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카카오가 일부 계열사에 대한 감사 및 사업 점검에 착수했다. ⓒ시사IN 조남진
2024년 1월 카카오가 일부 계열사에 대한 감사 및 사업 점검에 착수했다. ⓒ시사IN 조남진

2024년 새해 첫날, 카카오 직원들이 자회사 SM엔터테인먼트(SM엔터) 본사에 들이닥쳤다. 장철혁 SM엔터 대표, 이성수 최고A&R책임자(CAO), 탁영준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핵심 임직원들의 개인 컴퓨터를 찾았다. 디지털 포렌식을 하겠다는 이유였다. SM엔터 측 관계자는 “형식은 ‘감사’였지만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듯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지난해 3월 인수한 SM엔터에 대한 고강도 재무 감사를 진행 중이다. SM엔터 현 경영진이 추진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카카오는 SM엔터가 지난해 텐엑스엔터(10x엔터)와 더허브·스튜디오클론 등을 인수하면서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급했다고 의심한다. 카카오는 2월 중 SM엔터 재무 감사를 마무리하고 문제가 발견된 임직원들에 대한 조직감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지난해 카카오가 SM엔터를 1조2000억원 투입해 인수한 직후 SM엔터 현 경영진은 입장문을 내고 “카카오는 SM엔터의 현 경영진을 신뢰하며, 최대주주가 되더라도 자율·독립 경영 보장을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계열사·자회사 자율경영은 카카오의 핵심 경영 기조이자 성장 방정식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도 ‘100인의 CEO’를 양성하겠다며 각 그룹사들에 높은 경영 자율성을 주는 분권형 경영을 유지해왔다. 이번 감사는 카카오의 기존 경영방침과 정반대 상황이다.

카카오는 SM엔터의 최대주주이지만 상법상 모회사는 아니다. 현재 SM엔터 지분의 20.76%는 카카오가, 19.11%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다. 모회사 요건을 충족하려면 지분 50%를 보유해야 한다. 이번 감사 대상이 된 SM엔터의 불투명한 투자 금액은 160억원 규모다. SM엔터는 연매출이 1조원에 가까워지고 있고 현금성 자산 규모도 약 3000억원 수준이다. SM엔터 입장에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의 투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SM엔터의 경영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는 정당한 감사라고 맞받는다. 카카오는 SM엔터의 투자 소식을 언론보도로 파악했다고 한다. SM엔터의 재무 상황은 카카오의 연결 재무제표에도 반영되는 만큼 이 회사의 불투명한 투자는 카카오 경영진의 배임 혐의로 번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감사보고서 작성을 위해 SM엔터가 본사와 상의 없이 진행한 투자 건의 적정성에 대해 자료 제출 요구 및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감사가 카카오와 특정 계열사 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카카오는 최근 다른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감사 및 전반적인 사업 점검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핵심 계열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수장이 교체됐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도 CEO 교체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의 선제적인 계열사 전반에 대한 감사와 CEO 물갈이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대적 계열사 감사에 담긴 의미

이 같은 작업들은 지난해 말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범수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카카오 안팎에선 이번 감사와 사업 점검을 카카오 경영 기조 변화의 신호탄으로 읽는다. 카카오는 최근 그동안 고수해온 ‘자율경영’을 지우고 강력한 ‘중앙집중형 경영’으로 전환을 예고한 바 있다. 이를 상징하는 조치가 1월2일 단행한 CA(Corporate Alignment)협의체 개편이다. 경영에 복귀한 김범수 창업자와 지난해 말 신임 카카오 대표로 지명된 정신아 내정자(오는 3월 이사회,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선임 예정)가 공동 의장을 맡았다. 13개 카카오 핵심 계열사 대표들은 협의체와 산하에 구성되는 경영쇄신위원회, 경영전략위원회 등 다양한 위원회에 참여한다. 이들의 의사결정이 카카오 그룹사 전반에 내려가게 되는 구조다.

CA협의체는 그동안 카카오 계열사 간 의견 조율을 주로 담당해왔다. 이번 개편을 통해 사실상 중앙 협의식 의사결정 기구로 전환되면서 권한과 책임이 집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범수 창업자(CA협의체 공동의장)는 CA협의체 개편 후 첫 회의에서 “사회의 눈높이와 신뢰에 부합하는 성장 방향과 경영 체계”라고 설명했다. 정신아 대표 내정자(CA협의체 공동의장)는 같은 자리에서 “CEO들의 위원회 참여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내부 통제를 강화하게 된다. 그동안의 느슨한 자율경영 기조를 벗어나 구심력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계열사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사업 점검은 이후 본격화됐다.

CA협의체 구조는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와 유사하다. SK수펙스는 그룹의 최고 협의기구로 산하에 다양한 위원회를 두고 그룹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며 실행을 지원한다. 2013년 최태원 회장이 회사 자금 456억원을 횡령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할 당시 그룹의 구심점이 됐다.

카카오는 재계에서 막내로 꼽히는 젊은 그룹이다. 핵심 경영 기조였던 자율경영은 혁신과 시대 변화, 국내 대표 IT기업의 성장동력 등의 상징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그룹의 몸집을 급속도로 불리면서 부작용이 도드라졌다. 자율에 맡긴 경영 속에서 튀어나온 스톡옵션 ‘먹튀’ 사태와 회사보다 검찰이 먼저 포착해 수사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의 ‘배우자 밀어주기’ 투자 의혹 등 다양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사례, 소상공인 상생 이슈, 판교의 임차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시사IN〉 제845호 ‘카카오의 성장전략은 어떻게 독이 되었나’ 기사 참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022년 10월24일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022년 10월24일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카카오는 사정 당국은 물론 정치권으로부터 강도 높은 압박을 받고 있다. 검찰은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조종 의혹을 수사 중이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등 SM엔터 인수에 관여한 카카오 주요 경영진이 구속됐다. 1월30일에는 검찰이 ‘배우자 밀어주기’ 투자 의혹으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임원진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전략을 거론하며 ‘부도덕하다’고 비판(2023년 11월)했다. 기존 성장 방정식의 한계와 그룹사 전반에 대한 압박이 맞물려 카카오의 경영 기조 변화가 단행됐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카카오 안팎에선 아직까지 변화에 대한 의구심이 높다. 극단적 자율, 분권형 경영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되어왔다. 스타트업 포장지를 벗기고 덩치에 걸맞은 적절한 내부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등 떠밀려’ 움직이는 모양새가 된 만큼 진정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 관계자는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 혁신과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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