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정말 특별한가? 이번 기고 글에서 김상욱 물리학자가 묻는다. 뜻밖의 사유가 누군가의 갑갑한 설 연휴를 버티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 말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독자들에게 과학자, SF 작가, 〈시사IN〉 기자들이 명절에 즐길 만한 콘텐츠를 엄선했다. 설날과 까치에게 유쾌한 질문을 던지는 김상욱 물리학자, 박진영 공룡학자의 과학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보여주고, 듀나 SF 작가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시사IN〉 기자들의 추천작들에서 “올해를 버티게 해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순간을 만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설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 여섯 편을 싣는다.

새해 아침 서울 서대문구 안산봉수대를 찾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새해 아침 서울 서대문구 안산봉수대를 찾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엉뚱한 요청을 즐기는 나조차 ‘설날엔 물리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것에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날아가는 윷의 궤적을 이야기해야 하나? 물리학자라면 시작하기 전에 우선 요청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왜 설날이면 이런 기획을 하나? 아니, 설날은 왜 특별한가?

설날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여 제자리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공전 궤도는 타원이므로 시작도 끝도 없다. 즉, 물리학적으로 ‘1년의 시작점’ 같은 것은 없다.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이라 한다. 1년은 정확히 365일이 아니다. 1일은 지구의 자전에 걸리는 시간인데, 지구가 생길 때 임의로 주어진 회전속도로부터 결정된 것이다. 1년은 정확히 365일 5시간 48분 45.97546초다. 그러니 밤 12시가 되는 순간 폭죽을 터트릴 것이 아니라 새벽 5시48분 46초쯤 폭죽을 터트려야 한다.

뭐 6시간쯤 무시하면 어떠랴. 하지만, 4년이 지나면 6시간이 네 번 누적되어, 24시간 차이가 난다. 즉, (무려) 하루 전 폭죽을 터뜨리는 셈이 된다. 제대로 하자면 4년마다 하루를 더해줘야 한다. 이걸 고려하여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제정된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 한다. 하지만 이것도 5시간 48분 45.97546초를 6시간이라고 해버린 것이니 세월이 흐르면 오차가 누적되어 역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를 보정하여 그레고리력을 반포했는데,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다.

1년 주기가 중요한 것은 인류가 농경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사가 시작되는 봄을 시작점으로 잡는 것이 옳다. 원래 고대 로마에서는 지금의 3월1일을 1년의 시작으로 잡았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율리우스력을 반포할 때 ‘11월(Januarius)’을 ‘1월(January)’로 만들었다. 11월이 상징하는 야누스(Janus) 신은 ‘시작’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개정할 때 교회는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1월1일로 하길 원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1월1일은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멋대로 정한 기준점이다.

이번 설날은 1월1일이 아니라 2월10일이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사용된 태음태양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지구와 태양뿐 아니라 달까지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1년은 정확히 따지자면 열두 달이 아니다. 달의 공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달은 29일 12시간44분 2.9초로, 열두 달은 354일 8시간 48분 34.8초다. 1년(365일 5시간48분 45.97546초)과 11일 가까이 차이 난다. 태음태양력에서는 이를 보정하기 위해 19년마다 일곱 번 윤달(한 달을 추가)을 넣는다. 그래서 음력설이 1월과 2월을 오가는 거다. 설날이 대략 2월 초인 걸로 봐서 역시 농사의 시작을 고려하여 누군가 임의로 정한 것이리라.

결국 물리학적으로 설날은 지구, 태양, 달의 서로 관계없는 주기를 끼워 맞추고 임의로 기준점을 정한 결과물이니 조금도 특별한 날이 아니다. 이처럼 물리는 〈시사IN〉 설날 특별기획에 찬물을 끼얹는다. 얼음물 끼얹을 이야기가 더 있지만 다행히 지면이 부족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설날이지만 복은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

기자명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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