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기다리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서울시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기다리고 있다.ⓒ시사IN 이명익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보낼 기관으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다. 법적으로 어린이집은 사회복지시설이고 유치원은 학교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각 시도 지방정부가 관할하며, 유치원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맡아왔다. 어린이집은 0~5세, 유치원은 3~5세가 이용한다. 어린이집에는 국공립과 민간·직장·가정 어린이집이 있고, 유치원에는 국공립과 사립이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무상교육인데 0~5세 영유아는 기관별로 다르다. 어린이집이나 국공립 유치원은 학부모가 추가로 내야 할 비용이 거의 없지만, 사립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 추가 부담금이 전국 평균 월 13만5000원에 달한다. 유치원은 시도 교육청이 1인당 2800~3435원의 단가를 책정해 무상급식을 따로 지원하지만, 어린이집은 1인당 2500원을 중앙정부가 보육비에 포함해 지자체에 내려보낸다. 두 기관은 교사를 양성하는 체계도, 교사에 대한 처우도, 시설관리 기준도 다르다. 유치원이 담당하는 ‘유아교육’과 어린이집이 담당하는 ‘보육’이 법적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태어난 영유아라면 어떤 기관을 이용하든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나아가 0~5세라는 연령대에서 ‘유아교육’과 ‘보육’이 무 자르듯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일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 즉 ‘유보 통합’이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부터 논의되어왔다. 이미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3~5세 아이들은 ‘누리과정’이라 불리는 국가 차원의 무상교육 프로그램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동일하게 교육받고 있다. 유치원 역시 방과후 과정을 통해 보육의 역할을 상당 부분 감당해왔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재명·심상정 후보가 모두 유보 통합을 공약했다.

지난해 12월8일, 영유아 보육과 교육을 모두 교육부 장관이 담당한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육은 복지부, 교육은 교육부가 맡던 그동안의 체제에서 벗어나 영유아 보육·교육 담당 부처를 교육부로 일원화한 것이다. 이는 유보 통합의 법적 근거를 사실상 처음 마련한 조항으로 평가받는다. 이 법은 올해 6월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제 열심히 유보 통합을 추진하면 되는 걸까? 당장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보육과 교육 여건 모두 악화시키는 정부조직법 개악 규탄한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졸속으로 강행된 이번 개정안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한다(교사노조연맹).” 이 단체들은 유보 통합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형태의 유보 통합에는 반대한다고 말한다. 교사노조연맹에 소속된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의 윤지혜 수석부위원장은 “유보 통합이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교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과정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교사 자격이다. 현재는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2~4년제 대학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유치원 교사 2급 이상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임용고시도 봐야 한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증은 2~4년제 대학 아동·보육학과나 기타 학과(사이버대·학점은행제 포함)에서 필요 학점을 이수하거나(2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교사 교육원을 수료하면(3급) 취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유보 통합에 따라 기존 보육교사(0~5세)와 유치원 교사(3~5세)로 나뉘어 있던 교사 자격이 가칭 ‘영유아 정교사(0~5세)’로 통합된다면, 이는 상대적으로 더 빡빡한 입직 과정을 거친 (특히 국공립) 유치원 교사에게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보육교사는 사실 교사가 아니다. 법적으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로 되어 있다. 지금도 누구나 원하면 유아교육과에 갈 수 있고, 국공립 유치원 임용고시를 볼 수 있다. 개인이 노력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 있는데, 보육교사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예산을 들여서 단순한 연수나 보수교육을 통해 교사화하는 것은 절대 반대한다(윤지혜 수석부위원장)."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는 ‘0~2세는 보육, 3~5세는 교육’으로 기관을 이원화하고 교사 양성 체계도 따로 가져가길 원한다. 전교조도 비슷한 입장이다. 연령별 구분, 보육과 교육 개념의 구분을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 초창기부터 유보 통합을 요구하며 실무에 관여해온 송대헌 전 세종시교육감 비서실장(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자문위원)은 이런 주장을 비판적으로 본다. “교원단체들의 주장은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 때와 비슷하다. 나는 초중고 교사와 마찬가지로 임용고시를 봐서 국공립 유치원 교사가 됐는데, 더 낮은 위치에 있는 보육교사들이 (설령 추가 교육을 받더라도) 똑같은 지위에 올라간다니 참을 수 없는 거다. 예전에는 전교조 국공립 유치원 교사들이 사립 유치원 교사의 입장을 함께 대변하고 단체교섭 요구안에도 포함했는데, 지금의 전교조는 사실상 국공립 유치원 교사만 대변하고 있다. 전체 영유아의 10%를 책임지는 국공립 유치원 교사 1만9000명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사립 유치원 교사 3만3000여 명과 어린이집 보육교사 23만명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 보수교육 통해 교사화 절대 반대”

2023년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기본급 체계를 보면, 유치원은 40호봉까지 있으나 어린이집은 30호봉까지 있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호봉 최고액은 국공립 유치원이 월 567만9200원, 사립 유치원이 월 482만7350원, 국공립 어린이집이 월 357만8500원이다. 민간·가정 어린이집의 기본급은 호봉 없이 최저임금(201만580원)으로 정해진다(김선철, ‘유보 통합의 핵심 쟁점… 어린이집-유치원 교사 급여 차 어떻게 줄일 것인가?’, 〈베이비뉴스〉). 다만 사립 유치원의 경우 운영자가 정한 사립 호봉이나 최저임금으로 기본급이 정해지고 평균 재직 기간도 짧기 때문에 실제로는 매우 열악하다.

물론 이런 격차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뿐 아니라 설립 주체에 따른 차이가 중첩되어 있다. 두 기관의 교사 양성 체계가 다른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건 유보 통합 과정에서 교사의 양성 체계와 업무분담을 조정하면서 노동조건이 열악한 쪽의 처우 개선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유보 통합이 내건 ‘격차 해소’라는 목표와도 연결된다.

이와 관련해 교원단체들은 격차 해소에는 돈이 들 텐데, 정부가 재원 마련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고도 지적한다. 교육부는 기존 유아교육·보육 예산을 이관·유지하고, 추가로 유보 통합에 들어갈 예산은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시민들이 납부하는 소득세·부가가치세 등 내국세 총합의 20.79%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형태로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자동으로 배정하고 있다. 이 돈은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가 사용해왔는데, 이 중 일부를 유보 통합에 필요한 투자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교원단체들은 가뜩이나 세수 부족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규모가 올해 11조원, 내년 7조원이 줄었는데 여기서 유보 통합 재원까지 마련하라고 하면 ‘교육과 보육이 공멸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같은 입장이다.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예산이 필요한 유보 통합 사업을 현재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만 충당한다면 성공적 유보 통합도, 초중등 교육의 발전도 모두 요원해질 것이다(12월4일 입장문).”

정말 그럴까. 정부가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장상윤 전 교육부 차관이 국고 투입도 고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소요 재정이 예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영유아 수가 격감하고 있어서다(〈그림 1〉 참조). 유보 통합이 처음 논의되던 1997년 한 해에 67만5000여 명이 태어났다. 2022년에는 이 수치가 24만9000여 명으로 떨어졌다. 이미 초등학교 학생 수도 격감하는 상황이다(〈그림 2〉). 5년 뒤에는 전국 초등학생 수가 지금보다 30% 더 줄고, 10년 후엔 절반이 된다. 이러면 예산을 크게 증액하지 않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여유가 생길 여지가 있다. 지금은 세수가 부족해서 문제이지만 2021년만 해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7조5000억원 남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유보 통합으로 인한 교육재정 파탄론’은 지나친 우려라는 반박도 나온다.

영유아 감소 추세는 현재 교원단체들이 주장하는 연령별 이원화나 국공립 시설 확충 우선론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이미 사립 유치원은 2016년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이다. 최근 3년간 550곳이 폐원했다(신설은 16곳). 어린이집은 2014년 정점을 찍은 뒤 2021년까지 24% 줄었다. 지금처럼 0~5세 어린이집, 3~5세 유치원으로 기관을 구분해 원아를 수용하는 시스템으로는, 시민들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아이를 맡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비수도권일수록 그러하다.

사립 유치원, 최근 3년간 550곳 폐원

돌봄에 관한 사회적 요구와 교육기관 종사자 간 갈등이 첨예한 또 다른 정책이 있다. ‘늘봄학교’다. 초등학교 수업은 1~2학년인 경우 오후 1시~1시30분, 3학년 이후는 2시30분 정도면 끝이 난다. 이후 시간에 발생하는 돌봄 공백에 대해 그동안 초등학교에서는 ‘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도 통상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저녁 5시 이후 시간대에 운영하는 돌봄교실은 전체 중 30%에 그친다. 학부모들은 그동안 이 빈자리를 태권도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하거나, 아예 (주로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식으로 버텨왔다.

정부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소하고 초등 돌봄 공백을 메운다는 취지로 늘봄학교를 추진 중이다. 단계적으로 오후 8시까지, 기존 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를 통합한 형태의 돌봄·교육 서비스를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초등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전교조 초등위원회 이기백 정책국장은 “기존에 돌봄교실과 방과후 학교가 추진되면서 행정업무를 누가 맡을지 직군 간 업무 갈등이 극심했다. 대체로 돌봄교실은 돌봄전담사라고 불리는 교육공무직(학교에서 일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무기계약직)이, 방과후 학교는 교사가 맡는 방향으로 겨우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을 합치고 양적으로도 확대한다고 하니 서로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기간제 교사 2000명과 정교사 추가 TO(정원) 650명으로 감당하라고 한다. 지금도 초등교사 업무가 과도한데 여기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교사 정원은 정원대로 계속 감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는 늘봄학교처럼 돌봄을 학교 안으로 끌고 들어올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돌봄의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송대헌 전 비서실장은 “학교는 교사 것이 아니라 아이들 것이다. 병원이 의사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초등학생이 반으로 줄 때 교사는 10%밖에 안 줄어든다. 교사 과원이 발생하고 아이들이 없어서 교실이 텅텅 비는데 돌봄을 학교 밖으로 내쳐버린다면 자칫 학교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수 있다. 교사 집단이 이 문제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자신이 도울 부분이 없는지 찾는 게 맞지,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 학원 뺑뺑이 돌리는 게 맞나?”라고 되물었다.

2023년 12월1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유보 통합·늘봄 저지 4차 전국교사결의대회가 열렸다.ⓒ연합뉴스
2023년 12월16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유보 통합·늘봄 저지 4차 전국교사결의대회가 열렸다.ⓒ연합뉴스

유보 통합이나 늘봄학교를 둘러싼 갈등에서 결국 핵심은 ‘교육’과 ‘돌봄(보육)’의 경계와 역할 분담이다. 교원단체들은 교육과 돌봄은 별개 영역이라 주장하며 학교나 유치원의 ‘보육(돌봄)기관 동일화’를 경계한다. 한편에서는 영유아기 격차 해소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을 위해 보육(돌봄)과 교육의 정책적 책임을 통합하자는 사회적 압력이 세지고 있다.

물론 사회적 필요가 있다고 해서 특정 직역에게 어떤 불이익이라도 무한정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에 대한 보육은 너무 오래 공공영역에서 방치되어온 측면이 크다.

장애 영유아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배제된 존재들이다. 2007년 특수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장애 영유아는 만 3세부터 의무교육 대상자로 규정됐지만, 그로부터 16년 동안 어린이집에 다니는 장애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장애 아이들과 달리 (학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특수교사를 배치받지 못했고, 교재·교구 지원에서 배제됐으며, 초등학교 특수학급으로 연계되어 배치받을 수 없었다.

이혜연 전국장애영유아학부모회 고문은 “왜 유치원으로 옮기지 않느냐고 하는데 수도권의 경우 집 앞 대부분 기관이 과밀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 지방 중소도시는 장애 영유아가 갈 수 있는 유치원을 찾기가 더 힘들다. 조손가정 등 더 오랜 돌봄이 필요해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의무교육을 지원받지 못하는데도 교육세를 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돌파할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로 수십 년이 흘렀다. 이제는 저출생의 해일이 몰려오고 있다. 교육과 돌봄의 구분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가 그러하듯이, 정치 그 자체를 필요로 한다. 일단 유아교육과 보육의 주체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데까진 왔다. 유보 통합과 늘봄에 대한 날 선 반대를 넘어 격차 해소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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