하겠다고 했다. 노사연의 ‘바램’을 선곡하길래 이상히 여겼다. ‘남자가 바램을 부른다고?’ 첫 소절에 귀를 기울였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기교나 신파 없이 담담한 목소리다. 그게 어찌나 내 이야기 같던지, 황씨는 그 자리에 앉아 노래가 끝날 때까지 엉엉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삶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 건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사업이 어려워졌고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가장이 되어야 했다. 40대 초반 지인의 도움으로 취직한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 급식실이 20여 년간 황씨의 일터가 되었다. 어떤 날은 손이 퉁퉁 불어서 장갑을 끼지 못했고, 어떤 날은 장화 속으로 뜨거운 물이 튀는 바람에 물집이 생겼다. “집에 오면 먹기도 싫고 늦게까지 잠도 못 자. 일을 관둘 때가 되니까 우울 증세가 심해지더라고. 그런데 무서워서 병원에 진단을 못 받으러 갔어.” ‘손이 아프다’는 노랫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가슴 깊이 사무쳤다. 남모를 고생을 이해받는 느낌이었다고 황광순씨는 말했다.

황광순씨(앞줄 가운데)가 직접 만든 빵을 가지고 대구 중구 남산동의 남산종합복지관을 찾았다.ⓒ시사IN 이명익

황씨만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팬카페에는 임영웅 노래를 들으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이 사라졌다는 후기들이 종종 올라왔다. 암 투병 중에, 가족 간병 중에, 황혼 육아 중에.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립돼 있던 여성들이 임영웅을 통해 위로받고, 또 서로 연결되었다. 황광순씨가 대구 지역 모임인 ‘위시 카페’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여기는 언니고 동생이고 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그냥 끌어안고 우는 거야.” 임영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경북 포항에서 두 시간씩 걸리는 이곳을 거의 매주 찾는 이유다.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의 저자 조위(필명)는 “집단적인 치유야말로 임영웅 현상을 만든 핵심이다”라고 설명한다. 한 인터넷 신문사 국장인 그는 임영웅의 노래에 위로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왜 똑같은 노래라도 임영웅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더 큰 감동을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임영웅 가수 노래에 담긴 감정을 쉽게 설명하자면 ‘그동안 많이 아팠죠?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해요’다. 임영웅 가수의 노래가, 산뜻했던 서사를 잃어가다 마침내 이름마저 잊힐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개별자로서의 서사를 다시 부여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타자적 지위에 머물러온 60대 이상 여성들에게 임영웅이 음악 치료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많은 트로트 가수 가운데 왜 임영웅이었을까. 2022년 11월 장유정 단국대 교수(자유교양대학)가 투고한 논문 〈트로트에 나타나는 남성성의 상투성과 전복성〉은 나름의 틀을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상당수의 트로트가 남자다움을 강조하거나 남자의 순정을 주로 담아냈다. 남진과 나훈아의 트로트에서 보듯 사나이, 총각, 남자 등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제목과 노랫말에 등장하곤 했다. 그에 비해 임영웅의 트로트는 남성성을 전복한다. 그의 대표곡 ‘이제 나만 믿어요’와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에서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허세를 부리는 남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곡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고맙다고 표현하며 행복의 눈물마저 흘리는 남성을 만날 수 있다.”

장유정 교수는 임영웅의 트로트를 ‘부드러운 남성성의 출현’이라 명명한다. 미국에서 방탄소년단(BTS)이 성공한 이유로 거론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남성성에 질리거나 그들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은 말도 행동도 노래도 조심스럽게 하는 임영웅에게 열광했다.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을 통해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무대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와 창법에서도 그런 면이 보인다. “트로트 창법의 대표 기교인 흔들고 꺾고 뒤집기를 과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 기교들을 덜어내는데 오히려 감흥이 크다.” 다른 〈미스터 트롯〉 출연자들과도 달랐던 지점이다.

케이팝 아이돌 가수와도 차별점을 지닌다. 평론가들은 중장년층이 임영웅에게 매료된 한 가지 이유로 성장 서사를 꼽는다. 임영웅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떠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곧잘 불러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모아둔 돈은 떨어지고 월세도 밀리자 군고구마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한 방송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부터 거리 버스킹까지 여러 무대를 전전하다가 만난 것이 2020년 〈미스터 트롯〉이었다.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 회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 전 ‘건행(건강과 행복)’이라는 임영웅씨의 포즈를 따라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실낱같은 가능성을 뚫고 자신의 이름처럼 영웅이 되었다. 일종의 흙수저 서사다. 그런 서사가 5060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주는 희망과 기대가 있다(장유정 교수).” 잘 다듬어진 완성형 아이돌이 케이팝의 셀링 포인트라면, 중장년층에게는 임영웅처럼 ‘개천에서 난 용’ 서사가 소구했다는 얘기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기도 포천의 돈가스집이 팬들의 성지가 된 것만 봐도 그렇다. 팬들은 임영웅에게서 “기특한 아들” “인성과 효심을 갖춘 가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낸다.

대중음악계에서 임영웅의 성공은 50~70대의 저력을 각인시켜준 사건이다. 정민재 평론가는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할 만한 새로운 트로트 스타가 없었다고 짚는다. 나훈아, 조용필 이후 세대교체가 거의 멈춰 있었다. 장윤정, 박현빈이 있었지만 팬덤 현상보다는 대중적인 트로트 열풍으로 소비되었다. “문화는 항상 1020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이들을 잡아야 롱런의 발판이 된다는 인식이 컸다. 새로운 스타가 굳이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할 동기가 없었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그런데 임영웅은 기성세대를 정조준하며 아이돌 가수의 전략을 취했다. 트로트 가수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히트곡’ ‘지역 행사’ 대신, 앨범 단위 음악을 내면서 공연에 힘을 쏟는 것이 대표적이다. 말초적인 트로트보다는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에 중점을 찍었다. 임영웅이 부른 노래 중 가장 인기를 끈 곡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미스터 트롯〉 당시 부른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5300만 회를 넘었다. 가수 김목경이 1990년에 만든 곡을 가수 김광석이 리메이크하면서 유명해졌다. “1980~1990년대 포크 감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좀 더 세련된 스타일이다. 새로운 음악을 기다리던 중장년층에게 충분히 소구될 만한 콘텐츠를 찾아낸 거다(정민재 평론가).” 임영웅 노래엔 아이돌 음악처럼 멜로디가 난해하거나 영어 가사가 많지도 않다. 트로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면서 트로트에 덧씌워진 편견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영웅 팬들이 맞춘 ‘히어로’ 반지와 ‘영웅시대’ 응원 굿즈​​​​​​ⓒ시사IN 이명익

이전에는 없었던 ‘시장’이 열렸다. 시장의 소비자로 호명된 이들은 10여 년 전과는 달라진 중장년층이다. 취미생활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덜하다. SNS로도 활발히 소통한다. 트로트를 연구해온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이미 그전과 다른 문화 집단이 등장했지만 발산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트로트 열풍과 함께 거대한 수용자 집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그간 촌스럽다고 치부되었던 트로트 음악이, 종편 방송사가 주도한 트로트 열풍을 만나면서 새로운 수용자층을 끌어들였다. 넓게 보면 임영웅 현상은 중장년층이 주축이 된 트로트 현상의 일부분이라고 이영미 평론가는 강조했다.

4월14일 황광순씨는 아침 일찍 대구로 향했다. 그가 속한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에서 봉사활동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에게 받은 선한 영향력을 지역사회에 되돌려주자는 취지에 대구 지역 팬 50여 명이 동참했다. 무료 급식과 기부, 반찬 봉사 등을 해온 지 5개월째다. 연차를 내거나 가게 문을 닫고 참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가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여기서 느껴요” “날카롭지 않고 둥글둥글해졌어요. 삶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달까요.” “좋아하는 거니까 매주 해도 안 질리지요. 좋아하니까 더 자꾸 해야 해요.” 덕질 후기가 끝 모르고 이어졌다.

팬들은 임영웅 가수로 인해 자신들의 인생에 서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영웅이라는 백마 탄 초인이 등장해서 중장년을 구원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성장 서사의 주인공을 호명해냈다. 개인과 공동체, 지역사회에 이들이 가져온 크고 작은 변화도 마찬가지다. 황광순씨는 이날 장애인복지관에 전달할 빵 600개를 구웠다. 한때 콤플렉스였던 그의 손엔 영웅시대를 상징하는 하늘색 반지와 팔찌가 끼워져 있다. 달라진 모습을 보며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황광순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는 게 행복하더라.”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 회원들이 4월14일 대구 서구 대구적십자사 서부봉사관에서 남산종합사회복지관에 기증할 빵을 만든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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