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년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다.ⓒAP Photo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년 만에 정상회담을 열었다.ⓒAP Photo

2024년, 미국은 시험에 들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짜인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나름 이상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모든 국가들에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이 질서에서 국가들은 크든 작든 국제연합(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1국 1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작은 나라들의 주권도 형식적으로나마 존중되었다. 강대국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평화의 보증자 노릇을 했다. 적어도 19세기처럼 강대국들이 멋대로 주변 소국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규정하고 그 나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침략하는 일은 드물게 되었다.

이 질서가 흔들린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국은 타이완에 대한 무력 통합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중동에선 미국의 평화 구상이 수포로 돌아갔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 미국은 세계질서에 대한 책임성 자체를 부정하는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그리 평등하거나 정의롭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사에선 대안 없는 질서의 파괴가 재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그 대안으로 보기도 어렵다.

2024년 세계정세를 좌우할 다섯 가지 이슈를 선정해 정리했다.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에서 방문객들이 ‘메이트60 프로’ 등 스마트폰을 살펴보고 있다. ⓒAP Photo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에서 방문객들이 ‘메이트60 프로’ 등 스마트폰을 살펴보고 있다. ⓒAP Photo

■ 미국-중국 기술 전쟁: 미국의 ‘중국 테크 압박’ 전략은 실패하지 않았다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 부문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답변을 갈음할 수 있는 상징적 상품이 2023년 8월 등장했다.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가 출시한 5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다.

이 스마트폰에는 최첨단 ‘7나노(nm)’급 반도체가 장착되었다. 중국 국유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가 만든 기린 9000s다. 전 세계가 경악했다. 중국인들이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네덜란드 등 우방국 민간업체들까지 아울러 최첨단 반도체 및 그 제조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7나노급 반도체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노광 장비’인 EUV(극자외선)가 없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반도체 제조는 실리콘 판(웨이퍼)에 극히 미세한 설계도를 그린 뒤 그대로 깎아내는 과정이다. ‘노광’은 설계도를 그리는 공정이다. 설계도에서 선들의 간격이 좁을수록 고성능 반도체다. 7나노급이란 선과 선 사이 거리가 7나노란 뜻이다. 나노는 길이 단위로 ‘머리카락 두께의 100만 분의 1’이다. 이 정도로 극미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노광 장비는 ASML의 EUV밖에 없다. ASML은 EUV를 중국에 공급하지 않았다.

기린 9000s의 등장은 ‘미국이 막아도 중국은 돌파해낸다’는 암묵적 선언이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가로 등극할 것이라는 예언적 상징처럼 보였다. 〈인민일보〉(9월12일)는 “미국의 경제제재가 중국의 기술발전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라며 기염을 토했다. 〈이코노미스트〉(11월13일)에 따르면, 중국의 “소셜미디어엔 화웨이 광고판 앞에서 절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업로드되었다”.

미국 여론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한쪽은 ‘중국이 수출통제를 극복하고 최첨단 테크를 자체 개발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목적(중국의 기술발전 저지)’을 달성하기는커녕 미국과 동맹국들의 민간업체나 괴롭힌 대중국 수출통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쪽은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가 불완전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제재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수출통제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기린 9000s가 수출통제의 ‘빈틈’ 덕분에 양산 가능했고 ‘경제적 합리성’도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11월30일)에 따르면, SMIC는 EUV의 하급 버전인 DUV(심자외선)로 기린 9000s를 제조했다. DUV도 ASML이 만드는 노광 장비다. EUV가 10나노 이하 반도체에 사용되는 반면 DUV는 주로 30~40나노급 반도체(10나노에 비해 저성능) 제조에 채택된다. 그러나 DUV로도 제작공정을 개량하고 늘리면 7나노급 칩의 설계도를 그릴 수 있다. 다만 제조공정을 추가하는 만큼 생산비용 및 불량품이 증가한다. 나사 죄기에 비유한다면, 머리 홈의 형상(일자, 십자)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경우에 비길 수 있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여러 차례 시도하면 나사를 죌 수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힘과 시간(=생산비용)이 든다.

그래서 기린 9000s의 수율(설계한 칩 가운데 정상적으로 생산된 칩의 비율)이 낮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기린 9000s 제작 관련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라 이 제품의 수율을 30% 정도로 추정했다(70%는 불량품).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현재 삼성전자와 타이완 TSMC는 7나노보다 미세한 4나노 공정에서도 각각 75%와 80%의 수율을 기록하고 있다. 극도로 경쟁적인 반도체 시장에서 이 기술격차는 해당 업체들의 흥망을 결정할 정도로 엄중하다. 불량품이 많고 생산비가 높은 반도체는 ‘시장경제’적으로 합리성이 없다.

기린 9000s 양산은 중국 이외 다른 나라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수위의 ‘국가-기업 결합’으로 가능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화웨이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2년에 중국 정부로부터 전년도의 두 배에 해당하는 65억5000만 위안(약 1조200억원)을 지원받았다”. SMIC도 지난 3년 동안 68억8000만 위안(약 1조2600억원)의 국가보조금과 국영 펀드의 지원금을 수령했다. 〈이코노미스트〉(11월13일)는 “메이트60 프로를 (미국과 중국 간) 테크 전쟁에서 ‘결정적 한 방’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평가했다. “기린 9000s가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중국이 EUV 없이 자체적으로 가능한 최대한의 성과를 달성한 제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메이트60 프로엔 한국 SK하이닉스가 만든 메모리칩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SK하이닉스는 수년 동안 화웨이와 거래하지 않았다는데도 말이다. 중국 업체들이 ‘비공식 시장’을 통해 손에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선 대중국 수출통제를 완화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통제 범위도 넓히는 것이 합목적적이다. 비교적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는 지난 11월 중순의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첨단기술 수출통제에 대한 시진핑의 불만에 바이든이 단호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첨단기술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약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걸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1월8일 연준 조사통계국 10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AFP PHOTO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1월8일 연준 조사통계국 10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AFP PHOTO

■ 글로벌 경제: 화끈한 침체 없이 화끈한 반등 없다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올해 여러 차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터이다. '의외로' 경제가 이럭저럭 굴러갔기 때문이다. 지난해(2022년) 말 대다수 국제기구와 학계는 광범위한 경기침체(recession)가 2023년을 덮칠 것이라 예측했다.

2023년에 대한 비관적 예측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금리였다. 2022년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잠해지자 물가가 치솟았다. 이해 중반엔,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10%(전년도 같은 달 대비)까지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 2022년 초에 ‘사실상 0%’였던 기준금리를 같은 해 연말엔 4%대 중반까지 인상했다. 이어서 ‘내년(2023년)에도 계속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기관들이 ‘고금리에 따른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를 예측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2023년의 경기침체로 물가가 안정되면 중앙은행들은 비로소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24년엔 경기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고 2023년의 예측자들은 내다봤다.

그러나 이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2분기 이상 연속으로 경제 규모가 축소되는 현상(마이너스 성장)인 ‘광범위한 경기침체’는 2023년에 없었다. 금리인상이 계속되었지만, 글로벌 경제는 고금리 환경에서도 완만하게나마 성장했다. 소비와 고용(미국에선 뜨거웠다)도 비교적 양호했다. 이런 와중에도 인플레이션율은 점차 하락해 미국에서는 2023년 하반기 들어 3%대 중반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이를 반드시 좋은 신호로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대가’를 반드시 요구한다. 만약 2022년 말의 예측(‘화끈한’ 경기침체)이 실현되었다면, 중앙은행들은 2023년 중반이나 하반기에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터이다. 각 기관들은 2023년 말인 현재 희망찬 ‘2024년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화끈한 침체가 없었으니 화끈한 반등도 없을 전망이다.

대다수 국제기구와 금융기관들은 2024년에도 글로벌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성장 폭은 올해보다 낮을 터이다.

11월29일 나온 OECD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GDP(생산 규모)는 올해 2.9%(전년도 대비, 잠정치)를 기록한 뒤 2024년엔 2.7%로 완만하게 둔화된다. 2025년에 3.0%로 소폭 개선될 것이다.

OECD의 국가별 2024년도 GDP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그림〉 참조),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 중 상당수가 1% 이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세를 보인 미국의 경제성장률 역시 올해는 2.4%(잠정치)에 달하지만 내년엔 1.5%로 떨어진다.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 5.2%에서 내년 4.7%, 2025년 4.2%로 계속 낮아진다. 유로존(유로를 국가 통화로 사용하는 유럽 20개국)의 성장률은 올해 0.6%에서 0.9%, 1.5%로 점차 오를 것으로 전망되었다. 내년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 국가는 인도(6.1%)와 인도네시아(5.2%)다. 한국은 내년에 2.3%를 기록한 뒤 2025년엔 2.1%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기관들이 2024년을 전망하고 있다. 구체적 수치는 다르지만, 일련의 가정들을 공유한다. 첫째, 경기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완화된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이젠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해 금리를 내릴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3년 12월 초 현재, 시장엔 ‘연준이 곧(심지어 내년 초에라도)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하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 및 금융기관들은 이런 낙관에 찬물을 끼얹는다. OECD는 인플레이션율이 내년에도 완만한 하락 추세를 보이겠지만, 중앙은행들의 목표치(2%)에 도달하는 시점은 2025년으로 본다.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세스 카펜터는 11월22일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인플레이션의 마지막 발악은 2025년에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마저도 평상시보다 낮은 경제성장을 거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예측한 ‘2024년 연말 미국 기준금리’는, 골드만삭스 5.13%. 모건스탠리 4.375%, 제이피모건 4.5%, 바클리스 5.25~5.5%(현재와 동일) 등이다.

11월2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나가고 있다.ⓒAP Photo
11월23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지나가고 있다.ⓒAP Photo

■ 우크라이나 전쟁: 시간은 러시아의 편이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침공한 직후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흑해 인접)를 지금도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여름부터 이 전선들에서 대반격을 펼쳤으나 성과는 크지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AP 인터뷰(11월30일)에서 “더 빠른 전과를 원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전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5개월 동안 많은 피와 비용이 들었지만 우크라이나가 11월 초까지 거둔 성과는 미미하다. 수복한 영토는 우크라이나 전 국토의 0.1%도 안 되는 약 400㎢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의 18% 정도를 점령하고 있다.”

길고 긴 소모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양측 모두 병력과 무기가 더 필요하다. 이 경쟁에선 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가 유리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월1일, 병력을 17만여 명 늘리는 법안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러시아(약 1억4300만명)의 3분의 1(약 4300만명)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세계적 무기 생산 대국인 데다 북한(탄약)과 이란(드론) 등으로부터 군수품을 조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들의 무기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나 올해 들어 지원이 지체되었다.

서방국가들은 전쟁의 장기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선 공화당이 지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610억 달러)와 이스라엘(143억 달러) 지원 법안을 함께 처리해달라고 하원에 요청했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은 이스라엘 지원 법안만 통과시켰다.

러시아는 내년 3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푸틴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 ‘러시아 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대공세를 펼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시행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우크라이나가 대선을 연기하는 경우, 러시아는 ‘젤렌스키의 장기 집권 음모’라는 패러다임으로 서방국가의 여론을 대상으로 심리전을 펼칠 것이다. 러시아의 필승 전략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는 것이다.

시간은 러시아의 편이다. 권위주의 독재자인 푸틴은 국내 여론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더욱이 2023년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러시아 경제 상황이 개선되었다. 푸틴은 서방국가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한 미국 고위 관료는 CNN(12월1일)에 푸틴이 11월 미국 대선 때까지 “전쟁을 끌고 나갈 심산인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비관적 전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나 프롤로바 우크라이나 전 국방차관은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대서양위원회’의 11월 화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군의 올해 최대 전과(戰果)를 “러시아의 ‘흑해 봉쇄’를 완전히 붕괴시킨 것”이라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남부에 접한 흑해는 이 나라의 곡물 등 수출품이 대서양으로 나가는 항로다. 러시아는 흑해에 배치한 함대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막는 한편 남부 내륙 도시들로 로켓을 발사해왔다.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미사일과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 흑해 함대를 후퇴시킨 전과는, 서방국가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의에서 웨슬리 클라크 나토 전 사령관은 “전장은 교착되는 곳이 아니라 역동적인 장소”라며 “미국의 지원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미국과 우방국들의 안보에 대한 투자”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IDF)이 12월4일 공개한 ‘군인들의 가자지구 내 작전 수행’ 모습. ⓒREUTERS
이스라엘군(IDF)이 12월4일 공개한 ‘군인들의 가자지구 내 작전 수행’ 모습. ⓒREUTERS

■ 가자 분쟁: 아직 희망이 남았을까?

이스라엘 군은 2023년 12월 초 현재, 가자지구 남부에서 섬멸전을 벌이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12월5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 1만5000여 명이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으로 살해당했다. 그중 절반은 어린이다.

중동엔 크게 두 종류의 ‘적대 관계’가 있다.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슬람 수니파) 대 이란(시아파)’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사우디가 ‘실리파’라면, 이란은 ‘미군 축출’과 ‘이스라엘 절멸’을 대의명분으로 삼는다. 두 나라는 예멘·시리아·리비아 등 내전에서 대리전을 펼쳐왔다. 이란은 시아파인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 아사드 정권,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을 지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수니파지만 이란의 자금과 무기를 제공받는다. ‘반(反)이스라엘’이란 대의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의 적대 관계는 ‘아랍 대 이스라엘’이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바레인·아랍에미리트 등 페르시아만 주변의 ‘걸프 국가(비교적 부유하고 경제성장에 집중)’들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는 대체로 인정한다.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은 이스라엘과 국교를 이미 수립했다. 다만 ‘아랍 대 이스라엘’ 관계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동한다.

2023년은 이 같은 적대 관계의 두 축이 모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해였다. 지난 3월,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와 함께 사우디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논의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엔 큰 걸림돌이 있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다. 국제법적으로 인정된 팔레스타인 영토는 이스라엘(국제법적 영토)의 동쪽(서안지구)과 서남쪽(가자지구)에 접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의 백수십여 곳에 자국 시민들과 군대를 투입해서 정착촌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의 합법적 영토에 ‘알박기’를 해왔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1993년 미국 백악관에서 체결된 오슬로 협정이다. 협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자국 시민들을 서안지구에서 철수시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승인해야 한다. 이른바 ‘두 국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법’이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극우파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이스라엘 집권 세력들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영토를 흡수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은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단되었다. 온건파는 ‘형식상’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다. 현지에서 PA는 ‘이스라엘의 괴뢰’ 정도로 취급받는다. 강경파는 봉쇄된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면적은 각각 5860㎢와 365㎢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도 해결하길 원했다. 〈워싱턴포스트〉(12월2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이라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거듭 요청해왔다. 네타냐후는 거부했다. 그러나 사우디 왕세자이며 사실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이 지난 9월 〈폭스뉴스〉에 털어놓은 다음 발언을 감안하면 두 나라가 이럭저럭 타협점으로 접근 중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우리(사우디와 이스라엘)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딜(deal)로 매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습격해 1400여 명(주로 민간인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중동지역의 평화 무드는 끝장나고 말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축으로 이란에 대응하는 한편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견제하려고 했다. 이 구상도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네타냐후 총리는 11월6일 미국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무기한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안보 책임성(overall security responsibility)’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영토화와 더불어 가자지구도 점령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에 로켓을 쏘고 있는 헤즈볼라나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 절멸’에 더 큰 명분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이 가자지구에서 인근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1월29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란에 투자하는 대가로 가자 분쟁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중동 평화의 해법은 오슬로 협정 준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극우 네타냐후 정권과 팔레스타인의 무능하고 부패한 PA가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세력으로 교체되는 등 성사되기 어려운 전제 조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해진 사실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고난을 암묵적으로 무시해온 지금까지의 방식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랍 전문 연구기관인 ‘워싱턴 아랍센터(Arab Center Washington DC)’는 11월22일 게시물에서 이번 사태가 “아랍-이스라엘 화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과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2021년 1월6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다.ⓒEPA
트럼프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2021년 1월6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다.ⓒEPA

■ 미국 대선: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

내년(2024년) 11월5일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향한 질주는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자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 일정이 내년 1월15일 아이오와주에서 시작된다.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두 번째 본선 대결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에서 지지율 60%를 홀로 차지할 정도로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있다.

두 사람 중엔 누가 더 유력할까? 2023년 하반기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트럼프의 지지율이 바이든보다 지속적으로 4~5%포인트 정도 높게 나온다. 바이든은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데다 새로운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면 83세(트럼프는 79세)다.

양극화된 미국 정치에서 ‘정책 공약’은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두 사람의 대결은 상대방을 ‘미국의 적’으로 몰아붙이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미국의 살육(American carnage:이민자 유입, 무신론, 임신중지 합법화, 다양성과 젠더, 정치적 올바름 등의 정책으로 미국 고유의 가치와 사회·경제를 망쳤다는 의미)”을 초래한 약탈자로 몰아갈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라 부르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한 혐의(사기·공모·개표 방해 등)로 기소되어 있기도 하다. 지난 대선 직후인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의 대통령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 이를 선동한 혐의(사기·음모·개표 방해)들에 대한 연방법원의 트럼프 재판은 내년 3월4일부터 시작된다. 재판의 최종적 결과가 미국 대선 이전에 나오긴 어려우리라 보인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재판’이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한다. 반면 연방법원의 재판에 대해 ‘엘리트 기득권자들의 음모’이며 이에 저항하려면 트럼프를 지지하라는 식의 트럼프 측 선전이 최근까지는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타이완 무력 침공 위협, 중동지역의 긴장 등으로 미국의 글로벌 패권과 기존 세계질서가 위협당할 2024년에 트럼프의 대통령 집권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고립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뿐 아니라 미국이 유사시 타이완 방어에 나설지조차 모호해진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오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이코노미스트〉(11월13일)는 극히 냉소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트럼프가 후보에서 탈락하거나 후보로 나와도 패배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로 높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와 전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