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프로축구 K리그 1 광주 FC와 FC 서울의 경기가 열렸다.ⓒ연합뉴스
3월2일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프로축구 K리그 1 광주 FC와 FC 서울의 경기가 열렸다.ⓒ연합뉴스

2024시즌 프로축구 K리그가 개막했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뜨겁다. 화제성으로는 제시 린가드 영입으로 관중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FC 서울이 앞서고, 성적으로는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울산HD FC의 위용이 여전하다. 그런데 화제성과 성적을 모두 잡은 승자는 따로 있다. 광주 FC다. 광주는 개막전에서 린가드의 서울을 2-0으로 꺾은 데 이어 2라운드에서 강원에 4-2로 승리하며 리그 순위표 1위에 올랐다. 강원전에서는 후반에만 4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승을 챙겼다.

고작 두 경기 결과로 웬 호들갑인가 싶겠지만, 지난 시즌과 연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광주는 2023시즌 K리그 1에서 3위에 오른 팀이다. 2010년 팀 창단 이래 최고 성적이었다. 지난 시즌을 포함해 최근 20경기 전적을 보면 더 놀랍다. 10승7무3패로 가장 성적이 좋다. 인천(9승8무3패)과 울산(9승5무6패)이 그 뒤를 잇는다. 지난해 여름 이후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팀이라는 뜻이다.

미시간 대학의 스테펀 시맨스키 교수는 저서 〈축구 자본주의〉에서 ‘리그 평균 연봉의 4배를 쓰면 우승을 하고, 2.5배를 쓰면 2위를 한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축구에서는 돈이 곧 실력으로 통한다. 빅클럽이 주도하는 ‘빈익빈 부익부’ 흐름을 깨기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반기를 든 사례가 있다면 2015-2016시즌의 레스터시티(2부 리그에서 승격해 EPL 우승)가 거의 유일하다. K리그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 10년간, K리그 선수단 연봉 1~3위 팀인 전북(7회), 울산(2회), 서울(1회)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광주는 2023년 기준 K리그 1 선수단 연봉 최하위 팀이다. 12개 구단 평균 연봉 115억원의 절반 수준인 60억원을 썼다. 전북(198억원)이나 울산(183억원)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전북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최근 페이스로는 울산에도 앞선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2023시즌 광주는 승격 팀이었다. 2021시즌 K리그 1 최하위에 머물다 K리그 2로 강등될 때만 해도 이 정도 파란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며 환골탈태한 광주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단언컨대 이정효 감독이다.

이정효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선수 시절 부산 아이파크(전신 부산 대우 포함)의 측면 수비수로 K리그 222경기에 출전하고, 2008년 부산의 레전드로 은퇴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유니폼은 입어보지 못했다. 이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2011년 모교 아주대 축구부 코치로 시작해서 감독이 되었다. 2015년부터는 K리그 팀에서 2인자로 생활했다. 6년간 광주, 성남, 제주에서 수석코치를 지냈다.

프로 무대에서 칼날을 벼린 그는 2022년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광주가 제안한 감독직을 받아들였다. 당시 광주는 세 번째 강등으로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이정효 감독은 갈피를 잡지 못하던 광주에 부임해 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압박, 공수 전환, 속도 등 경기력의 기본부터 달라졌다. 광주는 독창적이고 선진적인 전술을 펼치는 팀이 됐다. 포지셔닝, 수적 우위, 공 없는 움직임, 세트피스 전략 등에서 ‘약속된 고급 플레이’로 K리그 2를 압도했다. 결과는? 2022 K리그 2 조기 우승!

거침없는 언행 지적받지만

2023시즌 K리그 1로 복귀한 광주를 향한 의구심은 개막 3개월 만에 증발했다. 이정효 감독의 변화무쌍하고 공격적인 전술이 1부 리그에서도 통했다. 이 감독은 ‘선택’과 ‘성장’을 강조한다. 선택은 그의 전술적인 화두다. 공을 소유하든 그렇지 않든 선수는 최적의 움직임과 패스, 돌파 등을 시도해야 한다. 팀플레이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한 선택이다. 그는 “도전적인 선택을 해서 실수를 하는 건 절대 혼내지 않는다. 다만 도전하기 싫어서 고민하지 않고 옆으로 패스하는 건 지적한다”라고 말한다. 선택이 경기력에 관한 화두라면 성장은 선수와 팀에 던지는 콘셉트다. 경기 국면에서 좋은 선택을 반복해 이기는 순간이 쌓이면 경기에서도 승리한다는 논지다. 경기에서 이기면 개인과 팀이 모두 성장할 수 있다.

실제로 광주는 아시아 무대(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 진출하는 팀으로 도약했다. 주전 미드필더였던 이순민은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겨울에는 광주 시절보다 3배나 인상된 연봉을 받고 대전으로 이적했다. K리그 1 상위권 팀들이 그를 두고 치열한 영입전을 벌인 결과였다. 이정효 감독은 잘 키운 핵심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떠나도 자신감을 보인다. “우리는 돈이 필요한 팀이다. 이적료를 남겼으니 됐다.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 있다.” 실제로 이순민이 떠난 자리는 2000년생 미드필더 정호연이 훌륭히 메우고 있다. 정호연은 이번 3월 A매치를 치르는 대표팀에 선발됐다.

2월26일 이정효 광주 FC 감독이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2월26일 이정효 광주 FC 감독이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정효 감독은 거침없는 언행으로도 화제를 모은다. 이기고 있어도 화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호령을 내리거나 웃옷을 벗어 던진다. 승패를 떠나 자신이 계획하고 준비한 전술을 선수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다. 서울이나 전북처럼 덩치 큰 상대가 소극적인 축구로 광주에 맞설 때도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저런 축구에 졌다는 게 분하다”라거나 “단 페트레스쿠 감독님(전북) 연봉 얼마예요?”라는 말을 남겼다. 상호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 정서에, 선후배 간 위계가 철저한 스포츠 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강도의 발언이었다. 누군가는 이정효 감독을 ‘문제적 인물’로 간주한다. 사석에서 “축구는 잘하지만 불손하다”라고 평가하는 축구인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정효 감독의 송곳 같은 발언이 “본질을 찔러 속 시원하다”라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애초 고액 연봉을 받는 외국인 감독이나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를 대거 보유한 팀이 광주를 압도하지 못해 쩔쩔매는 게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K리그에 전술적 담론을 주도하는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상대 감독이 들고나올 수를 예상해 그에 대응하는 다른 수를 두세 개씩 준비하는 식이다. 유럽의 전술 트렌드를 선도하는 감독들 못지않다. 팀이 지향하는 전술을 선수들이 납득하고 이행한다. 전술 분석부터 토론, 훈련에 이르기까지 팀 전체가 몰입한다.

‘이정효 효과’로 한국 축구계도 변화하고 있다. 자극을 받은 다른 지도자들이 그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축구 전술과 전략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팬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객관적 전력 차를 극복할 수 있는 감독들의 무기를 주목한다. 승리한 경기를 두고도 ‘어떻게’ 이겼는지 분석하는 시대다.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면 팬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판도를 뒤흔드는 리더십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이정효 감독은 스스로 ‘축구판 흙수저’라고 칭한다. 그러나 “흙수저라도 한곳을 줄곧 파다 보면 금맥을 발견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 K리그는 이정효라는 금맥을 쥐고 있다.

기자명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