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 충남 서천의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월23일 충남 서천의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80일을 남기고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이 기 싸움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월21일 점심 무렵에 나온 한 기사가 여당을 뒤흔들어놓았다. 〈쿠키뉴스〉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밀접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냈던 기대와 지지를 철회하고 비대위원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당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1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4월 총선에 이른바 ‘조국 흑서’ 저자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마포을)을 상대로 출마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아직 공천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특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연출이 나오자, ‘공천(公薦) 아닌 사천(私薦)’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날, 김경율 비대위원은 JTBC에 나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언급하며 “(명품 가방 수수를)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겠나. 국민들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전후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기본적으로 내용을 보면 몰카 공작이라는 것은 맞다”라던 과거 자신의 발언과 입장이 달라진 셈이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이 ‘엇박자’가 계속되자 1월21일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주도로 한 비대위원장, 윤재옥 원내대표가 3자 회동을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사퇴에 대한 〈쿠키뉴스〉 기사가 나온 것은 이 자리가 파한 뒤다. 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날 저녁 기자들에게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라는 짧은 입장을 냈다.

이튿날 출근길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압박이 있었음이 당사자의 입으로 확인된 셈이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한 질문에는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 없다”라고 답했다. 한 비대위원장이 사퇴 압박에도 버티자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예정돼 있던 민생 토론회에 불참한다고 갑작스레 통보했다. 감기 기운이 있다는 이유였다.

국민의힘 내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망한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전국을 돌며 세몰이를 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주저앉히는 게 부담스럽고, 한 비대위원장도 윤 대통령의 메시지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용산 출장소’와 다를 바 없다는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 사태가 ‘약속대련’ 즉 대본을 짜고 하는 연기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 대표는 1월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식점에 주방은 하나인데 전화 받는 상호와 전화기가 두 개 따로 있는 모습으로 서로 다른 팀인 척해서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척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인사는 〈시사IN〉과 통화에서 “국민들이 보는 그대로다”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 갈등으로 오히려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부각되는 상황이기에, 대통령실 처지에서도 ‘약속대련’은 실익이 없다는 의미다.

1월17일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왼쪽)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1월17일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왼쪽)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 현장을 화해 쇼로 이용했다”

1월23일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발생한 충남 서천의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한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보자 90도로 인사하며 악수했다. 둘 사이 23년 인연을 상기하듯, 7년 전 국정농단 특검팀에서 함께 근무할 때 입었던 패딩을 착용한 윤 대통령은 한 비대위원장의 어깨를 툭툭 치고 소방 브리핑을 들었다. 일정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대통령 전용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들이 20여 분 만에 현장을 떠나자, 화재 피해를 입은 일부 상인들은 “화재 현장을 화해 쇼로 이용했다”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서울역에 도착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번 만남으로 갈등이 봉합됐다고 보면 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변함이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봉합은 했지만, 뇌관은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월25일 현재까지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건에 대해 “지난번 했던 말 그대로”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실도 별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앞서의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김건희 여사가 당에 사과할 의사를 전달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뉴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라며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이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감정이 좀 가라앉았으니 차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나”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사퇴함으로써 윤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는 일부 당내 의견에 대해 “(김 비대위원이) 출마를 하면 어차피 곧 비대위원을 사퇴해야 한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여당 내에서도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1월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디올(디오르) 백 같은 경우 함정이긴 했지만 부적절했다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김웅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함정 취재 역시 비열하고 상스러운 작태이지만 함정 수사도 아닌 함정 취재를 ‘위법하다’라는 반박만으로 대처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라며 김건희 여사의 진솔한 사과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29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서천특화시장에서 만나 화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지 엿새 만이자, 한 비대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자리에 동석했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약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오찬과 차담 자리에서 “민생 문제 이야기만 오갔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튿날 한 비대위원장 역시 기자들로부터 김건희 여사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생각은 분명하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말씀드린 바 있다. 더 말씀드릴 내용은 없다”라며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당정 갈등이 마무리된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협력하고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라며 에둘러 답을 피해갔다. 결국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덮어둔 채 넘어간 것이다.

외신에서도 이번 사태의 본질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라는 점에 주목했다. 1월23일(이하 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300만원짜리 디오르 핸드백이 한국 여당을 뒤흔들다(A $2200 Dior Handbag Shakes South Korea’s Ruling Party)’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타임〉에 실린 1월24일자 기사의 제목은 “한국의 ‘디오르 백 스캔들’에 대한 해명(South Korea’s ‘Dior Bag Scandal,’ Explained)”이었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