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테마주’ 과열은 2007년 제17대 대선 이후 반복되어온 현상이다.ⓒ연합뉴스
‘정치 테마주’ 과열은 2007년 제17대 대선 이후 반복되어온 현상이다.ⓒ연합뉴스

‘정치 테마주’는 허상이다.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 테마주는 마치 경마처럼 특정 정치인의 승리에 베팅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낙선자는 물론이거니와 당선자 측 테마주도 결국 폭락을 면치 못한다. 심지어 대다수 종목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미 하락을 시작한다. 극단적인 주가 상승을 기록하지만, 결국엔 하락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주가 거품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테마주 유행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반복된 현상이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 테마주로 여겨졌던 이화공영은 정치 테마주의 시초 격으로 꼽힌다. 이화공영은 이명박 후보 대표 공약이던 대운하 사업 수혜주로 알려져 대선 직전 4개월 동안 주가가 18배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폭락은 대선일 약 2주 전부터 시작됐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는데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정치 테마주 관련 불법행위를 중점 단속하고, 정치 테마주가 허상임을 여러 차례 홍보했다. 그러나 정치 테마주 열풍은 최근까지도 반복됐다.

2024년 현재 정치 테마주의 주인공은 단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그와 관련해 테마주로 거론되는 종목이 최소 30개를 넘어선다. 여당 대표이자 차기 대권주자 1순위 인물이기에 당연한 현상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꽤 이례적인 상황이다. 정치 테마주의 가장 큰 ‘장’이 서는 때는 당연히 대선이다. 주인공이 명확하기에 그를 중심으로 투기 수요가 몰리며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낸다. 반면 수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그만큼 투기 수요가 집중되기 어렵다. 이러한 전례를 참고했을 때, 총선을 앞두고 있는 2024년 1월은 정치 테마주가 이목을 끌기 어려운 시기다. 21대 대선은 3년 넘게 남았기에 차기 대권주자 타이틀이 갖는 의미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한동훈 테마주’는 마치 대선 초기에 필적할 만큼 거품을 만들어내며 인기를 얻고 있다.

제20대 대선 이후 꾸준히 정치 테마주를 매매하고 있는 최기혁씨(가명)는 한동훈 테마주의 때아닌 인기 이유를 ‘새로움’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테마주는 언제나 새로운 인물을 좋아한다. 새 인물이 등장해서 기성 정치인과 겨루기 시작해야 화제가 되고, 주가도 상승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이 타이밍에 정치 테마주가 화제가 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최씨는 말했다.

한동훈 테마주 등장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한동훈 테마주는 꾸준히 존재해왔다. 위 〈그림〉은 대표적인 한동훈 테마주 다섯 종목과 코스닥 지수를 비교한 그래프다. 제20대 대선이 끝난 다음 날인 2022년 3월10일을 기준으로 각 주가가 얼마나 상승했는지 보여준다(단, 당시 상장 전이던 D 기업은 상장일을 기준으로 했다). A 기업의 경우, 2022년부터 한동훈 테마주로 묶이며 엄청난 상승폭을 기록했다. 물론 기업 자체의 성장도 가팔랐기에 모든 주가 상승을 정치 테마주의 영향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주요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주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며 A 기업은 한동훈 테마주 중 대장 격으로 꼽히게 됐다.

‘인맥주’와 ‘정책주’의 허상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야당과 대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면서, 한동훈 테마주 종목 수는 점차 많아졌다. 이는 일반적인 정치 테마주가 동일하게 겪는 현상이다. 시가총액이 커질수록 급격한 주가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기업규모가 커진 만큼, 동일한 상승률을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투기 자금도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치 테마주 투기 수요는 또 다른 ‘급등주’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 그렇게 적당한 규모의 기업을 찾으면 누군가 그 기업이 특정 정치 테마주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그 소문이 투기 수요를 불러오면서 정치 테마주 종목 수가 점차 많아진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다섯 종목은 모두 한동훈 테마주로 여겨지지만, 동일한 주가 흐름을 보이진 않는다. A 기업, B 기업 주가가 먼저 상승하다가 점차 새로운 기업들이 한동훈 테마주로 떠오른다. 때로는 정치적 호재가 있는데도 주가가 하락하기도 한다. 더 이상 주가 상승 여력이 없다고 느껴지면 투기꾼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해당 종목을 처분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탈출 러시가 이어지면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폭락한다. 여당 비상대책위원장 취임이라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동훈 테마주들이 주가 폭락을 면치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연관이 있다는 풍문은 대체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 테마주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정치인의 사적 인맥을 강조하는 ‘인맥주’, 정치인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의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알려진 ‘정책주’다. 인맥주의 경우 사적 인맥 자체가 거짓인 경우는 많지 않지만, 해당 정치인이 권력을 얻었을 때 그 기업에 특혜를 줄 것이라는 비도덕적이고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을 둔다.

그나마 인터넷에 떠도는 ‘인맥’의 강도는 대개 미약하다. 예컨대 B 기업이 한동훈 테마주로 묶이게 된 것은 사외이사 한 명이 한 비대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으며,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외이사 한 명이 기업의 성장을 좌지우지할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B 기업은 한동훈 테마주가 된다. E 기업도 마찬가지다. 부사장과 사외이사가 각각 한 비대위원장과 미국 컬럼비아 대학, 서울대 법대 동문이라는 이유로 한동훈 테마주가 됐다.

지난해 11월 말 대상홀딩스는 한동훈 인맥주로 꼽히며 큰 주가 변동을 보였다. 11월26일 현대고 동창인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배우 이정재씨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발단이었다. 해당 사진이 공개된 후, 대상홀딩스 임세령 부회장이 이정재씨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며 대상홀딩스 우선주는 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폭락을 거듭하며 고점 대비 60% 정도 주가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정치 테마주를 매매하는 사람들조차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실제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난해까지 한동훈 테마주에 투자한 김현철씨(가명)는 인맥주를 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전례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인맥이 있는 기업은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다른 시장 참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믿고, 내 뒤에 사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인맥주를 산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폭탄 돌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자신은 아닐 것이라는 미약한 믿음 위에서, 정치 테마주 버블은 자라난다.

정치 테마주의 폐해를 막기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 꼽히는 공시가 무기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가가 이상 흐름을 보일 경우, 한국거래소는 해당 기업에 조회공시를 요구한다. 요구를 받은 기업은 주가가 극심하게 변동할 이유가 있는지 공시해야 한다. 물론 공시할 만한 합리적인 사건이 없기에, 기업은 중요 공시 대상이 없다고 밝히거나 정치인과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정치 테마주 40개 평균 53.8% 상승

그러나 애초에 투기꾼들도 진짜 특혜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공시는 버블을 잠재우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컨대 D 기업의 경우 지난해 말 두 차례 조회공시 요구를 받았다. 12월28일에는 두 번째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최근 당사 주식이 정치 테마주로 거론되고 있으나 과거 및 현재 당사의 사업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6거래일 동안 주가는 상승했으며, 최고점을 경신했다.

배우 이정재씨(왼쪽)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은 ‘한동훈 테마주’ 과열을 불렀다.ⓒ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배우 이정재씨(왼쪽)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은 ‘한동훈 테마주’ 과열을 불렀다.ⓒ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또 다른 정치 테마주인 정책주 역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시기 ‘대운하 테마주’처럼, 정책주는 실제로 정치권이 추진하는 정책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언뜻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책주라고 알려진 종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해당 정책과 연관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관련된 정책주 중 대표적인 테마는 ‘이민청’이다.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부터, 한 비대위원장은 저출생·고령화 여파에 대응하기 위해 이민청을 신설하고 더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민자 유입이 많아질 경우 수혜를 받을 것이라 여겨지는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했다.

대표적인 이민청 테마주로 꼽히는 F 기업의 경우, 이민자와 관련해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이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F 기업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현재 운영 중인 이민자 관련 사업은 없으며, 사업 초기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관련 사업을 언제 개시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훈 테마주로 묶이며 지난해 말 F 기업 주가는 약 한 달 새 두 배 넘게 상승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자, 1월31일 금융감독원은 정치 테마주 불공정거래 집중 제보 기간을 운영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정치 테마주는 이미 과열돼 있는 상황이다. 정치 테마주 40여 개의 평균을 내보았을 때, 가장 과열된 1월 초 기준 석 달 만에 주가가 53.8% 상승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치 테마주는 과거 사례에 비춰보았을 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주가가 급락하는 양상을 보여왔으나, 주가 하락시점은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투자에 신중을 기하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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