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 창구마다 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필리핀·타이 등 열여섯 개 나라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각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담사들이 서류를 들고 온 이들의 고민을 그 나라 말로 들어주고 있었다. 이곳 상담사는 8명, 전체 직원은 18명이다. 그런데 이들이 올해 말로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이곳 센터를 비롯한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거점 9곳, 소지역 35곳) 예산이 한 해 70억원인데, 고용노동부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이 센터들의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청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치고 올해 센터장으로 부임한 이상구씨(60)는 “올해 1월1일 고용노동부와 3년짜리 위탁계약을 맺었는데, 불과 8개월 만인 지난 9월7일 갑자기 ‘예산을 삭감할 테니 문 닫을 준비를 하라’고 하더라. 공무원 생활을 오래 했지만 행정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임금 체불 등과 관련한 상담 업무를 앞으로는 고용노동부 각 지청이 직접 한다고 한다. 언어 소통도 문제일 뿐 아니라, 설령 다국어 상담사를 고용한다 해도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잡혀갈 위험을 무릅쓰고 정부 기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의정부 센터는 2007년부터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았고, 노동자들이 쉬는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노무 상담뿐 아니라 사업장 변경 관련 노사 중재나 각종 소송·폭행 사건 지원도 한다. 정부가 이런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지원센터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 1만5000명이 예산 삭감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한국과 고용허가제 협약을 맺은 아시아 16개국 중 8개국 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예산 삭감 이유와 대안을 묻는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깎인 예산이 국회에서 복구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1월27일 내년 외국인 인력 고용 한도를 16만5000명으로, 올해보다 4만명 더 늘리겠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하소연할 데도, 중재해줄 곳도 없다면 큰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이상구 센터장).”
센터 상담사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이다.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최저임금을 받으며 사명감으로 일해왔다. 2007년 의정부 센터 개소 때부터 일했다는 베트남 통역상담사 이홍옥씨는 “17년째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해고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미얀마 통역상담사 수인띤택 씨는 “사업장을 바꾸려고 진정을 준비하는 노동자를 상담하고 있다. 노동부로 연결해줘야 할 텐데, 의사소통이 잘 될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깎인 예산이 국회에서 복구되지 않는다면, 의정부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12월31일 일요일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문을 닫는다. 전국 9개 거점 센터에서 일하는 127명도 해고된다.
기사가 나간 뒤인 12월21일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예고된 대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민간위탁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내년부터 고용노동부 각 지청이 해당 사업을 직접 수행할 예정이다. 이상구 센터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그렇게 우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십년 넘게 고생해온 상담사들이 걱정이다. 그동안 최저임금 받느라 힘들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소고기라도 사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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