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정말 특별한가? 이번 기고 글에서 김상욱 물리학자가 묻는다. 뜻밖의 사유가 누군가의 갑갑한 설 연휴를 버티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 말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독자들에게 과학자, SF 작가, 〈시사IN〉 기자들이 명절에 즐길 만한 콘텐츠를 엄선했다. 설날과 까치에게 유쾌한 질문을 던지는 김상욱 물리학자, 박진영 공룡학자의 과학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보여주고, 듀나 SF 작가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시사IN〉 기자들의 추천작들에서 “올해를 버티게 해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순간을 만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설을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 여섯 편을 싣는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일본 드라마 〈콰르텟〉의 한 장면.ⓒ넷플릭스 갈무리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일본 드라마 〈콰르텟〉의 한 장면.ⓒ넷플릭스 갈무리

바이올리니스트 마키는 코인 노래방에서 연주 연습을 한다. 결혼은 했지만 혼자 밥을 먹는다. 거실 바닥에는 남편의 검은 양말이 늘 똑같은 곳에 떨어져 있다. 마키는 그것을 보면서도 치우지 않는다. 어느 날 코인 노래방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오던 마키는 노래방 복도에서 자신처럼 현악기 가방을 멘 세 사람을 만난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이 기이한 인연으로 네 사람은 ‘도넛홀’이란 이름의 현악 4중주(콰르텟)를 결성하게 된다.

2017년 제작된 일본 드라마 〈콰르텟〉은 ‘의문의 바이올리니스트’ 마키를 커다란 괄호 안에 넣어두고 시작한다. 드라마에는 아름다운 협주곡이 흐르고, 김이 폴폴 나는 음식이 나온다. “꿈을 가진 삼류는 사류”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네 사람은 연주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이들을 응원하고 있으면 어쩐지 물 위를 떠다니는 수달처럼 행복해진다. 하지만 네 사람의 우정이 온화한 위로로 변주되는 순간, 매번 질문이 튀어나온다. 도대체 마키는 누구인가. 어떻게 네 사람은 마치 짠 것처럼 그 시각, 그 코인 노래방에 있었던 걸까. 우아한 왈츠인 줄 알았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져 탱고가 된다. 아니, 수난곡인가?

〈콰르텟〉을 설명할 문장을 다시 찾아본다.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상한 가족이 되어 애틋하게 서로를 아끼지만 사실은 은은한 광기로 진실을 은폐하는 추리극’ 정도 어떨까.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사카모토 유지가 그간 갈고 닦아온 필살기를 모두 펼쳐 보인 만찬.’

사카모토 유지가 누구인가? 지난해 개봉하여 여전히 롱런하고 있는 일본 영화 〈괴물〉을 언급해야겠다. 영화 〈괴물〉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022년 제작한 〈브로커〉의 차기작이다. 한국 배우들과 협업하며 주목받았지만 팬들을 처절하게 실망시켰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괴물〉을 보기 전 유례없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감독은 일본 드라마계의 ‘탑티어’ 사카모토 유지에게 각본을 받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사카모토의 언어는 스크린 속에서 반짝이는 거짓말이 됐다. 정말로, 영화 화면이 구슬처럼 빛나는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러니 바로 그,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이라는 말로 〈콰르텟〉을 설명하는 것도 지나치지 않을 수 있겠다.

사카모토 유지의 대체할 수 없는 강점은 어떤 악인도 서사 없이 내팽개쳐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지는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혼자가 되지 않도록 곁에 타인을 세워둔다. 누군가와 함께 칫솔질을 하게 하고, 잠을 잘 땐 깨끗한 파자마를 입게 해준다. 〈콰르텟〉에서는 그 기술이 더 노련해졌다.

‘내가 당신들을 배신했다’는 고백과 함께 눈물을 훔치는 마키에게 첼리스트인 스즈메는 이렇게 말한다. “마키는 연주자예요. 음악은 뒤돌아가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여기도(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똑같아요. 마음은 움직이면 앞으로밖에 못 가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사람은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요. 전 마키가 좋아요. 지금 제가 믿어주길 바라요? 그것만 알려줘요.” 누군가의 옆에 있어준다는 건 이렇게 하는 거라고, 사카모토 유지는 정확히 알려준다. 그 덕에 우리 모두 마키가 되어 울면서 행복해진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최종화의 오프닝 시퀀스다. 마키를 찾으러 간 세 사람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연주를 한다. 눈부신 장면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올 한 해 당신을 버티게 해줄 장면을 만날지도 모른다. 사카모토 유지의 이야기는 살아갈 때 필요한 힘을 준다. 〈콰르텟〉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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