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학부모 단체와 영유아 교육·보육 관련 단체가 만 5세 초등 취학 개편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흥구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었다. 7월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학제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라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계획 보고를 앞두고 진행된 브리핑에서였다.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안이다. 대선 공약에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적 없는 깜짝 정책이었다.

박순애 장관은 학제개편 이유로 교육격차 해소를 들었다. 아동이 공교육 제도로 들어오는 시기를 앞당겨, 지역이나 가정 여건에 따라 발생하는 유아기 교육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7월29일 박 장관은 “사회적 양극화의 모든 원인은 교육이 어떻게 출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 정부 내에 실현할 수 있는 학제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며 학제개편 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학제개편 움직임은 즉각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학부모 단체와 영유아 교육·보육 관련 단체는 일제히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발표 사흘 뒤인 8월1일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43개 단체가 모인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범국민연대)’가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1000여 명 규모의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당사자인 학생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 학제개편을 학부모 단체, 영유아 교육·보육 단체와 협의도 없이 진행했다며 비판했다. 8월2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역시 “중요한 국가 교육정책 발표에서 교육청을 허수아비 취급했다”라고 비판했다.

사회적 논의와 여론 수렴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박순애 장관은 부랴부랴 이해당사자들과 논의를 시작했다. 8월1일에는 영유아 교육·보육 관련 단체와 간담회를 진행한 데 이어 8월2일에는 학부모 단체, 8월3일에는 시도교육감과 간담회를 했다.

하지만 간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박순애 장관에게 의견 수렴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8월1일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간담회 전에 박순애 장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유아교육 전문가 단 한 명한테라도 자문을 했냐’고 물으니 장관이 ‘지금 (이 전화로) 하고 있지 않냐. 이제부터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간담회에서도 모든 전문가가 반대 의견을 냈는데, 장관은 취지를 설명하며 방어했다. 이미 답을 정해놓은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단체와 영유아 교육·보육 단체가 학제개편안에 반대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만 5세 유아가 보이는 발달 특성이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언어로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능력, 수업시간 등 규칙을 지킬 수 있는 사회성, 늘어난 수업시간을 견딜 집중력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 5세 유아는 발달단계상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고 단체들은 주장한다. 조형숙 중앙대 교수(유아교육과)는 “초등학교 수업은 본질적으로 학생은 각자의 책상에 앉고,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을 주도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만 5세 유아는 발달단계상 이런 형식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박순애 장관은 “요즘 아이들의 지적 성숙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졌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지적 성숙도’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아이들의 발달이 빨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라 말한다. “요즘 아이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다 보니, 발달이 빨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아의 발달이라는 게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도 유아의 발달이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라며 박 장관의 말을 반박했다.

학제개편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입학연령 하향 정책이 아이들을 더 일찍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 것이라고 비판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아이들은 전보다 배로 늘어난 사교육을 경험한다. 지난해 발표된 육아정책연구소의 ‘초등 전환기 사교육 서비스 이용 행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사교육 이용 시간은 2.5배, 지출 비용은 2.1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에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춘다면, 자연스레 더 낮은 연령의 아이들이 더 많은 사교육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교육격차 해소에 걸림돌

2011년 교육부 정책연구 과제로 발표된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 역시 한국의 학년별 사교육 패턴에 주목한다. 이 연구에서는 초등 입학 시기를 1년 앞당길 경우 “(만 5세 아동에게) 현 만 6세 사교육 정도의 사교육은 있으리라 보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며, “이는 현 만 5세의 사교육비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특히 사교육 증가는 학제개편의 목표인 교육격차 완화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범국민연대는 8월1일 집회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이 좌우하는 사교육에 더욱 크게 의존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우려를 감수할 만큼 학제개편이 교육격차 해소에 효과적이긴 한 걸까. 송대헌 전 세종시교육감 비서실장은 입학연령 하향은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 장관의 말처럼 만 5세 아동이 무리 없이 초등학교에 적응해 학교생활을 한다고 해도, 만 0세부터 만 4세 아이들은 여전히 불평등한 교육 환경에 놓이기 때문이다. 송 전 비서실장은 결국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면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체계 통합)’이 충실히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영유아 교육 환경에서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이에서 발생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교사의 자격, 교육과정, 교육비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교육기관인 유치원은 교육부,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함으로써 모든 영유아가 균일한 교육 환경을 누리게 하려는 시도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윤석열·심상정 후보 모두 유보통합을 공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던 유보통합이 영유아 교육격차의 해결 방안으로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8월2일 학제개편안 관련 학부모 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연합뉴스

박순애 장관도 결국 유보통합이 근본적인 방안임을 모르진 않는다. 8월1일 전문가 간담회 참석자에 따르면, 박 장관은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오래 걸리니, 일단 만 5세를 조기 입학시키고 유보통합은 차차 진행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문제는 학제개편이 만 0~4세 아이들을 불평등한 교육 환경에 남기는 것을 넘어, 유보통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영유아 교육·보육계에서는 만 5세가 포함되지 않은 유보통합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정희 한국유아교육학회 회장은 “영유아 시기에 필요한 발달을 이루기 위해선 영아 시기와 유아 시기가 연계된 연속적인 교육이 중요하다. 그런데 만 5세 과정이 사라지면 이것이 불가능해진다”라고 말했다.

“사회에 빨리 진입해야 하는 수요 고려”

학제개편은 현실적으로도 이해관계 조정을 난망하게 만든다. 초등 입학연령이 하향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수입이 크게 하락하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등원 중인 전체 영유아 가운데 만 5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린이집의 경우 11%, 유치원은 39%다. 따라서 교육과 보육 수요 감소로 첨예해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학제개편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교육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경제적 목적이고, ‘교육격차 완화’는 명분에 그치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업무보고 전 브리핑에서 박순애 장관이 “(졸업 후에 사회로) 빨리 진입해야 하는 사회적 수요도 고려했다”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말한 ‘입직연령 하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과거 여러 정부에서 입학연령 하향 정책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생산가능인구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의 대책으로 학제개편을 고려했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기 기획재정부 역시 지난해 하반기까지 입직연령과 생산가능인구 문제의 대안으로 학제개편을 검토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박순애 장관은 8월1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학제개편이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고려된 것이 전혀 아니며, 입직연령이 낮아지는 것은 단지 부수적 효과에 그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스스로를 경제 부처라고 생각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 정책의 ‘진짜 목적’에 대한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제개편 방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와 대통령실은 기존 ‘신속 시행’ 방침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8월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안상훈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를 순 없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학부모 단체와의 간담회에서 박순애 장관 역시 “국민들이 정말로 아니라고 하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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